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논산에 입대합니다. 지금 시간이 새벽 4:40인데 한 3시간 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들어가는 오늘까지도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돌아보면 매순간이 시속 200킬로의 삶이었습니다. 한 순간도 방심하고 멈추거나 좀 쉴라치면 바로 위험해졌습니다. 제 능력이 부족한 탓에, 저는 전속력이 아니면 금방 어려워지곤 하는 부족한 CEO였습니다.
어려운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처음엔 사람이 가장 어려웠고 나중엔 제 능력 부족을 깨달았고 최근엔 돈이 없으면 사람이 많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을 제대로 못주거나 잘 못마련해오는 대표는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 그들의 가족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최근 2년간 그랬습니다. 좋은 서비스 만들겠다는 naive한 생각으로 생활의 기본이 되는 돈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제가 고생하는건 괜찮았는데 직원들을 좀 힘들게 했습니다.
작년 초부터 제가 겪어본적 없는 정도의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습니다. 서비스하겠다고 외주 안하고 잘하는 일 안하고 하고싶은 일 하다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돈 꿔오고 다행히 예전에 만들어 두었던 앱이 팔려 또 연명하고 하면서 버텼습니다. 작년 가을쯤에는 드디어 제가 등록된 채무자가 되었습니다. 신용불량자로 가기 직전의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아무튼 카드 한도가 80만원 정도로 줄었고 회사나 개인 계좌 모두 잔고 제로에 카드는 다 연체였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만들고 있는 제품이 테마키보드였습니다. 거기엔 원래 광고를 그렇게 붙일 생각이 아니었는데 제 상황이 채무자까지 되니 안붙일 수 없게 됐습니다. 제작자적 사명감이 있는 직원들 다그치고 혼내가며 막 말도 안되게 광고를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사용자들에게 욕 먹으면서 돈이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평점은 2.8이었는데 생각보다 앱을 지우지는 않고 적응하고 있기에 그냥 두었습니다.
그렇게 몇달 지나니 이제는 지표가 모두 통제되고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광고를 더 세련되게 붙이는 방향으로 기획중이고 기능 개선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면 저는 이제 회사가 우선 자생력을 갖춰야 꾸미기도 좀 하고 살도 붙이고 하는 활동을 더 여유 시간과 사고를 갖고 할 수 있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큰 투자를 받아 돈을 쓰면서도 한구석에선 걱정이 되고 여유 시간은 점점 옥죄어 올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의 후배들이 있다면 무리해서라도 BM을 갖고 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처럼 극단에 몰리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키보드로 다시 BEP를 넘겼습니다. 자금난을 겪으면서도 직원들이 거의 아무도 안떠나고 회사를 지켜줬습니다. 키보드나 솜노트나 그 사이 사용자나 사용량은 계속 늘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의인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 회사 투자를 검토하던 모 VC의 팀장님은 투심이 잘 안되자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시간을 쓰게 해 미안하다며 저에게 개인돈 수천만원을 꾸어주셨습니다. 몇달이 지난 어제 제가 큰 이자를 더해 되갚았습니다. 그렇게 이제는 망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꼭 누군가 나타나 한달씩 수명을 연장시켜 주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아주 어려움을 먼저 겪은 선배가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있습니다. “절벽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보니 절벽이 아니야. 근데 그 절벽이라는게 사실 끝이 없다. 버티면 떨어지는 절벽은 절대 없어.” 저도 그 길을 가보니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어떠한 절벽도 저는 또 숨겨진 길이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 시기 돈을 꿔준 모든 분들께 위와 같이 이자를 크게 쳐서 어제 모두 갚았습니다.
IGAWorks라는 좋은 회사가 제 입대 이틀전 위자드웍스를 인수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내년이면 설립 10주년이 되는 회사로 각각 B2B와 B2C에서 강점이 있는 회사입니다. 아주 좋은 궁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분을 팔 생각은 없었는데, 어려운 시기 다 못주었던 퇴직금이나 일부 밀린 월급 등이 아직 있어 이것들을 정리할만큼만 조금 팔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제 10년을 속박하던 연대보증, 개인빚, 급여 등으로부터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자유는 딱 하루뿐입니다. 이제 오늘 현역으로 입대하니까요. 하하. 그래도 정신적 자유가 물리적 자유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땅의 모든 대표님들은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지만 지난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3월 1,2주차에 매일 밤 퇴근 후 세시간씩 위자드 스몰 MBA 프로그램을 촬영했습니다. 군대가면 왠지 저 바보될까 두려워 나중에 저를 위해 찍어둔 스타트업 창업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제 대학 후배인 김성대군이 직접 촬영과 편집을 맡아주었습니다. 오는 4월 중순부터 2주에 한편씩 유튜브를 통해 공개될 예정입니다.
어느 선배는 제게 잊혀지기 싫어서 영상을 올리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분명히 이런 일을 하는 데에는 진짜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설사 그 두 목적이 모두 맞다 하더라도 누군가 어느 후배에게는 아주 사소하게나마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여 그 적은 분들을 위해 저의 지극히 무식하고 알량한 배움을 공유해 놓고 갑니다. 영상이 나올 때 저는 여기에 없으므로 어떤 피드백이 나올지 알 수 없으므로 미리 사과드립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 저의 불찰과 부족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하우징 펀드를 준비하다 들어갑니다. 다른 일들이 많아 모금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휴가 나와서 천천히 사람 만나며 준비하려고 합니다. 올 한해 모금을 진행해 내년도에는 첫 수혜자를 모집하려고 합니다. 이 역시 제가 돈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돈 없어도 뜻만 있으면 누구나 좋은 일을 벌여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수혜자가 아주 작아도 매우 창의적인 공익 프로그램들을 곳곳에 만들어 나라가 해주기 어려운 간극의 어떤 부분들을 긁어줄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펀드는 천천히 계속 준비를 해보고자 합니다. 파트너가 되어주실 분들은 housing@wzd.com 이나 pyo@wzd.com 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 제가 휴가 나와서 다 읽어보고 천천히 답변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마지막 편지를 마칩니다. 어떻게든 저의 1막이 잘 끝난 것 같습니다. 참 진짜 사서 고생이었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진짜 계속 계속 계에속 전속력으로 살려고 달리고 버티니 어떻게든 끝이 맺어집니다. 지금까지 도와주신 선배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특별히 위자드의 가능성을 잘 포착하신 IGAWorks의 마국성 대표님, 키보드 광고 사업의 가능성을 저보다 먼저 발견하고 말씀주신 브라운교육의 최창우 대표님, 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인생의 파트너 아이커넥트 정명원 대표님, 김성대, 박재윤, 박재현, 장윤재, 박재윤 우리 미벤 식구들, 토요산업공부모임 식구들, ‘좋은 친구’ 정민이형, 언제나 희망을 준 종옥이형,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주신 장기진 대표님, 설한욱 대표님, 이지애 대표님, 성문이형, 철호형님, 도연이형, 성준이형, 정웅이형, 주형이형, 영흠이형, 연수형, 대중이형, 민규형, 사랑해 마지않는 영욱이형, 재석이형, 그를 인수해 주신 정연 이사님, 광석이형, 미키형, 록이형, 석진이형, KTB네트워크 경국현 차장님, 김철홍 부장님, SBI 박준혁 부장님, 주완종 변리사님, 프라이머 권도균, 이택경, 류중희 대표님, 민윤정 대표님, 위자드를 있게 해준 위자드 OB식구들, 사랑하는 얀, 가족들, 그리고 위자드의 새 10년을 열어갈 지금의 위자드웍스 주역들. 지환, 신효, 지훈, 영남, 성규, 현철, 수연, 예진, 다희. 돌아와서 만날 IGAWorks 멤버들, 김수영 이사님, 자영팀장님, 광우팀장님, 다연님. 모두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겠습니다. 제가 크게 엊나가거나 뒤틀리지 않고 무사히 여정을 마칠 수 있게 도와주셔서 모두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건강해져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훈련소 입소날 새벽 5:40. 표철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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