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이 나오다

올들어 회사 일 외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이 지난 금요일 드디어 발표되었다.

스크린샷 2019-10-28 오후 3.24.31

너무나 많은 분들이 각자 분야의 작성과 수정, 감수를 맡아 거의 일년여간 노력해 왔다. 밖에서 볼 때는 짧은 글이지만 이 짧은 글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열 차례는 수정을 거쳤다. 나는 블록체인 분야의 좌장을 맡아 권고안의 블록체인 분야 서문을 썼는데, 피드백을 반영해 한 세 번을 완전히 다시 썼다.

발표되고나서 기자분들 전화가 와서 반응이 “엥? 왜 그렇게 내용이 없어요?” 였는데 이 정도 나오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 권고안은 블록체인 분야에서만큼은 아래와 같은 의미가 있다.

  1. 암호자산으로의 용어 통일

    우리나라에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디지털 자산, 암호자산 등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크립토를 부르는 너무나 다양한 용어가 있다. 우리는 이를 화폐보다 자산의 성격을 강조하고, 허구와 같은 가상(Virtual)보다 원어(Crypto) 그대로의 취지를 살리고자 최근의 국제 흐름에 따라 ‘암호자산’으로 용어 통일을 시도했다. 이는 단순 임기응변식 정리가 아니라 ‘앞으로 이렇게 가야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따라서 향후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2. 2030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이 권고안은 블록체인 분야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2030년의 대한민국을 가정하고 쓰여졌다. 따라서 당장 내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보면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야도 크게 보면 1) 허가형 블록체인의 산업/공공 분야 도입 활성화를 통한 신뢰 사회 구축 2) 비허가형 블록체인 활성화를 통해 앞서 1)의 목적을 보다 저렴하게 구현 3) 암호자산 제도화를 통해 앞서 2)의 목적을 보다 지속 가능하게 실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10년 뒤에 돌아봤을 때 ‘아, 그래도 참으로 옳은 방향을 제시했구나’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다.
  3. 정부 정책 변화의 불씨

    이 권고안은 정부를 향해 ‘4차산업혁명 시대에 경쟁국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그대로 ‘권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권고를 실제 채택할지 여부, 채택하면 얼마나 할지, 언제 할지 여부는 모두 개별 정부 부처에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없는 ‘권고’가 의미있는 이유는 적어도 정부 조직도 내의 한 부서가, (그것도 4차산업혁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라고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놓은 부서가)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과 사뭇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부 조직도 내의 어느 누구도 다른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따라서 개별 부처가 지금까지와 다른 정책을 펴야겠다는 필요를 느낀다 해도 태세 전환의 특별한 명분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정부든 다음 정부든 2019년 10월에 대통령 직속 4차위가 남겨 놓은 문서는 부처 담당자의 정책 설계 과정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같은 방향의 정책을 펴고자 할 때 좋은 명분이자 논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정부위원이 아닌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간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암호자산 제도화 관련 의견을 권고안에 포함시킬 때 같은 이유로(정부 조직도 내의 누군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 때문에) 여러 반대와 저항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장병규 위원장께서 앞에서 여러 차례 방어를 한 까닭에 특히 블록체인 분야는 정부 기조와 사뭇 다른 내용을 최종안에 담을 수 있었다. 정작 블록체인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들은 권고안의 내용이 다소 실망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권고안의 부록을 잘 보시면 한국거래소(KRX)에 비트코인을 직접 상장하고 비트코인 파생상품 출시도 고려하라고 권고했는데, 이건 현재까지도 미국이나 스위스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정부 조직도 내 조직이 권고한 암호자산 정책 방향치고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뉴스도 많고 사회도 뒤숭숭해서 많은 분들이 일년여간 준비해 온 권고안이 그다지 소개가 덜 된듯 하여 그 의미를 몇자 적어 보았다. 위 2번과 3번은 블록체인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통하는 의의일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안의 내용은 정책 관련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학습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저자들이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하고, 산업연구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공 싱크탱크가 두루 참여해 권고안의 공신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아래 권고안은 지면의 제약으로 인공지능부터 헬스케어, 금융, 농업, 모빌리티, 교육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변화할 모든 사회 분야의 미래상과 가야할 길이 각자 2-3페이지의 아주 짧은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정책 방향을 보려면 부록을 꼭 함께 읽으시기를 권한다.

2030년의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시간을 뺏겼지만 훌륭하신 분들과 국가의 미래, 특히 지금 몸 담고 있는 분야의 미래를 제시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데에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4차위가 기대에 비해 결과가 없다고 외부 비판이 많았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 위원장님 이하 각 정부 부처에서 파견 오신 지원단과 다른 위원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목격하고 다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이 있음을 느끼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4차위에 파견되어 있는 각 부처의 공무원들이 다시 각자 자리로 돌아가 언젠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이런 조직을 경험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나라의 미래에 도움되는 정책을 펴리라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다운로드)

대정부 권고안 부록 – 상세 정책 제언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