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핀테크 유니콘 Wirecard의 파산과 e-wallet 시장

개인적으로 너무 멋진 회사라 생각했던 Wirecard가 파산했다. 이 회사는 Visa, Master, Amex 등 주요 카드사들의 Tier 1 라이센스를 가진 발급 및 결제 대행사로, 전세계에서 이들 카드사 브랜드로 직불카드를 발행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용카드 중심으로 카드 시장이 형성되어 왔지만 개인 신용이 없거나 약한 유럽과 미국, 동남아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직불(Debit)이나 선불(Pre-paid) 카드 위주로 카드 시장이 형성되어 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최근 몇년 사이 이 직불 카드가 모바일로 들어가 이른바 e-wallet이 대세가 되었다. RevolutVenmo, Uphold 같은 회사들이 대형 사업자이고 나라마다 비슷한 일을 하는 수백개의 중소 핀테크 사업자들이 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대체로 유사하다.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따기 쉬운(특히 영국 금융당국 FCA가 핀테크 회사들에게 주는) e-money 라이센스를 기반으로(고객 자산을 직접 들고 있지 않고, 제휴 은행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이나 기업들이 모바일 앱에 계정을 만들고 이 계정에 현금을 충전한 후 계정과 연동된 Visa, Master 직불 카드를 보내줘 전세계 수백만개의 Visa, Master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결제에 쓸 수 있도록 한다. (사례: 1, 2, 3)

글로벌 셀러들이 전세계 e-커머스 사이트에서 올린 매출을 정산 받을 수 있도록 돕는 Payoneer 역시 e-wallet이라 할 수 있다. Payoneer 계정에 내가 벌어들인 잔고가 들어있고 이와 연결된 선불카드가 있어 언제든 내 잔고를 이용해 전세계 Mastercard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다.

NetellerSkrill은 벌써 20년이나 된 e-wallet의 원조격이다. 이들 두 서비스는 주로 인터넷 카지노에서 현금처럼 쓰이는 e-money이자 e-wallet으로, 역시 잔고를 국내로 안가져오고 제휴된 선불카드를 이용해 전세계 모든 Mastercard 가맹점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바로 이런 업체에 Mastercard 발급을 해주는 회사가 Wirecard 같은 회사다. Mastercard라고 모를리 없다. 다만 카지노를 비롯한 모든 가맹점들은 EU 가입국 중 작은 섬나라 어딘가에서도 반드시 합법적인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다.)

Neteller와 Skrill은 온라인 카지노 시장을 놓고 출혈 경쟁을 벌이다 지금은 한 회사 밑에 있다. 2017년 세계적인 PE인 Blackstone Group과 CVC Capital Partners가 두 서비스를 가진 모회사인 Paysafe Group을 2.96B 유로(4조원)에 인수하고 런던증시에서 상폐시켰다. 그 이후로 회사는 실적을 공개하지 않는다. 2016년 마지막 실적 공시에서 매출 1B 유로(1.35조원)에 순이익 142M 유로를 신고했었다.

인터넷에는 크립토 이전에도 수없이 많은 사설 e-money가 존재하며 사용자간 지불에 활발히 쓰여 왔다.

이들 수많은 목적으로 존재하는 e-wallet 계정에 현금을 충전하는 방식은 전통적으로 계좌 이체나 신용카드 충전이 쓰여 왔다. 그러다 요즘엔 크립토 충전을 지원하는 사업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4천만이 넘는 가입자를 가진 Venmo(Paypal의 자회사)는 크립토 지원을 준비하고 있고, 7백만 가입자를 가진 미국 2위 사업자 Cash(Square의 자회사)는 이미 2018년부터 크립토 거래를 지원하고 있다(아직 잔고를 크립토로 충전할 수 있는건 아니고 보유한 잔고로 주식 사듯이 크립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하지만 보유 크립토가 잔고에 합산되는건 언제든 할 수 있다). 유럽 1위 e-wallet인 Revolut도 위 Cash 앱처럼 잔고로 크립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이미 연동되어 있고 그 경쟁자 Uphold는 크립토를 계정 잔고에 아예 합산해 표시한다. Neteller도 크립토로 잔고를 충전하거나 인출하는 것을 지원한다.

이같은 움직임을 볼 때 앞으로 글로벌 e-wallet들의 잔고 합산이나 충전 방식, 그리고 거래 대상에 크립토가 들어갈 것은 자명해 보인다. 위 링크들을 타고 조금만 살펴보시면 그건 필자의 희망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독자들이 충분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다시 Wirecard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Wirecard는 몇년 전부터 e-wallet 사업자들과 제휴해 소비자들에게 모바일과 실물 직불카드를 만들어 주고 이들의 결제 처리를 담당해 왔다. 결제가 일어날 때마다 중간에서 수수료를 얻는다. e-wallet의 인기가 커지고 전세계에서 사용자가 늘수록 함께 수혜를 입는 구조다.

이 회사는 1999년 유럽에서 시작해 2007년 아시아에 진출하며 큰 성장을 거뒀다. 이 회사 실적과 주가는 지난 10년간 견고한 성장을 거듭해 작년에는 한때 독일 1위이자 세계 10대 은행 중 하나인 도이체뱅크의 시총을 뛰어넘기도 했다. 유럽 핀테크의 말그대로 ‘히어로’였는데 며칠전 있어야 하는 현금 19억 유로(2조 6천억원)가 분실된 사실이 밝혀지며 주가가 지난 6월 17일 104.5유로에서 오늘 종가 3.53유로로 96% 이상 빠졌다.

채권단이 이번주 금요일까지 19억 유로의 행방을 제대로 밝히지 않으면 20억 유로 규모의 채권을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는데, 금요일을 앞두고 목요일인 오늘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이 회사가 보고한 작년 3분기 현재 재무제표상 현금 보유는 38억 유로로, 19억 유로가 빈다 해도 19억 유로를 보유하고 있다. (작년 1월 FT가 처음 분식 회계 의혹을 제기한 이후 EY가 정밀 실사를 진행한 결과 19억 유로가 빈다고 발표한 것이기에 나머지 현금은 실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오늘 종가 기준 시총은 436M 유로로, EY 실사 결과가 맞다면 19억 유로의 현금(물론 채권단이 20억 유로를 정말 일거에 다 회수하고 나면 가진 현금은 제로가 될지 모른다. 독일파산법원이 1부리그-DAX- 블루칩주에 편입되어 있는 종목을 그렇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지만)과 전세계에 걸쳐 탄탄한(그리고 특히 요즘 모바일 e-wallet 확장과 함께 특수를 누리고 있는) 비즈니스를 가진 회사가 실로 저렴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14.5유로에 거래를 마친 Wirecard는 오늘 Bank of America 애널리스트가 ‘1유로 나락으로 갈 수 있다’는 리포트를 내며 장 개장과 동시에 85% 가까이 빠져 실제로 2.5 유로가 되었다가 약간 회복해 3.5유로로 거래 되던 중 파산 보호 신청과 함께 거래 정지됐다. 아마도 Wirecard 하락에 베팅한 헤지펀드들은 Bank of America 친구들에게 당분간 밥 좀 사지 않을까 싶다.

Wirecard가 워낙 잘나가는 핀테크 회사였다보니 웹사이트에 Goldman Sachs와 Blackrock, Morgan Stanley가 주요 주주로 등재되어 있다. 이번 폭락과 파산으로 이들 금융사들의 피해가 가장 클 것이다. Softbank는 작년 4월 Wirecard의 CB(전환사채)를 900M 유로 규모로 인수하며 당시 FT 보도 이후 이미 의혹을 받고 있던 Wirecard의 생명을 연장해줬다. 이 CB는 Credit Suisse에 의해 다시 구조화되어 아부다비 국부펀드 등으로 팔려 나가 Softbank의 위험 노출은 제한되었다. (물론 독일 검찰은 현재 Softbank가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고 떠넘긴 것이 아닌지 조사중이다.)

나는 이렇게 큰 회사가, 그리고 이렇게 좋은 비즈니스를 가지고 있는 회사가 하루 아침에 망할 수 있는 것인지 굉장히 의아했는데 이 글을 쓰며 조금 리서치를 해보니 전조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회사는 비즈니스를 곳곳에서 열심히 해서 거래액이 급격히 늘고 있었고 최근 Grab과의 결제 파트너십도 진행중이었는데 참으로 아쉬운 핀테크 유니콘의 몰락이긴 하다.

Wirecard의 2019년 9월까지 거래 규모. 전년 동기 대비 37.7%가 늘어난 124.2B 유로(약 167조원)다.

2019년 3분기 실적 개요. 물론 분식 회계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데이터인지는 사실 알 수 없다.

Wirecard 웹사이트에 공개되어 있는 주요 주주 현황. 독일 투자사 Union Investment는 소송을 예고했다.

그 와중에 Buy나 Equal-weight, Neutral을 주장한 애널리스트들이 6월 22일까지도 있었다.

내가 이 사안을 살펴보게 된 계기는 우선 글로벌 핀테크 유니콘의 첫 파산이라는 점, 그 이유가 신뢰가 가장 중요한 금융사로서 몹시 치명적인 분식 회계였다는 점, 오늘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라 무려 10년 전부터 낌새를 느낀 이들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왔다는 점, 독일 역사상 블루칩 종목으로 편입된 회사가 파산한 첫 케이스이자 주가가 9일만에 96%가 빠질 수 있다는걸 보여준 역사적 사례라는 점 등 여러모로 향후 경제 서적에 등장할 사건이 아닐까 싶다.

지난 5년간의 주가 추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흥미롭게 지켜보아야만 하겠다. 무엇보다 지금 Wirecard가 하고 있는 사업 자체가 매우 유망(실물 카드 + e-wallet에 들어가는 카드 발급과 이들 카드의 결제 처리)하고, 보유한 서비스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전세계 31만개가 넘는 기업들이 24시간 결제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역사적 특종을 하게 된 FT는 승리를 자축하며 스캔들의 모든 과정을 연표로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