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시기를 그리며.

술 취한 애인 기숙사 못들어갈까봐 업고 올라간 적도 있었고, 시험 기간에 눈물로 이별 통보를 한 적도 있었다. 웃는 일 우는 일 참 많은 감정의 나날들이 있었지만, 일을 하며 바삐 살다 보면 어느새 참 감정의 요동없이 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성숙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도 감정적인 나날들이 퍽이나 그립다. 지금 다시 하라면 참 어설프고 남사스런 일들이지만, 그래도 감정의 기복이 요동치던 그 시기의 다 처음 해보는 것들에 대한 설렘과 재미만큼은 지금의 어떤 멋진 일들로도 상쇄되지 않는 것 같다. 일상화 된 바쁨이 주말을 만나 딱 멈추는 비정상적인 순간이 되면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그 때가 문득 그리울 때가 있다.

Worker’s high

마라토너들에게 고통 뒤에 따르는 쾌감의 순간인 runner’s high가 있듯이 지식노동자들에게도 열심히 일하다 느끼는 worker’s high가 있는 것 같다. 나도 이따금씩 하루를 30분 단위로 쪼개 일정을 10개씩 소화하는 날에는 자정쯤 되어 더 이상 새로 보낼 이메일이 없는데도 무언가 보내야 할 것만 같고, 내일 해야 하는 일인데도 오늘 해야지 않나 싶어 컴퓨터를 끄지 못하는 그런 업무적 흥분상태에 빠지곤 한다. 그런 날이 너무 자주 있는 것은 몸이 축나니 좋지 않지만 그래도 한 분야의 쟁이를 꿈꾸는 후배라면 가끔이나마 worker’s high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권하고 싶다. 일이 힘들어도 결과뿐 아니라 과정만으로도 흥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오래도록 즐기며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좋은 사장을 꿈꾸며.

요즘 느끼는 것인데 좋은 사장이 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속성을 꼽으라면 단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닐까 한다. 직원들과의 대화, 주주들과의 대화, 고객들과의 대화, 입사희망자들과의 대화, 기자들, 업계 선배들, 주변 사장들, 멘티들과의 대화까지도, 결국 제각기 원하는 것이 다른 이해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그들의 바램을 듣고 우리 상황을 들려주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서로 다른 바램들을 조율해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곧 CEO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멋진 말과 행동으로 진두지휘하는 visionary CEO, 조용히 일 잘하는 실무형 CEO를 넘어서 가장 어렵고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CEO의 유형이 바로 모두와 자유롭게 대화하는 소통형 CEO라고 나는 장담할 수 있다.

소통에는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대화의 시간뿐 아니라 준비의 시간, 대화 내용에 대한 후속 조치의 시간, 각기 다른 이해에 대한 검토와 조율 시간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한 사람과 5분을 소통한다고 해도 여기에는 몇 곱절의 노력이 든다. 그럼에도 조직 내 모든 종류의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고, 죽거나 퇴색된 기업 문화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멤버들이 오너십을 갖고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 나는 CEO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상황을 이해시키고 공감을 구하며 함께 대책을 마련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요즘 절실히 느끼고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가 중간관리자가 없어 거의 모든 민원이 1:N으로 들어와 상당히 애를 먹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어떻게든 소통의 중요성을 깨닫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느끼게 된다면 그들 역시 내 입장과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결국 모든 좋은 조직 문화의 시작은 이해관계자들 서로간의 허심탄회한 대화와 상호 입장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인가? 그래도 일한지 십여년만에 비로소 진심으로 깨닫고 있는 내용이다. 결국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교과서에 적힌 뻔한 이야기조차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