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았지만 노련한 위자드호를 타고.

내가 요새 어떤 느낌이냐면 난파 수준의 배를 타고 폭풍우 쏟아지는 바다를 건너는 느낌이다. 배가 아주 낡았어도 이제는 꽤 노련하고 처음 맞는 나쁜 상황쯤은 어느정도 즐길 수 있을 정도도 되었다.

어제는 예상치 못한 일로 5천 남짓한 돈을 갑자기 잃게 생겼는데 이제는 그런 억울한 순간에도 오히려 정신 단단히 차리고 배 몰고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하게 됐다.

요리조리 방향타 잘 돌리고 균형 잡으며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우리 배는 침몰한다. 그 일이 당장 내일이라도 올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 터져도 오로지 전진에만 집중해야 한다.

집채만한 파도가 와도, 배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잘 전진해 이곳을 빠져나가면 우리는 생존할 것이고 또 전열을 가다듬어 계속 항해할 채비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이 블랙펄과도 같은 어마무시한 위자드라는 배를 운항할 수 있는 선장이어서 얼마나 큰 영광인지 모른다. 우리는 매번 배를 살리고 다음 서비스로 새 모멘텀을 만들지만, 거꾸로 그런 배에 타고 있어 우리도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하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여 앞으로도 처음 만나는 어떠한 두려운 순간이 내 앞에 펼쳐진다 하더라도 이 일을 시작한데 대해, 위자드를 8년 넘게 이끌어온데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다. 내가 또 이겨내면 그것은 나만의 자산이자 아무나 들려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되리라.

아쉬움은 버리고, 모색할건 미래뿐.

왜 항상 업데이트를 하고나면 그제서야 더 챙겼어야 하는 부분이 떠오르곤 하는 것일까? 오늘도 업데이트를 했는데 정말 아쉬운 부분이 하나 떠올랐다. 하지만 사용자들이 자주 업데이트하는걸 싫어해서 기본적으로는 2주, 아주 특별한 일이 있을때 1주, 그리고 긴급한 버그가 있을 때에만 즉시라는 정책을 세워두고 우리는 일하고 있다.

따라서 다음 계획된 업데이트까지는 2주 가량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이 사람들이 광고 때문에 많이 떠나가지는 않으려나 걱정이다. 차라리 광고 노출수나 빈도를 줄이면 상대적으로 클릭율이 높아져 수익엔 별 차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노출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초보적이고 반사적인 두려움으로, 나 포함 우리팀 모두가 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쉬움 없는 업데이트가 얼마나 자주 있었단 말인가. 어찌보면 나의 과욕이고 과민일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 가지고 너무 고민하면 발전도 없고 소중한 다음 기회도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정녕 마지막이라 생각한 상황에서도 세상은 우리가 몰랐던 다음 기회를 어떻게든 마련해 주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갖고 아등바등하고 있으면 나에게 한두번의 기회가 더 생긴지도 모르고 그저 후회만 하다 정말 끝나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늦은 것 같은 순간에도 우리는 계속 기회를 모색해야 하며, 나에게 남은게 단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방법을 찾고 실행으로 옮겨봐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게임은 절대 쉽게 끝나지 않는다. 남에 의해, 상황 때문에 내 판이 허무하게 끝날거였으면 애초부터 시작할 자격도 없었을 것이다.

고로 우리는 오늘도 충분히 잘했다. 남들보다 훨씬 적은 자원으로, 팀과 개인이 그간 갈고 닦은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최적 의사결정의 합으로 하루를 마쳤다. 언제나 아쉬움은 있으되 절망은 없다. 매일이 두렵지만 포기하진 않는다. 모색과 시도를 멈추지 않으면 다음 기회는 항상 열리고 내가 걱정한 ‘마지막 기회’는 거짓말처럼 더 이상 마지막 기회가 아닌 것이 된다.

말하지 않으면 사장도 잘 몰라요

회사에 돈이 없는 상황에서 돈없는거 뻔히 아는데 사장한테 서비스 퀄리티에 꼭 필요한 무언가를 사달라고 해야할까? 도저히 여력이 없어 꼭 사람이 필요하다면 이 상황에서 뽑아달라고 말해야 할까?

답은 둘다 당연히 YES다. 사장은 물론 안들어줄 수도 있다. 당연히 저 상황에서 못들어줄 가능성이 더 높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얘기해야 한다. 왜냐면 요청한 구매대상이나 충원대상을 적어도 사장의 문제의식 리스트에 올려는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이루어줄 수 없어도 자원이 생기면 최우선 고려할 수 있고, 최소한 당장은 자원이 없다라도 내 요청 목록을 계획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미리 말해 놓아야 최대한 빨리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사장 힘들거 생각해 혼자 묵히고 말을 않고 있으면 회사는 더 큰 수렁에 빠질 수 있다.

돈 없는거 뻔히 알면서도 물품이나 사람을 요청했다면 대단히 필요한 상황 아니겠나. 그런데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을 사장에게 말 안하고 있으면 그것은 회사의 구성원으로써 더 큰 책임에 대한 방기요, 잘못하면 그때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까지도 질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사장이야 똥물을 뒤집어쓰던 다른 사장에게 가서 구걸을 하던 상관없이 나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회사가 어려울 때라도 서비스와 제품의 퀄리티에 꼭 필요한 그것을.

회사야 원래 돈이 일시적으로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시간과 돈을 쓰며 이용하는 서비스와 제품만은 어떤 순간에도 타협해선 안된다. 회사가 어렵다하여 제품 퀄리티가 떨어지면 그날로 회사는 정말 끝이다.

하지만 지금 잠시 돈 없어도 이 회사 제품과 서비스가 여전히 끝내주면 회사는 반드시 살아날 기회를 맞는다. 왜냐면 사회적으로 그런 회사는 유일무이하게 존재할 가치가 있으므로. 그러나 돈 좀 없다고 제품 퀄리티 바로 영향받는 책임감없는 제작팀은 독립적인 기업으로 존재할 사회적 가치가 없다.

따라서 스타트업에 속한 제작팀원들이 고민할 지점은 딱 거기에 있다. ‘내가 만드는 제품의, 내가 맡은 파트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지금 당장 무엇이 필요한가?’ 각자가 그것만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사장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라. 지금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사장은 바로 그걸 몰라서 혼자 엉뚱한 계획을 짠다. 직원들은 사장을 동정하고 배려해 말을 안하고. 서로 오지랖 부리다가 제품을 망치면 비로소 그 회사에는 미래가 없다.

반드시 용기를 내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그리 하는게 모두를 살린다.

다 이해하면서도 해줄 수 없는 일들

회사를 살리기 위해, 그리고 나도 살기 위해 제품을 훼손하고 무리하게 광고를 붙였다. 돈은 벌리는데 담당 PM은 광고를 즉각 떼야한다는 읍소를 해왔다. 그게 어떤 심정일런지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린다. 내가 그였어도 똑같이 그리 했을 것이다. 나에게 아직까지도 두가지 옵션이 있다.

첫째는 이대로 두어 사용자가 이탈하는 것을 감내하고 빡세게 돈을 벌어 빚을 갚고 다시 살아 남을 것이냐, 둘째는 돈을 포기하고 사용자를 들고 투자를 받으러 다닐 것이냐. 후자는 리스키하다. 투자 유치는 돈이 어느정도 있을 때 다녀야 우리에게도 협상의 여지가 있는 것이고,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만약 정작 성사가 안되어도 나에게 플랜 B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시간을 더 써서 돈은 더 없을 것이다. 성패의 주도권이 외부 요인에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크다. 고로 안전한 안은 첫번째다.

이것은 내가 안전지향적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미래에 베팅하는 두번째의 선택을 여러차례 하며 달려왔기 때문에 더 이상은 안된다며 나의 안전장치가 발동한 까닭이다. 끊임없는 도전이란 무모하게 안될 일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게 안됐을 때 바로 다음 도전을 할 최소한의 자원은 남겨놓는 것이다. 그러다 그게 어느 임계점 이하로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안전장치가 작동한다. 지금은 나에게 딱 그런 시기인 것이다.

유저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보다 직원들의 일터를 지켜야만 하는, 주주들의 믿음을 견지해야 하는 그런 시기. 그러다보니 첫번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내가 슬프다. 내가 그동안 더 잘해서 계획만 가지고도 수십억 우습게 투자 받는 사람이었더라면 우린 고민없이 둘째안을 택하고 지금 더 큰 꿈을 꾸고 있으리라.

아마 우리 PM도 내 입장의 상황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가 그 제품의 PM이기 때문에 당연히 항변할 수밖에 없음을 100% 이해하고 철저히 공감한다. 그러기에 선배로서 뜻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지 못하는 점이 몹시 서글프다. 나는 지금까지 대체 무엇을 한걸까? 그냥 즐거운 사업놀이를 한걸까? 제작자로써 제품에 광고를 덕지덕지 넣어 훼손한 것보다 후배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어 볼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이 너무 미안하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창업을 그냥 재미나 경험으로 해서는 절대 안되는 이유인 것 같다. 좋은 문제를 찾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면 십수년을 쉬지 않고 일해도 계속 똑같은 서러움만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도 그 굴레에서 딱 한번만이라도 벗어나보기 위해 여전히 이 수행같은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