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ue proposition

결국 잘되는 사업의 모든 것이 이 Value proposition으로 설명되지 않나 싶다. 내 상품 또는 서비스가 다른 회사의 그것에 비해 이용하고 구매할만큼 명백히 다른 가치 제안이 있고, 그 제안된 가치에 대한 소비자 수요 또한 분명히 있다면 제품의 완성도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디자인이나 빠른 실행속도, 안정성, 좋은 UX 등은 사실 부차적인 것들이다. 있으면 좋은 것이지만 그것들 때문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쓰는 이유는 다른 곳에서는 제공하지 않는 가치나 기회를 이 곳에서 제공하고 나는 지금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해당 서비스가 느리거나 안예쁘거나 심지어 자주 죽어도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가 없다면 소비자는 참고 그 서비스를 계속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곧 서비스 품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서비스만이 제공하는 고유한 Vaule proposition이 무엇이냐, 그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으냐 하는 것이리라. 일상에서 이미 들어온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미시적으로만 보다보면 자꾸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우리 제품/서비스가 적절한 UVP(Unique Value Proposition)을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더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아무리 장인정신을 담은 crafted works라 할지라도 그 서비스만이 주는 명쾌한 한 문장의 UVP가 없으면 그것은 장인의 자기만족이나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만 생각해보면 요새 가장 잘되는 스타트업들은 각자 자신만의 명확한 UVP를 가지고 있다. 우리들은 어떤 남다른 가치를 제시하고 있는가?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가설이고 주장인가.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많은 이들이 잘못 되가고 있는 계절

SNS에서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잘 나가는 이야기만 들리지만, 실상 주위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도전을 멈춰야 하는 상황에 봉착해 있는 계절이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볼 때 특히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고 그저 주위 신상을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하는 현실이 참 박하다. 모두들 밝고 열정적이었는데 다들 풀이 죽고 유약해졌다. 살아남기란 그렇게 어려운 것인 모양이다. 나도 아직은 살아남았지만 처절히 현실을 응시하고 뛰지 않으면 안됨을 느낀다. 아주 약간의 잘되는 이들이 전체의 어려움을 가리는 일이 허다하다. 앞만 보며 달릴 때에는 내 뒤에 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런 양상을 지켜보는 사람들도 오해하기 마련인데, 후배들이 극소수 잘되는 이들의 모습만 보고 지레 자괴감에 빠지거나 슬퍼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대부분이 어렵고 아주 아주 약간명이 잘되는 그런 시절이니 말이다.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오르내림이 있고, 그것은 시장 상황 같은 매크로한 것들에나 우리 조직이나 제품 상황 같은 마이크로한 것들에도 모두 해당되지만 지금은 적어도 매크로 상황이 심각한 다운 시기임을 이해하고 너무 상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직하고 열심히만 해왔다면 다시 재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돌아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금 잠시 도전을 멈추는 업의 동지들이 계속 힘냈으면 좋겠다.

수행만 하면 성공할 것 같은 Task

일상속 작은 도전들을 하여 실패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 전혀 기분 나쁘지 않은데 다만 내 시간과 힘을 쓸데없이 뺐을 때는 좀 화가 난다. 일을 하다보면 어떤 task를 마주했을 때 ‘이건 얼마 정도의 힘을 빼야 하는 일이다’ 하는 감이 오는데 간혹 그 효용에 비해 생각보다 힘을 많이 빼야 하는 task들이 있다. 그런 일은 수행해야 할지 취사선택을 하곤 하는데 이따금씩 1) 왠지 남들 다 하니까 분위기상 해야만 하거나 2) task를 주는 측에서 수행만 하면 성공하리라는 묘한 뉘앙스를 풍길 때는 우물쭈물하다 이미 그 task를 수행하고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하나 있었는데 역시 생각 이상으로 많은 힘을 뺐다. 그런데 오늘 그 task의 결과가 실패라는 통보를 받았다. 내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task가 아니라 위와 같은 이유였기 때문에 좀 화가 났다. 뭐 이런 일이 한두번은 아니니 또 금방 까먹겠지만 다음부터는 위와 같은 이유로 수행하게 되는 task라면 시작 전에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작의 기쁨

역시 제작자는 제작을 할 때 가장 즐겁나보다. 요새 솜노트 2.0을 만들며 간만에 비교적 큰 제작을 하고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기쁘다. 물론 매일 출몰하는 주요 의사결정들과 현실적인 돈 문제, 그리고 사람들의 사기 문제, 주주들과 미디어의 기대 문제 등 여러가지를 컨트롤하며 가야하므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나 스스로가 하루하루 행복하다.

결과가 물론 중요하지만 제작자는 제작과정 자체에서도 행복을 느끼는구나 싶다. 그래서 제작을 멈추지 못하는 것이겠지. 중독이라면 중독이다 이것도. 물론 솜노트 2.0은 정말 좋은 제품이다. 이것이 점점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제품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모두 상쇄시키는 것 같다. 나는 이 제품이 세상에 나오고, 많은 사용자들이 좋아하고 일상에서 쓸 일을 상상하면 기쁘다.

그리고 그런 제품을 만들 소중한 기회를 나에게 주는 위자드웍스라는 터전이 있어 행복하고, 그 안에 모여 함께 고군분투하며 빠듯한 일정에도 흐트러짐 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우리 팀이 있어 기쁘다. 내가 그동안 힘들었던 결과 이 작은 제작의 터전과 훌륭한 제작진, 그리고 우리를 믿는 주주와 고객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 어떤 대통령을 모시고 한 행사도, 수천 명을 앞에 둔 키노트도, 검색어 1위를 만든 방송도, 수십명 직원에 계열사 만들어 폼 잡던 시간도 다 하나 같이 부질 없었다. 시간 지나고 나면 남의 기억은 물론 내 기억 속에서도 가물가물한 그저 신기루와 같은 영광들이었다 그것들은.

오히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은 제작뿐이었다. 그것만큼 기억에 남는 일도, 배움을 많이 얻는 일도 없었다. 다른 더 재미난 일은 없을까 하고 안해본 일이라면 최대한 겪어보았다. 더러 재미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제작만큼 미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내가 지금 두려운 것이 있다면 사회적 지위나 나에게 어떤 기회가 덜 오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제작자로써 쓸모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를 계속해야 할 것이고 현명한 후배들과 교류하며 옛날에 서비스 좀 만들었던 바보만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0여년 전 좋은 제작자로 이름 날리던 선배들이 지금은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면 경각심을 느낀다.

오늘날 나에게 꿈이 있다면 딱 한번이라도 전국민, 나아가 전세계에서 쓰는 서비스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2001년 고1때 만든 무료 도메인 서비스 이지로(ez.ro)는 월 300만명이 썼었다. 2008년 스물다섯에 만든 위자드팩토리 위젯은 한달에 1,600만명이 이용했다. 2010년경 우리가 만든 모바일 앱 중에 100만 다운로드를 넘긴 것도 3개나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장기적으로 의미있는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나와 당시 함께하던 제작자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그래서 몹시 미련이 남았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그동안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더라면 깔끔히 포기했겠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포기할만하면 다섯 번의 시도 속에 꼭 한 두 번은 100만 서비스가 나왔다.

지금 만드는 솜시리즈는 150만이 쓴다. 이걸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아주 먼데,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더 좋은 제품이 되면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상업적 성공도 언젠가는 거두게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은 그 믿음이 제작자로써 내가 가진 밑천의 전부다. 물론 BM을 잘 설계하고 하루하루 제품에 대한 의사결정을 잘하는 것들이 중요하겠지만 크게 보면 결국은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와 오래 버티는 끈기에서 나머지 모든 문제는 서서히 하나씩 풀려가는 것 아닌가 한다.

그것이 외주 용역이 아닌 컨슈머 서비스를 만드는 (변변한 투자도 받지 않은) 제작팀이 박한 현실에 진중하게 마주하는 유일한 해법이 아니겠는가 싶다. 그런 믿음을 갖고 돈 안되는 솜노트에 거의 2년 반 넘게 바쳤더니 실제로 풀리는 문제들이 있고 우리는 계속 지표의 체크포인트를 넘어 시장의 신뢰와 다음 체크포인트까지 갈 수 있는 자원도 조금씩 얻게 되곤 한다. 예전엔 용역 개발을 같이 하며 제품 만드느라 엄청 오래걸렸던 일들이, 제품의 품질 하나만 믿고 라면 먹으며 한 우물만 파니 지표로 보여지고 자신감이 생긴다. 용역으로 버는 돈은 우리가 많이 해봤지만 돈 쓸 때 외에 전혀 즐겁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우리 제품을 만들면서 라면 먹는 것이 백번 행복하다. 지표가 있고 좋은 제품이라는 시장의 신뢰만 쌓여간다면 기회는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앞으로도 집중할 것이다. 나는 아직 좋은 제작자가 되려면 거리가 멀었지만 적어도 개선되고 있다고는 믿는다. 이전 제품보다 이번이 좋았고 다음 업데이트가 어제보다 낫기 때문에 나와 우리의 다음 제품은 지금보다 뛰어날거라고 믿는다. 지금이야 비록 150만이 쓰는 제품이지만 여기에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하면 그 다음엔 300만, 어쩌면 천만 제품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제품이 그 노력을 했는데도 150만 밖에 쓰지 않는다고 의지를 잃고 포기한다면 300만, 천만 제품을 만들 가능성은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요새 처음이거나 두 세 번만에 수백만명이 쓰는 모바일 제품을 만들어내는 제작자들은 정말로 부럽고 존경할만한다. 그런걸 볼 때마다 ‘내가 ‘born mobile’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데, 사실 그 역시 핑계일 것이다. 나보다 한참 선배들도 모바일에서 수백만, 수천만 사용자를 지닌 제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기에, 지금도 앞으로도 공부하고 노력한다면 못만들 제품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어디쯤 위치할 것이냐를 잘 정하는 일일테다. 제작자냐 경영자냐 그 어디 중간쯤이냐. 나는 스스로 CEO나 경영자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그냥 ‘사람 모아 무언가를 하면서 밖으로 열심히 광 팔러 돌아다니던 사람’쯤이었다면 이제는 제작자로 오래 살고 싶고,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죽겠는 사람으로 명확히 자리하고 있다. 이것이 한 회사의 대표로서 바람직한가 따진다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회사는 지금 product company이고 각자 흥미를 갖고 일할 수 있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 전체 조직에도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아직은 우리 멤버들, 주주들과 믿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싶다.

최근 어디에 갔다가 ‘왜 제작자로 살기를 원하는가?’ 란 질문을 받았는데 대충 이런 대답을 했다. “이 지구상에 살아가는 70억 인구가 대부분 남이 만든 제품의 소비자로 살아간다. 생산자로 사는 사람, 한 번이라도 남이 쓰는 제품을 만들 기회를 갖는 사람은 지구상에 0.1%나 될까? 온전히 나와 내 동료들의 머릿 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우리 손으로 직접 버무려 세상에 던져볼 기회라도 얻어보는 것. 그리고 그렇게 던진 제품이 실제로 세상에서 소비되고 인류를 한 단계 진보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면 그 삶은 매우 의미있는 것 아닌가 한다. 그래서 당장은 부족하지만 계속 제작을 반복하고 배우며 언젠가는 나도 좋은 제작자가 되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나마 내가 기여할 수 있는 IT라는 분야에서.”

내가 그동안 부족함에도 제작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가진다. 많은 후배들도 제작자로 살면서 제작의 기쁨을 누려 보았으면 한다. 나처럼 어려서 우쭐대지 말고 작은 터전에서 소수의 팀과 세상에 기여할만한 크고 의미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 언젠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진 내가 찾아갈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같이 만들자고 더 좋은 제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