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중에는 회사 이름을 까먹는 제품이 있고 회사 이름을 높이는 제품이 있다. 우리가 타사 브랜드 앱을 만들거나 잠시 시간이 남아 가벼운 서비스 앱을 만들 때도 항상 높은 완성도를 지향해야만 나중에 진짜 서비스 앱을 낼 때 사람들이 우리 제품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제품의 크기가 어떻든 간에 회사에서 나가는 제품이라면 응당 기획자는 쉬운 사용성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디자이너는 예쁜 디자인, 그리고 개발자는 성능에 자기 이름을 걸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제품이라고 대충하거나, 남의 이름으로 나가는 브랜드 앱이라고 사용성이 명백히 위배되는 고객사의 요구에 도전할 수 없다면 서비스하는 회사로서 가치가 없다. 또한 완성도가 떨어지는 제품이 회사 이름을 달고 버젓이 시장에 유통된다면 그걸 담당했던 사람들은 자기 개인의 전문성과 회사의 이름에 직무유기를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물론 회사가 합당한 사람을 뽑아서 그 자리에 앉혀야 하고 부족하다면 교육을 통해 실력과 마인드를 프로 수준으로 올려 놓아야 하겠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 스스로의 반성과 학습이라고 하겠다.

부족한 채로 출시된 제품에 대한 심각한 부끄러움이 있어야 개인이 성장한다. 출시했다는 사실 자체에 기뻐하고 마는 사람은 아마추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요즘은 중고생도 일주일만 뚝딱해서 앱을 내는 시대다. 앱스토어 출시 자체가 기쁜 것이 아니라, 이 바닥에서 자기 전문성 가지고 돈 받으며 일하는 ‘프로’들이 과연 프로다운 앱을 냈느냐 하는 것에 깊은 자기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 회사에서 또 하나 갖춰야할 것이 있다면 모든 멤버의 기획자화(化)다. 서비스를 만들 때 기획은 기획자만의 몫이 아니다. 기획자가 사용성을 엉터리같이 잡아오면 그걸 단호하게 거부하고 더 쉽게 바꿔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몫이기도 하다. 그걸 ‘기획자의 일까지 왜 내가 해?’라고 한다면 그 디자이너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만 남고 만다. 개발자 역시 기획, 디자인이 잡아온 사용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당연히 문제제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단 하나의 제품을 만들며, 목표는 간단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쓰는 것’. 더 많은 사람이 쓰려면 공통된 가치는 단 하나밖에 없다. ‘쉬운 것’. 그러니 모든 멤버들이 하나같이 쉬운 사용성 하나에 대해 제품 개발의 전 과정에서 끊임없는 토론과 쟁명, 그리고 치열한 관철과 거부를 반복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내 손을 떠났다고 내 제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런 마인드는 전형적인 하청업체 직원 마인드다. 좋은 서비스 DNA가 있는 회사는 심지어 남의 하청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 철학을 담고 장인정신을 담는다. 그리고 그런 회사가 반드시 좋은 서비스를 만들고 좋은 고객사와 함께 계속 재밌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서비스 개발과 운영의 전 과정에 참여하는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운영인력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공장 노동자가 아니다. 내 공정이 아닌 곳에서라도 ‘쉬운 사용성’이라는 가치에 조금이나마 문제가 될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응당 참견을 해야 하고 서로 얼굴 붉히면서라도 싸워야 한다. 싸우는 이유는 좋은 제품을 위해서다.

만드는 사람들이 평화롭고 서로의 일에 무관심해서는 결코 좋은 제품은 나올 수 없다.

오늘은 진짜로 반성을 많이 했다. 운전하고 오는데 그냥 갑자기 옛날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눈물이 왈칵했다. 그동안 보면은 얼마나 원망을 많이 했는지 모른다. 과거 나에게 피해 입히고 나간 사람들을. 근데 그동안 내가 그들에게 입힌 상처나 잘못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그냥 내 입장만 생각하고 끊임없이 원망만 했다. 단 한 번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고 잔인한 경험이었었는데, 그래서 몇 년 동안 그저 원망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문득 차를 타고 오다가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A는 내가 자기 꿈을 함께 이뤄줄 훌륭한 파트너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섣불리 투자해 놓은 돈이 당연히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 돈을 잃을까봐 당연히 무엇이든 해야했을 것이다. B는 분명 자기는 그럴 의도가 없다고 이야기했는데도 그럴 의도가 있다고 매도되는 것이 억울했을 것이다. B를 따라 나간 멤버들은 인간적으로 살갑게 대하지도 않는 독방 속 어린 대표가 어딘가 못미더웠으리라. C는 능력도 없고 앞으로 나아질 가능성조차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리라. 당연히 그랬으리라. D는 오랫동안 열심히 회사를 지켜도 대표는 다른 일에 관심이 많거나 돈벌 궁리하지 않아 몹시 답답했으리라. 다른 직원들 챙기고 조직 추스리느라 힘들었으리라. E는 회사 나가도 연락 한번 하지 않는 내게 서운했으리라. 회사에 있을 때나 나가서나 묘한 거리감에 불편했으리라.

참 다들 여러모로 서툰 대표라는 생각을 했으리라. 너무 고평가된 대표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으리라. 아직 미완의, 너무나 미완의 부족한 대표 밑에서 얼마간이든 시간을 쓴 자신들이 슬퍼졌으리라..

왜 이 많은 생각들이 갑자기 운전하다 문득 들게 되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부족한 나의 지금보다도 훨씬 더 미숙한 시절에 대한 한스러움, 그리고 생각해보면 참 열정적이고 회사를 사랑했던 이들에 대한 죄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그저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이다. 그들이 나에게, 그리고 회사에게, 동료들에게 종종 못할 짓을 했지만 그건 결국 다 나 때문이었다. 그들이 믿고 들어왔고, 계속 바라보았던, 그러나 기대에 못미쳤던, 고집과 귀찮음만 가득차 있던 나 때문이었다.

이제와 다시 그 모든 잘못된 관계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그만해야겠다. 돌이켜보면 그저 모두가 서로에 대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였다. 나는 그들을 원망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그때보다 약간은 더 쓸만해진 나는 이제 서로 믿고 꿈꾸며 좋은 제품 만들고 있는 소중한 팀과 함께하고 있다. 위의 ABCDE가 없었다면 아마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이거나 또는 만났어도 또 다른 ABCDE가 되어 있을지도 모를 인연들이다. 앞으로는 절대로 잃지 않겠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

JCE의 룰더스카이 대단하다. 지난주에 업계 사람들과 결혼식 갔다가 네댓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가 폰 들고 열심히 이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다같이 인상적이었던 일이 있다. 이 게임이 오늘 기사가 났는데 카카오톡보다 일 평균 이용시간이 많단다. (http://bit.ly/AkqFxJ) 증권사 추정치를 보니 월 매출이 30억을 넘어섰단다. 작은 모바일 게임 하나가 JCE 작년 전체 매출에 상응하는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http://bit.ly/yd0Zj3) 모바일의 빅 비즈니스는 역시 게임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들면서 개인적으로는 웹 소셜 게임을 했던 루비콘과 오버랩되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Pinterest(http://pinterest.com)에 대한 단상

1. 안구정화가 되는 느낌이다. 뭔가 텍스트만 잔뜩 있는 웹을 돌아다니다가 Pinterest에 들어가면 갑자기 감성적이 된다. Twitter의 RT나 facebook Like!가 대개 메시지에 대한 이성적 공감에 가깝다면 Pinterest의 Like나 Repin은 100% 감성적 공감이다. Pinterest가 이미 미국 내 Online retail 서비스의 막대한 트래픽 소스가 되고 있다고 하는데 친구들과의 감성적 공감의 산물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여러모로 BM으로 옮길만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 놀라고 있는 것은 그간 ‘예쁜’ 서비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미국 사람들이 의외로 예쁜 것들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새 dribble을 봐도 그렇고 fancy한 디자인을 하는 해외 디자이너가 눈에 띄게 늘었다. 아마 모바일(그 중에서도 아이폰)의 영향일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만 10개 이상의 Pinterest 미투 서비스가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이미 준비중인 팀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데 facebook과 잘 연계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쁜 모든 것들은 물론 넘쳐나는 소셜 커머스 쿠폰 등도 친구들의 큐레이션에 의해 제시가 된다면 나는 상당히 유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큐레이션 서비스의 최적 UI가 지금의 Pinterest 방식이냐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이미지 중심의 동시다발적 노출을 어떻게 해줄까 고민하다가 나온 형태가 지금의 Pinterest 방식일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친구들에 의해 선택된 things를 ‘가장’ 쉽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형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일례로 현존하는 JavaScript를 가장 잘 파싱하는 브라우저 중 하나인 구글 크롬으로 보아도 Pinterest 사이트는 무겁다. 우리가 옛날 위자드닷컴(http://wzd.com)을 만들면서도 가장 고민했던 것이 ‘과연 이렇게 모조리 펼쳐서 보여주는 것이 최적 UI냐’하는 것이었는데 그때 답이 ‘최적 UI가 아닌 것은 확실한데 아직 딱히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으므로 계속 이렇게 간다’였다. 지금도 5년 넘게 위자드닷컴을 쓰는 유저들은 바로 그 UI가 편해서 이것을 계속 써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Mass를 포용하지 못했기에 나는 그 UI는 최적 대안은 아니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Pinterest의 미투 서비스를 국내에서도 만든다면, 친구들의 큐레이션을 통해 meaningful things를 나열하는 것은 좋은데, 그 UI만큼은 좀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지금은 2012년이 아닌가!

2. Pinterest에서의 내 following, follower 수를 기준으로 추정해 볼 때 서비스 런칭 후 지금까지 가입한 누적 국내 가입자수와 최근 2주간 가입한 국내 가입자수가 얼추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IT 관계자 중심으로 가입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 early adopter들이 쓰기 시작하면 서비스 성장이 비약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예쁘고 fancy한 것을 좋아하는(또한 남의 평가에 대단히 관심이 많은) 한국 여성들이 이 서비스를 접하게 되면 많이 좋아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3. 국내외를 막론하고 지난 십수년간 등장한 인터넷 서비스들 중에서 이같은 유저 큐레이션(그때는 추천이라 불렀겠지만)에 의한 공유 사이트(아마도 당시 국내에선 주로 커뮤니티라 칭하지 않았을까 싶지만)가 꽤 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이제와 이 테마가 빛을 발하는 것 보면 다시금 ‘때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후의 승자는 Pinterest가 될까? 아니면 또 다른 서비스가 될까? 이제 그 때가 온 것일까? 아니면 또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여러모로 재미있게 지켜볼 일이다.

어제 KBS 다큐 3일에 구로디지털단지의 중소벤처기업들이 나왔는데 너무나 공감이 가서 보는 내내 몇 번이나 뭉클해졌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벤처를 하는 이들은 과거 6,70년대 섬유 벤처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일종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사업에 임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 벤처 정신이 없다고 하는건 내가 볼때 미국식 벤처 기준의 지극히 편협한 시각인 것 같고, 사실 옛날 산업 부흥기로부터(지금 대기업들도 초창기엔 다 벤처였으니) 80년대 들어 등장한 기술창업 시대, 그리고 90년대 벤처기업 시대, 2000년대 닷컴 시대를 거쳐 지금 2010년대 스타트업 시대까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가 계속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에 유행하는 용어가 무엇이든 간에 후배들은 자기가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선배들이 과거 시간을 통해 배웠던 소중한 경험을 전수하고 의미있는 교훈이나 정신은 또한 다음 세대로 계승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식 벤처의 정신(spirit)이 생각보다 굉장히 강하고 해외에서도 어느정도 통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보면 인사, 조직, 문화 모든 면에서 너무 미국식 스타트업 스타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전 사회적으로 미국 눈치를 많이 보는 나라이다보니 창업벤처가 미국스러우면 아무래도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하는 잇점이 분명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지금 우리 벤처계에도 영어공용화 이슈와 비슷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벤처의 고유한 정신과 나름의 긴 역사성도 모르거나 존중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테크크런치만 보면서 기백만불 투자니 M&A니 스타트업이니 하는 이야기만 ‘쿨하다’고 받아들이는 양상은 지극히 편협하고 비현실적인(사업은 한국에서 하는데 눈높이는 미국에 맞춰져 있는) 헛똑똑이만 양산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한국 벤처계를 책임질 지금의 우리 젊은 세대가 선배 세대들이 겪었던 고충을 이해하고 그들의 노력을 존중하며 그들의 시간을 있는 그대로(그 모든 과오까지도) 느끼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역사의식이 있어야만 나의 소중한 선배들이 각자의 길에서 보여준 모습이 나에게 큰 이정표가 됐듯, 지금 우리의 모습이 훗날 다른 후배들에게 작은 불씨라도 될 것이오,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이 부끄러울 정도로 소박한 하루하루의 시간이 또한 긴 대한민국 중소벤처기업사의 한 페이지로 오롯이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오지랖이라 하겠지만 어쨌든 나는 선배들의 길에서 너무 많이 배웠고, 그들의 영광스런 어제와 초라한 오늘(또는 초라한 어제와 영광스런 오늘)을 계속 목격하고 있으며 동시에 똑똑한 다음 세대의 등장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는 중간 연결고리 세대의 일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국적 중소벤처기업 정신의 계승 발전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모두가 미국식 스타트업 기준으로 된 책을 보고 그 기준에 부합되는 멘토를 찾아다니고 하겠지만 적어도 나를 찾아오는 몇 안되는 후배들에게만이라도 나는 이같은 한국적 벤처정신의 의미와 저력을 소개하고 과거 우리 선배들의 과오로부터 가장 먼저 배우도록 할 것이다.

나는 우리 후배들이 97년부터 2002년 사이 한국 벤처사에 일어난 흥망성쇠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만으로 묻지마 창업을 몇 번 해보는 것 이상의 많은 공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확실히 사람이 마음의 안정이 있어야 일도 손에 잡히고 능률도 오른다. 사업을 오래 하려는 사람은 창업자 본인과 멤버들이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는 방향으로 여러 복리후생이나 경영방침을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