JCE의 룰더스카이 대단하다. 지난주에 업계 사람들과 결혼식 갔다가 네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가 폰 들고 열심히 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같이 인상적이었던 일이 있다. 이 게임이 오늘 기사가 났는데 카카오톡보다 일 평균 이용시간이 많단다. (http://bit.ly/AkqFxJ) 증권사 추정치를 보니 월 매출이 30억을 넘어섰단다. 작은 모바일 게임 하나가 JCE 작년 전체 매출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http://bit.ly/yd0Zj3) 모바일의 빅 비즈니스는 역시 게임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개인적으로는 웹 소셜 게임을 했던 루비콘과 오버랩되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Pinterest(http://pinterest.com)에 대한 단상

1. 안구정화가 되는 느낌이다. 뭔가 텍스트만 잔뜩 있는 웹을 돌아다니다가 Pinterest에 들어가면 갑자기 감성적이 된다. Twitter의 RT나 facebook Like!가 대개 메시지에 대한 이성적 공감에 가깝다면 Pinterest의 Like나 Repin은 100% 감성적 공감이다. Pinterest가 이미 미국 내 Online retail 서비스의 막대한 트래픽 소스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친구들과의 감성적 공감의 산물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여러모로 BM으로 옮길만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 놀라고 있는 것은 그간 ‘예쁜’ 서비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미국 사람들이 의외로 예쁜 것들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새 dribble을 봐도 그렇고 fancy한 디자인을 하는 해외 디자이너가 눈에 띄게 늘었다. 아마 모바일(그 중에서도 아이폰)의 영향일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만 10개 이상의 Pinterest 미투 서비스가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이미 준비중인 팀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facebook과 잘 연계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쁜 모든 것들은 물론 넘쳐나는 소셜 커머스 쿠폰 등도 친구들의 큐레이션에 의해 제시가 된다면 나는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큐레이션 서비스의 최적 UI가 지금의 Pinterest 방식이냐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이미지 중심의 동시다발적 노출을 어떻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나온 형태가 지금의 Pinterest 방식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친구들에 의해 선택된 things를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례로 현존하는 JavaScript를 가장 잘 파싱하는 브라우저 중 하나인 구글 크롬으로 보아도 Pinterest 사이트는 무겁다. 우리가 옛날 위자드닷컴(http://wzd.com)을 만들면서도 가장 고민했던 것이 ‘과연 이렇게 모조리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 최적 UI냐’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답이 ‘최적 UI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아직 딱히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으므로 계속 이렇게 간다’였다. 지금도 5년 넘게 위자드닷컴을 쓰는 유저들은 바로 그 UI가 편해서 이것을 계속 써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Mass를 포용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 UI는 최적 대안은 아니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Pinterest의 미투 서비스를 국내에서도 만든다면, 친구들의 큐레이션을 통해 meaningful things를 나열하는 것은 좋은데, 그 UI만큼은 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지금은 2012년이 아닌가!

2. Pinterest에서의 내 following, follower 수를 기준으로 추정해 볼 때 서비스 런칭 후 지금까지 가입한 누적 국내 가입자수와 최근 2주간 가입한 국내 가입자수가 얼추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IT 관계자 중심으로 가입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early adopter들이 쓰기 시작하면 서비스 성장이 비약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예쁘고 fancy한 것을 좋아하는(또한 남의 평가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한국 여성들이 이 서비스를 접하게 되면 많이 좋아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3.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난 십수년간 등장한 인터넷 서비스들 중에서 이같은 유저 큐레이션(그때는 추천이라 불렀겠지만)에 의한 공유 사이트(아마도 당시 국내에선 주로 커뮤니티라 칭하지 않았을까 싶지만)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이제와 이 테마가 빛을 발하는 것 보면 다시금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후의 승자는 Pinterest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서비스가 될까? 이제 그 때가 온 것일까? 아니면 또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여러모로 재미있게 지켜볼 일이다.

어제 KBS 다큐 3일에 구로디지털단지의 중소벤처기업들이 나왔는데 너무나 공감이 가서 보는 내내 몇 번이나 뭉클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벤처를 하는 이들은 과거 6,70년대 섬유 벤처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일종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업에 임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벤처 정신이 없다고 하는건 내가 볼때 미국식 벤처 기준의 지극히 편협한 시각인 것 같고, 사실 옛날 산업 부흥기로부터(지금 대기업들도 초창기엔 다 벤처였으니) 80년대 들어 등장한 기술창업 시대, 그리고 90년대 벤처기업 시대, 2000년대 닷컴 시대를 거쳐 지금 2010년대 스타트업 시대까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가 계속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용어가 무엇이든 간에 후배들은 자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선배들이 과거 시간을 통해 배웠던 소중한 경험을 전수하고 의미있는 교훈이나 정신은 또한 다음 세대로 계승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식 벤처의 정신(spirit)이 생각보다 굉장히 강하고 해외에서도 어느정도 통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보면 인사, 조직, 문화 모든 면에서 너무 미국식 스타트업 스타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전 사회적으로 미국 눈치를 많이 보는 나라이다보니 창업벤처가 미국스러우면 아무래도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하는 잇점이 분명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우리 벤처계에도 영어공용화 이슈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벤처의 고유한 정신과 나름의 긴 역사성도 모르거나 존중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테크크런치만 보면서 기백만불 투자니 M&A니 스타트업이니 하는 이야기만 ‘쿨하다’고 받아들이는 양상은 지극히 편협하고 비현실적인(사업은 한국에서 하는데 눈높이는 미국에 맞춰져 있는) 헛똑똑이만 양산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한국 벤처계를 책임질 지금의 우리 젊은 세대가 선배 세대들이 겪었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며 그들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그 모든 과오까지도) 느끼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나의 소중한 선배들이 각자의 길에서 보여준 모습이 나에게 큰 이정표가 됐듯, 지금 우리의 모습이 훗날 다른 후배들에게 작은 불씨라도 될 것이오,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이 부끄러울 정도로 소박한 하루하루의 시간이 또한 긴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사의 한 페이지로 오롯이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오지랖이라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선배들의 길에서 너무 많이 배웠고, 그들의 영광스런 어제와 초라한 오늘(또는 초라한 어제와 영광스런 오늘)을 계속 목격하고 있으며 동시에 똑똑한 다음 세대의 등장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는 중간 연결고리 세대의 일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국적 중소벤처기업 정신의 계승 발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모두가 미국식 스타트업 기준으로 된 책을 보고 그 기준에 부합되는 멘토를 찾아다니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를 찾아오는 몇 안되는 후배들에게만이라도 나는 이같은 한국적 벤처정신의 의미와 저력을 소개하고 과거 우리 선배들의 과오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도록 할 것이다.

나는 우리 후배들이 97년부터 2002년 사이 한국 벤처사에 일어난 흥망성쇠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만으로 묻지마 창업을 몇 번 해보는 것 이상의 많은 공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확실히 사람이 마음의 안정이 있어야 일도 손에 잡히고 능률도 오른다. 사업을 오래 하려는 사람은 창업자 본인과 멤버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복리후생이나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허세는 떨면 안되겠다. 실제 능력이나 이뤄온 성과보다 그 사람이 고평가되어 있거나, 본인이 지나친 자기 자랑을 온오프라인상에서 반복하는 경우에는 거의 어김없이 뒷말이 들린다.

물론 나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기에 요즘은 최대한 눈에 안띄고 조용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찌보면 이 텀블러 역시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개설해 혼자 놀고 있는 것인데 어느새 이 공간에 혼자가 아님을 알고는 요새 글쓰는 것이 대단히 조심스러워졌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요즘은 초반의 자유분방한 일기 형식이 못되고 자꾸 설명문이 되나다보니 쓰는 재미도 떨어지는 듯하다.

여튼 언론에 나오거나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제품이나 회사를(좀 문제있는 사장이라면 개인을) 자랑하는 것이 어찌보면 홍보랑 종이 한 장 차이인데 완전 다른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니 아예 아무것도 안쓰고 아무데도 안나가고 오로지 제품에만 신경쓰는게 오히려 속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위터에 적당히 자랑도 하고 언론에 얼굴도 내밀고 할거면 정말 꼭 필요할 때만 해야할 것이다. 자알 생각해서.

사장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얼굴이 안 팔려서 고민이 아니라 자꾸 팔려서 고민인 때가 온다. 얼굴이 자꾸 팔리는걸 좋아하면 아무래도 좀 문제있는 사장이라고 하겠다. 나 역시 이 대목에서도 별로 자유롭지 못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스무 곳 정도 요청이 올 때 실제 응하는 곳은 한 두 곳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튼 나 역시 능력이나 성과에 비해 고평가되어 있는 사람중에 하나로써 괜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욕먹기는 싫어서 가급적 조용히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그것이 또 업계 생리상 내 맘대로만 되는건 아니어서 좀 힘들 때가 있다.

사람이 손을 내밀 때에는 여간해선 어떻게든 잡아주어야 한다. 묵은 감정이나 사소하게 시작된 오해, 뻘쭘함 등등 손잡기 망설여지는 감정이 있다 하더라도 긴 인생에서 외로워지지 않으려면 노력해서 다시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어쩌다보니 불편해지고 멀어진 인연들에 내가 먼저 용기내어 손내밀 줄 알아야 하고 그런 식으로 용기낸 다른 이의 손도 잡아줄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놓친 인연 그냥 새로운 사람만 보고 살면 되지’ 할 수도 있지만 그리 살다보면 계속 새 사람만 찾게 된다.

놓친 인연에 먼저 고개 숙이고 손내밀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왜 불편해졌나 곱씹어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다시 손내미는 상대가 뻔뻔해 보일지언정 기쁘게 맞잡을 수 있는 넓은 아량을 갖는 우리가 되기를. 세상사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언제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럼에도 다시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이들도 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 도덕성이나 사회적 정의감 없이 사리사욕만 위해 사는 사람은 어떻게든 멀리하고 싶다. 대표들을 항상 보고 살면서 대부분은 훌륭하지만 극히 일부는 사회적 정의감이 결여된 경우를 본다. 자기 개인의 안위와 자기 회사만의 안녕을 위해 업계와 사회 공동체의 공발전을 저해하는 행동을 서슴치 않는 것이다.

이들 대표들의 면면을 보면 성격적으로나 업무 능력으로나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인데(오히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쪽에 가까운데) 1) 지나친 이기심과 공동체 정신의 결여(나만, 내 가족만, 내 회사만 잘되면 된다는 편협한 정신 상태), 2) 철학의 부재(해도 될 일, 해서는 안될 일을 판단하는 자기 기준이 없거나 모호한 상태), 3) 도덕적 해이(한 단계 더 나아가 해서 안될 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하고 있는 상태) 등의 이유로 어리석은 길을 가곤 한다.

사실 이걸 ‘어리석은 길’이라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내 잣대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어서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그냥 좀 늦더라도 천천히 정직하게 가고 더 많은 이들이 함께 발전하는 형태로도 충분히 좋은 회사 만들 수 있을텐데 방법이 꼭 그런 식밖에 없나 하는 (동료로써의) 안타까움이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데로 샜는데, 어쨌든 요새 내가 창업을 준비하는 학교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꼭 해주고 있는 말도 결국 이 얘기다. “정직하게 사업해라. 좀 돌아가더라도 진실하게. 말로 사기칠 생각하지 말고 좋은 제품 만들고, 회사는 대박이 아니라 천천히 조금씩 키울 생각을 해라. 성장하는 그 재미에서 행복을 찾아라”

마지막으로 꼭 하나 덧붙이고 싶은 바람이 있다. 대표가 사회적 정의감을 갖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떼돈을 번다고 해도 이것만큼은 안하겠다’ 하는 사회적 책임감을 갖는 사장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대단히 약해빠진 소리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그래도 나는 ‘직업으로서의 사장’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더 오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나 지금 정부 정책이나 여러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장이 양산되고 있는만큼, 나는 더 오래갈 사장은 마인드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이나 화술, 인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피해주면서까지 욕심부리지는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 거짓말하면서까지 목적을 이루지는 않겠다는 다짐이 훨씬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말도 안되는 문제가 턱 앞을 가로 막아도,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니가 죽나 내가 죽나 악으로 부딪히면 결국엔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해법이 없는 문제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목숨을 걸 강인한 의지가 없었을 뿐. 그간 ‘무엇 때문에 안됐다’, ‘누구 때문에 안됐다’하던 내 모습을 반성한다.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이 서른 다섯에 직접 썼다는 <나의 신조>. 이걸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큰 소리로 복창하고 집을 나섰단다. 그러니 외판원으로 시작해 맨손으로 그룹을 일군 그의 성공도 일견 이해가 간다. 사람이 꿈이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는 사실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정의를 기초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을 세우고 우직하게 살아간다면 꿈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다. 만약 세상 사람 모두가 꿈을 ‘추구’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이 세상은 매우 잔혹한 곳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처음에는 온갖 화술과 능력에 감탄했다가 나중에는 원칙과 철학 없이 오로지 자기 욕심만 쫓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실망한 적이 더러 있다. 누군가에게는 나도 때때로 그런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한다. 올해는 나도 나의 원칙과 철학을 정리해 아침마다 다짐해 보아야겠다.

오늘 사내 외국인 직원과 함께하는 영어교육 실시에 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결과를 받아보고 적잖이 놀랐다. 나의 가정은 ‘당연히 모두 좋아할 것이다’였는데 보기 좋기 틀렸다. 오히려 서비스 런칭도 못하고 있는데 시기가 부적절하다, 외부 학원비를 지원하는 편이 낫겠다 등 호되게 혼이 났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일단 서비스 런칭 후에 충분한 준비를 거쳐 시작하는 편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찬성쪽에서는 물론 아쉽겠지만 더 나은 운영을 위하여. 사내 의견수렴에서 설문조사 형식을 처음 취해봤는데 의외로 매우 유익했다.

신속하게(불과 몇 시간 만에) 사원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고 즉각 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직원들이 그 정책 결정의 수요자가 되는 결정만큼은 직접적인 의견 수렴이 꼭 필요하겠다는 배움을 얻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제 조사 결과와는 딴판이었기 때문에.

사장도 나름대로 많은 고민을 해서 일을 추진하지만, 자기 생각의 아집에 빠지지 않으려면 듣는 노력이 꼭 필요한 것 같다. 오늘 나의 가정(assumption)만으로 밀어 붙일뻔 했던 일에 제동을 걸어준 P실장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멤버들이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아직 나는 무림의 하수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