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發 혁신성장을 위한 대정부 제언 (1)

안녕하십니까, 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한국의 첫 블록체인 컴퍼니 빌더인 체인파트너스를 운영하고 있는 표철민이라고 합니다. 컴퍼니 빌더란 ‘회사를 만드는 회사’를 말합니다. 설립 취지에 따라 창업 1년만에 110명의 직원을 직접 고용하고 10개가 넘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취해진 우리 정부의 ICO 전면 금지와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신규 가상계좌 제공 중단 등 일련의 조치에 대하여 블록체인 분야 종사자 중 가장 중립적인 시선으로 ‘투기 과열 해소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말 하루 12조원에 달하던 국내 가상화폐 거래액이 현재 하루 1조원 내외로 크게 줄어, 투기 과열이라 할 만한 근거를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정부 정책이 아주 효과적으로 작용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차분하게 이 가상화폐라는 아이가 무엇인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쉽게 설명하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모두가 신뢰할만큼 복제가 어려운 딱지를 만든 것입니다. 복제가 불가능한 이 딱지를 100만개 만들어 시장에 유통시키면 딱지를 더 많이 갖고 싶은 사람과 이걸 팔고 싶은 사람이 거래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 딱지에 이름을 붙인 것이 ‘Cryptocurrency’, 이른바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입니다. 이름을 이렇게 붙인 것이 문제였습니다. 초기 투자자들이 ‘이것이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 주장에 처음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었지만 가격이 급등하자 그런 주장을 믿는 사람이 점차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많은 화폐학자들이 ‘그것이 화폐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을 했습니다.

오늘날 비트코인 장외거래 시장에서는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갓 채굴된 비트코인은 시장에 유통되는 비트코인보다 5% 가량 높은 가격에 거래 됩니다. 비트코인은 과거 어느 거래에 사용되었는지 누구나 열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느 거래소 해킹 사건 때 털린 비트코인이거나 마약 거래에 이용된 비트코인은 사람들이 보유하기 꺼림칙해합니다.

이는 화폐의 기본 성격 중 하나인 가치 동등성(과거 어떤 거래에 이용되었던 화폐이든 액면에 표기된 가치는 모든 화폐가 동일하게 반영해야 한다)에 위배됩니다. 이뿐 아니라 가치를 담는 그릇으로서 그 가치의 크기가 과도하게 출렁이는 문제 등 가상화폐는 법정화폐가 추구하는 화폐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따라서 가상화폐가 스스로 감히 ‘화폐’라 주장하는 순간, 그리고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이것이 언젠가 우리가 쓰는 법정화폐를 대체할 것이라 믿는 순간, 작년 JTBC 가상화폐 토론에서의 유시민씨와 같이 전통 경제학을 공부한 분들로부터 처절하게 난타당할 것은 뻔한 미래입니다.

실은 우리가 가상화폐라고 부르는 것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나 명품처럼 자산의 성격이 훨씬 강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인 다이아몬드 가격은 땅 속에서 정해져 나온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현재 지불할 의향이 있는 금액이 곧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됩니다. 루이비통의 백이나 애플 아이폰, 강남의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상품과 자산은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합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집니다.

비트코인은 작년 초에는 950불이었다가 작년 말에는 13,600불이었습니다. 현재는 6,600불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화폐가 아닌) 자산입니다. 요즘은 법정화폐와 1:1로 연동된 가상화폐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비트코인보다는 상대적으로 화폐의 성격이 훨씬 더 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정화폐 없이는 연동된 가상화폐 의미가 없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용어부터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가상’이라는 말은 허구성이 느껴지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점차 퍼지고 있는 디지털 자산(Digital Asset)’이라는 용어를 제안합니다.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취급 라이센스인 ‘BitLicense’를 뉴욕주로부터 받아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북미 최대 거래소인 Coinbase도 최근 오픈한 서비스들에서 Currency라는 용어 대신 ‘Digital Asset’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자산이라는 표현은 가상화폐를 일컫는 조금 더 광의의 표현입니다. 디지털 자산의 성격에는 크게 네 가지가 있습니다. 제 나름의 분류로 다음과 같습니다.


1. 순수 디지털 자산: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정확히는 이더리움에서 사용하는 화폐인 ‘Ether’), 리플(엄밀히 따지면 리플의 화폐인 ‘XRP’)처럼 현실세계의 화폐 또는 자산과 전혀 연동되어 있지 않은 디지털 자산을 말합니다.

이것들의 가치는 수요과 공급에 따라 무척 출렁이기 때문에 이것이 화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로 하여금 디지털 자산 전체의 가치를 폄하할 중요한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2. 법정 화폐 연동 디지털 자산: 미국달러(USD)와 가치가 1:1로 연동되도록 설계되어 있는 USDT(USD Tether)나 TUSD(True USD)류의 디지털 자산을 말합니다. 이른바 ‘Stable Coin’이라고도 부릅니다.

한국에서는 티몬의 신현성 창업자가 IMF가 발행하는 국제 통화 바스켓인 SDR과 1:1로 연동되는 Stable Coin을 만들겠다고 공언한 상태입니다. 많은 회사들이 원화(KRW)와 1:1로 연동되는 Stable Coin을 만들고자 구상해 왔지만 여러 규제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3. 전통 자산 담보 디지털 자산: 부동산이나 그림, 자동차, 금, 다이아몬드, 원유, 주식, 채권 등 우리가 돈 주고 소유할 수 있는 모든 전통 자산을 담보로 하는 디지털 자산을 말합니다.

100억짜리 그림이 있다고 치면 기존에는 100억이 있는 사람만 이 그림을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빚을 내서 살 수는 있지만 최소한 이자를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을 담보로 100억개의 토큰(‘코인’이 일반인에게는 더 익숙하지만 코인이라는 용어는 ‘가상화폐’와 비슷하게 일정 가치로 현금화가 가능하다는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이라 최근 해외에서는 조금 더 중립적으로 ‘토큰’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이 글에서도 ‘코인’은 모두 토큰으로 표기합니다.)을 만들면 단돈 100원만 있어도 100/100억 만큼의 권리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자산 투자의 혁명입니다. 부자들만 접근 가능했던 미술품이나 땅, 고가의 부동산에도 작게나마 일반인이 투자할 기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그림을 팔려면 갤러리에 맡기고 중간에서 갤러리가 30%씩 수수료를 떼는 것도 예삿일이었습니다.

토큰으로 만들어 사고 팔면 권리의 직거래가 가능해집니다. 내가 가진 권리만큼만 거래가 가능하므로 모든 그림 소유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습니다.

전통 자산의 거래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기회가 있습니다. 이는 화랑과 부동산 등 중개자를 제외하고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큰 혜택입니다. 일부 부동산이 REITs 상품으로 개발돼 상장된 경우는 있지만 여전히 이 세상 대부분의 부동산은 아무나 살 수 없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전통 자산은 유동화가 까다롭습니다. 돈이 필요한 주인은 권리를 손쉽게 쪼개 팔기 어렵습니다. 그림 하나를 통째로 내다 팔아야 합니다. 전통 자산 담보 디지털 자산은 자산 유동화를 비약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존에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 정도만 할 수 있었던 서민들도 이런 시대가 오면 클림트의 명작 <키스>를 담보로 만들어진 토큰에 투자하거나 이중섭의 <황소> 그림 일부를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위례 이후 10년만에 조성된다는 신도시 땅 역시 서민들이 나누어 소유할 기회도 생길 수 있습니다.

전통 자산의 권리 관계와 토큰의 권리 관계를 이어줄 회사는 필요할 것입니다. 기존 신탁사와 보험사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시대는 당연히 올 것이고 이끌어 세상이 변화하는 기회를 잡느냐, 뒤쳐지느냐는 온전히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4. 프로젝트 파이낸싱형 디지털 자산: 특정 프로젝트나 사업에 투자하고 해당 사업 성과에 따른 배당 권리가 부여된 디지털 자산을 말합니다. 이는 주식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의 기능과 유사하지만 훨씬 더 유연합니다.

한 회사가 신사업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여러 사업마다 개별적으로 투자를 받아 해당 사업의 배당권이 부여된 토큰을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일주일짜리 전시나 공연 같은 단발성 사업 역시 토큰화할 수 있습니다. 주식은 호흡이 길어 이런 형태의 프로젝트성 투자에 이용하기에는 불편합니다.

주식은 우선 유가증권 시장 상장 이전의 거래비용이 높습니다. 거래 상대방을 찾기도 힘듭니다. 배당도 1년에 한 번, 많아야 6개월에 한 번 이루어집니다. 토큰화된 자산은 배당을 매일 할 수도 있고 언제든 거래 가능합니다. 거래 상대를 찾기도 상대적으로 쉬우며 거래 비용도 비상장주식 거래에 비해 대단히 낮습니다.

주식회사 경영진의 불투명한 경영을 보완할 수도 있습니다. 계획된 청산일이 되면 경영진의 뜻과 무관하게 잔여 자산을 모두 토큰에 배분한 후 자동으로 프로젝트가 청산되도록 설계할 수도 있습니다. 경영진이 지출하는 비용 내역을 모든 투자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설계도 가능합니다.

프로젝트의 운영 방향이나 배당 성향을 투자자들이 직접 투표로 정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기업들처럼 주주총회, 감사, 사외이사 등 각종 견제장치가 선진국의 그것만큼 엄정하게 동작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기업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큰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같은 디지털 자산의 등장과 활성화는 기존 자본 시장, 또는 기업 환경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많은 정부가 아직 이 정도로 중요성을 인식 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의 투기 열풍으로 인해 협의의 디지털 자산, 즉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순수 디지털 자산’에 대한 투기 수요 억제와 장기적 제도화 정도는 필요하다 정도의 인식이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정부가 아직 다른 나라의 상황을 천천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우선은 선제적으로 막아 놓았지만, 거래 자체를 전면 금지한 것도 아니고 ICO를 금지한다고 했지만 외국 나가 진행한 많은 ICO에 철퇴를 가한 상황도 아닙니다.

저는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육성할 것이냐, 죽일 것이냐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스탠스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최근 몇몇 나라가 이걸 육성하거나 적어도 방해하지는 말아야 할 대상으로 규정짓고, 하나둘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모든 나라가 발벗고 나서서 적극 육성 대열에 올라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보다 작은 경제규모 국가에서만 긍정적 육성으로 돌아선 것은 아닙니다. 이미 싱가폴, 프랑스, 일본, 스위스, 홍콩, 호주, 미국의 일부 주가 변화를 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작년 비트코인 거래량의 약 15%, 나머지 코인 거래량의 약 55%를 차지하며 전세계 코인 투기 열풍을 이끈 나라였습니다. 그로 인해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우리 정부가 가상화폐에 대해 부정적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 먼저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분야에서 늦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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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기준 전세계 거래량에서 원화가 차지한 비중. 각각 비트코인의 15%, 알트코인의 55%를 차지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디지털 자산의 긍정적 측면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직 위 유형 중 수급에 의해 가격이 급등락하는 ‘순수 디지털 자산’만이 현재 정부가 목격하고 우려하고 있는 디지털 자산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자산에는 가격 변동이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는 유형도 있고, 담보물이 있어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대상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와 세계 주요국가들은 배당권이 부여된 프로젝트 파이낸싱형 디지털 자산에 대해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국이 오랜 시간 만들고 가꿔온 자본시장에 대한 도전이며, 자칫하면 전통 시스템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충분히 타당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증권 시장만 보더라도 증권사는 지극히 한정된 상황과 범위, 규모 내에서 법과 규제당국이 정한 틀을 준수하며 시장 조성(Market making)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코스닥에 처음 상장한 작은 종목은 아무래도 주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같이 규제를 준수하는 시장 조성자가 일정한 유동성을 공급해 수급에 따른 급등락을 방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나서서 주가를 끌어올리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코인 시장은 다릅니다.

시장 조성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 대부분의 코인 회사들이 시장 조성자를 고용합니다. 이들에 대한 일정한 가이드라인이 없으므로 이들이 코인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법정화폐를 이용해 디지털 자산을 산다면 기존 자본시장의 룰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정이 끼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작용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이 심지어 기존 자본시장을 오래 운영해 본 결과 나타난 고질적인 문제점들(부자들만 고수익 자산에 투자 가능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빈익빈 부익부의 문제, 자산 유동화의 어려움, 거래 비용의 문제, 주식회사 경영진 견제 장치의 오작동 등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크게 개선할만한 가능성이 있는 수단이라면 말입니다.

우선은 편견없이 들여다보고 다같이 공부해 보아야 합니다. 긍정적 측면이 있는 것은 도입을 검토해야 합니다. 심지어 스위스, 싱가폴 등 오랜 세월 금융 허브였던 나라들이 기회를 포착하고 먼저 움직이고 있기에 더욱 시간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국민들이 돈을 잃었지만, 어쩌다보니 전세계 거래량의 1/3을 차지하게 된 미래 금융을 그냥 이대로 버려서는 안됩니다.

만약 이것이 진짜 채권이나 원유 정도의 자산 중 하나가 된다면(저는 원유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거래의 글로벌 허브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하루하루 잃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가 글로벌 금융의 중심이었던 적 있을까요? 부산을 글로벌 금융 허브로 키운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디지털 자산이 금융을 이루는 여러 자산의 유형 중 하나가 된다면, 한국은 그 자산 유통의 주인공이 될 기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지만, 이대로 가면 그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전세계 펀드 매니저들이 이용하는 금융 정보 서비스인 Investing.com은 이미 올 초부터 암호화폐를 주식, 원자재, 외환, 채권 등과 동일한 지위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는 블록체인보다 디지털 자산의 효용에 더 주목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디지털 자산에 신뢰를 부여한 기반기술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의 탁월함에서 디지털 자산은 태어났습니다. 디지털 자산은 블록체인 기술이 낳은 첫번째 글로벌 히트작인 셈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이 시작된 이후 정보나 상품의 유통 과정을 줄여 또다른 독점적 중개자로 떠오른 여러 인터넷 사업자들의 권력을 빼앗는데 앞으로 20여년간 천천히 기여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그다지 빠르지도, 결코 전복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독점적 중개자들은 중개 수수료를 벌어갈만큼의 해자를 잘 파두었습니다. 그들은 블록체인의 도전에 영리하게 대응할 것이고, 아쉽게도 블록체인이 실제로 바꿀 분야는 생각보다 제한적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블록체인이 정말 뜰거 같으면 그들이 누구보다 먼저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전혀 놀랄 것도 없이 이미 국내외 주요 인터넷 사업자들은 블록체인을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기득권이 없는 새로운 것입니다. 물론 비트코인은 나온지 9년이 넘었지만 앞서 열거한 네 가지 유형의 디지털 자산은 대부분 이제 시작입니다. 법정화폐를 경쟁자라 여기지 않으면 특별히 전복시켜야 할 대상도 없습니다.

블록체인은 육성해야 할 대상이고, 가상화폐는 타도해야 할 사회악이라는 인식은 저는 오히려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고 봅니다. 블록체인은 아직은 그리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386 컴퓨터가 처음 나왔는데 그걸로 가상현실 하자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중개자를 모두 없애는 꿈은, 언젠가는 되겠지만 시간이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합니다.

허나 디지털 자산,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이 만든 첫번째 히트작입니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200조원 이상의 적지 않은 시가총액도 가지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호하지만, 디지털 자산이 할 수 있는 일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법정화폐와 연동된 디지털 자산을 만들어 신용카드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모든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결제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천년간 쪼개 팔지 못하던 여러 자산을 손쉽게 쪼개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투명한 배당, 직접 민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회사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디지털 자산이 제도화되는 순간 펼쳐질 수 있는 일들입니다.

디지털 자산, 가상화폐를 우리 국민들이 과도하게 투자했다고 하여 결코 탄압하거나 억제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미래의 돈을 넘어 미래의 주식이요, 채권이요, 땅 문서이자 자산 권리증서입니다.

다만 우리는 보다 건전하게 도입하고 단계적으로 제도화할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과도한 기대에는 거품이 끼기 마련이고, 거품기에는 필연적으로 탐욕과 미숙으로 가득찬 사업자들이 시장을 어지럽힙니다.

이 글은 2회로 나누어 올립니다. 오늘은 디지털 자산의 의미와 우리가 처한 상황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입니다. 다음 글은 한 축으로는 디지털 자산 산업의 육성 측면으로, 다른 한 축으로는 투자자 보호 측면으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해 보겠습니다.

이건 단순히 제 사업 하나 잘 되자고 쓰는 글이 아닙니다. 이 업계를 위해, 나아가 이 나라의 미래 먹거리를 위해 씁니다. 대한민국이 얼떨결에 갖게 되었던 디지털 자산에서의 리더십을 하루하루 잃고 있는 사이, 금융 허브를 꿈꾸는 나라들이 빠르게 디지털 자산 관련 정책을 마련하고 제도화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아쉬운 마음 가득 안고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씁니다.

우리나라에 더 이상 성장 산업이 무엇이 있을까요? 모두 주지하다시피 글로벌 1위 하던 많은 품목들이 하나둘씩 중국에 추월 당하고 있습니다.

조선업도 끝났고 LCD도 중국과 동일한 수준에 왔습니다. 마지막 남은 반도체 조차 얼마나 버텨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가상화폐 투기를 조장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더 먼저 관심 갖고 경험하게 된 디지털 자산의 글로벌 산업화를 이끌자는 것입니다.

저희 회사만 해도 1년만에 110명을 고용했고, 지난 1년간 온갖 부정적 시선 속에서 탄생한 이 업종의 100여개 업체가 최소 2천명 이상을 신규 고용했습니다. 이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면 양질의 일자리 10만개는 더 만들 수 있습니다.

최근 거품이 크게 꺼지고도 18개월만에 시총 200조가 늘어난 초고속 성장 산업이라, 외국 자본의 국내 유치도 다른 어떤 산업보다 유망하다고 봅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블록체인/가상화폐 관련 행사만 최소 200여개가 넘습니다. 호텔/컨벤션/식당/클럽 등 이들 행사의 내수 시장 기여도 적지 않습니다.

돌아가는 현상만 한탄하며 아무도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바꿀 수 없습니다. 한국의 가상화폐 투자자와 블록체인, 디지털 자산 분야 스타트업들이 나라의 정책에 의해 손발이 묶인채 숨죽여 지내는 사이, 중국계 기업들은 이 시장의 제도화를 점치고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 진출해 로펌을 사서 철저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제안합니다. 가상화폐를 넘어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자산’입니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가상화폐는 그 중 극히 일부입니다. (정부가 열어주어야 하겠지만) 언젠가 디지털 자산에 실물 자산이 담보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토큰의 가치 산정이 가능해지고 보다 건강한 투자도 시작됩니다.

전통 자산 담보 디지털 자산과 프로젝트 파이낸싱형 디지털 자산은 통칭해 이른바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이라 불립니다. 최근 미국과 싱가폴, 스위스 등 주요 국가는 증권형 토큰을 제도화하는 엄청난 변화의 길에 들어 섰습니다. 기존 자본시장을 건드리거나 훼손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시작될 일이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내가 먼저 하겠다는 나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길에 현격히 뒤쳐져서야 되겠습니까? 전세계 거래량의 30% 이상을 해온 우리가 자본시장이 ‘토큰화(Tokenizing)’라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의 길에 들어서는 지금 그냥 지켜보기만 해서 되겠습니까?

증권형 토큰의 제도화를 촉구합니다. ICO(토큰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의 단계적 제도화와 디지털 자산 거래소 제도화 역시 늦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이 시장의 진정한 핵심은 ‘가치 산정(Valuation)이 가능한 토큰의 개발’입니다. 증권형 토큰이 아닌 어떤 토큰도 ‘적정가치’가 없습니다. 오로지 수급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는 토큰만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시장 건전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적정 가치 산정이 가능한 ICO, 적정 가치 산정이 가능한 토큰들이 거래되는 거래소라야 투자자에게 이 가격이 옳은지를 가이드 해 줄 수 있습니다. 가치 산정이 가능해야 기관 참여도 가능해지고, 기관이 참여해야 시장도 건전화됩니다.

개인들이 모인 팀 정도 수준으로 작전이 어려울 정도로 거래 규모가 커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관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기관 참여 없이 시장 건전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가치 산정이 불가능한데 본격적인 기관 참여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증권형 토큰 없이는 가치 산정이 불가능합니다.

증권형 토큰과 ICO 제도화, 그리고 거래소 제도화가 다음 글의 주제입니다. 왜 해야하고, 할거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시하겠습니다. 현장의 중심에서 과연 어느 부분을 제도가 기능해 주어야 도덕적 시장 구현이 가능할지 제안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고민과 노력이 이 산업과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었습니다. 한 벤처기업인의 충심으로 받아들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18년 9월 27일
체인파트너스 대표이사 표철민

배움과 아픔, 한발짝 한발짝.

#1. 실력으로 보여줄 것

나에게 우리가 가깝다는 인상을 준 대표가 뒤에 가서는 우리 회사에 오려는 사람에게 “거기는 특히 가면 안됩니다. 투자는 많이 받았지만 실체가 없어요.”라 말했단다. (결국은 우리 회사를 선택)

좋은 인재들이 바보가 아니다. 이것저것 따져보고 우리 회사를 택하는 것인데 우리가 정말 실체가 없다면 그들은 왜 이곳을 택하겠나?

이러니 업계가 뭉치지 못한다. 어쨌든 이번에는 순진하게 사람을 믿은 내 잘못이다. 슬프지만 믿을건 내 사람뿐이고, 남들과는 결국 주고 받을게 명확한 비즈니스뿐이다.

이걸 잘 알면서도 이 업계에 우정이나 의리, 전우애 같은게 있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 같다. 전쟁중에 내가 좀 착각했고, 앞으로는 더 긴장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힘을 모아야 더 커지는데 아쉽다. 결국 우리 기업들이 반짝 따라하는거 잘하지만 큰 회사 되지 못하는게 그런 점에서 기인하는듯 하다. 어떻게든 우리는 모범을 보이기 위한 고민을 계속할 것이다.

항상 인재를 최초 발굴하는 회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장에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누군가 우리 회사를 떠나는건 무척 아쉽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도 우리는 시장에 기여하고 있다.

나는 그리고 요즘 다른 회사들 험담은 정말 안하려 하는데 남들도 주의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직접 피해 끼친 회사가 정녕 하나라도 있나? 실력으로, 좋은 제품과 팀으로 그냥 잘하면 되는 일이다.

돌아보면 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 팀은 특별히 언급할 일이 없었다. 그러면 우리가 그토록 신경 쓰이는 것인지? 그 시간에 글로벌하게 통할 제품 본질이나 인재들이 택하는 회사 만들기에 집중하는게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2. 나도 모르게 내가 미친 영향

내가 코인 사라고 한 적 단 한 번도 없고, 특정 ICO 밀어준 적도 없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한 해 내가 전도사처럼 알려 온 블록체인 기술과 산업의 미래에 설득되어 코인을 산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는 코인으로 돈 번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난 광풍 속에서도 나는 코인 투자를 안하고 그 시간에 회사 만드는데 집중해 왔다. 결과적으로 나를 제외한, 위에서 말한 나를 험담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ICO 열심히 돕고, Advisor하고 해서 코인으로 많이 벌어 왔다.

그런 사람들은 조용히 혼자서, 지인들끼리 했기 때문에 욕 안먹고 오히려 나같은 사람이 대중을 현혹(?)시켰다는 죄목으로 욕을 먹는 때인듯 하다. 억울하지만 어쩔 수 있나.

나는 진실로 언젠가는 탈중앙화된 시대가 온다고 믿기에 그 가능성을 소개해 왔다. 하지만 그 시대는 먼 훗날 올 것이기에 코인 투자는 항상 신중하라고 이야기해 왔다.

사람들이 화풀이 할 대상도 필요하고, 내가 의도했든 아니든 나를 보고, 믿고 산 사람도 조금이나마 있을 것이기 때문에 괜시리 마음이 무거워진다.

참으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앞으로 더욱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일해야겠다는 무거운 마음도 생긴다.

#3. 데이빗, 늦어졌지만 모두의 이름을 건 제품

데이빗 프로젝트는 우리 CTO가 사실상 총괄해온 프로젝트여서 개발진이 정말 훌륭하다.

우리 이재철 CTO는 초기 pooq을 혼자 개발했고, 이후 Google과 산타토익으로 알려진 riiid의 CTO를 거쳐 작년까지 인공지능으로 유명한 스캐터랩스의 Tech lead로 있었다. 한국Elixir밋업의 공동조직자로서, 데이빗의 엔진이 된 Elixir 언어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정통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 블록체인에 꽂혀 여러 큰 회사들이 블록체인 사업을 시작할때 CTO로 모셔가고자 했다. 체인파트너스의 Co-founder에게 그러면 안되지 않나 싶지만, 그만큼 뛰어난 실력과 인품을 갖췄다.

이 CTO를 따라 현재 데이빗에는 여간한 스타트업 CTO급만 최소 10명 넘게 포진하여 거래소 하나를 만들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있던 블록체인 회사들에서 지원한 분들을 숱하게 면접에서 탈락시키고 엄선해 모은 개발자만 20명 가까이 된다. 당연히 국내는 물론 해외를 통틀어 현존하는 어떤 거래소보다 뛰어난 기능과 기술이 추가되었다. 본격적인 기술 기반 거래소인 셈이다.

그러나 기술 기반 거래소가 되어 프로젝트 주도를 CTO가 하다 보니 오픈 일정을 나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개발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이 알려주는 일정을 공표하였는데 그 일정이 여러 차례 늦어지게 되었다. 나로서도 참으로 면목없고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 부분이다.

당연히 공표할거면 일정을 무조건 맞추고, 일정을 못맞출거 같으면 공표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개발팀의 말을 너무 신뢰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이 점은 전적으로 내 실력 부족이고 불찰이다. 결과적으로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약속을 여러 차례 어긴 것이 되었다. 그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

수익을 고객에게 다시 돌려주는 보상형 모델이 도입되고, 다른 곳에는 없지만 투자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여러 기능을 추가하게 되면서 오픈이 늦어졌다. 그러나 변함 없는 사실은 정말 좋은 거래소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소가 지금도 많고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 나오고 있지만, 데이빗은 그 중에서도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데이빗이 이 험난한 시장에서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 솔직히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좋은 제품은 사람들이 알아준다’는 사업의 본질 때문에 자신감이 붙었다.

우리가 여러 사업을 한다지만 모든 사업을 동일한 비중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빗은 오픈과 동시에 바이낸스나 후오비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여러 기술적, 기능적 장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보상형 거래소는 데이빗의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뛰어난 제품’ 그 자체이다.

어쨌든 승부는 시장에서 나는 것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캐셔레스트가 선전한 것을 보면 놀랍지 않은가. 좋은 제품이 시장에서 당장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기도 하고, 때론 아무도 기대하지 않던 제품이 여러 알 수 없는 이유로 성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반짝 성공은 누구나 한번씩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공은 결국 좋은 제품에서 기인한다는 점이다. 좋은 제품은 언젠가는 인정을 받는다. 그러나 반짝 인기를 얻은 나쁜 제품이 지속 가능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것이 우리가 이 불확실한 시장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제품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다. 지속 가능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데이빗은 오래 걸렸지만 결코 누더기가 아니다. 깨끗하고 완벽한 다이아몬드를 세공해 시장에 나간다. 지속된 연기는 사과할 일이지만 좋은 제품을 정성들여 만든 것은 사과할 일이 아니다. 한국도 언젠가 시작될 토큰 경제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자신있게 한판 붙어볼만한 거래소를 곧 갖게 될 것이다.

허언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팀에 대한 자신감이다. 데이빗은 그들이 자기 이름 걸고 주말도 반납해가며 만들고 있는 각자의 분신이기 때문이다.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은 무려 20년이나 실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다고 한다. 어쩌면 이곳은 모두가 실체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실체 없다고 생각하는 곳인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반드시 여기서 실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진짜 좋은 제품과 서비스, 존경받는 회사를 일구어 낼 것이다.

누가 ICO 안하고 지분 투자를 받았나? 누가 투자 수익이 아닌 1원이라도 직접 매출 내려고 분투하고 있는가? 누가 이 시장에 가장 많은 인재를 발굴하여 공급하고 있는가? 누가 과연 진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