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회사의 크라우드펀딩이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나 포함 다섯명 남았다. 한때는 100명도 넘었지만 지금은 몸집이 많이 작아졌다. 하지만 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지난 3년간 우리는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는 도전을 했다. 목표로 한 산에 올라본 결과 기대한 산이 아니었다. 크게 낙담했으나 이내 다음 산을 찾아 가고 있다. 애초 거래소 밖에 없던 블록체인 산업에서 우리는 가장 많은 새로운 시도를 했고 빠르게 실패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우리가 걸어온 여정을 결코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체인파트너스,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

내가 2017년-2018년 사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VC들을 설득해 138억원을 투자받은 논리는 이랬다. 비트코인에 이어 2등 가상자산인 이더리움이 40조원 넘는 시가총액을 갖게 되면서 이더리움 생태계를 처음부터 함께 만든 미국 회사인 컨센시스(Consensys)가 2조원 넘는 가치를 갖게 됐다.

2017년은 이더리움의 단점을 보완해 이른바 ‘3세대 블록체인’을 표방하던 이오스(EOS)가 태동하던 해였다. 2017년 초 나는 EOSScan이라는 이름의, 이더리움 진형의 대표적인 블록 익스플로러인 Etherscan과 비슷한 웹사이트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오스 개발자인 댄 라리머와 최대 토큰 홀더인 리샤올라이의 연락을 받았고, 이오스 진형의 인싸 회사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우리 주주들에게 컨센시스 사례를 소개하며 만약 이오스가 비트코인, 이더리움의 뒤를 이어 제3의 왕좌를 차지한다면 이오스 진형에서 가장 먼저 많은 유틸리티를 만들어 낸 회사가 ‘제2의 컨센시스’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 이오스의 시가총액은 1년간의 ICO를 거치며 빠르게 늘고 있었으므로, 컨센시스 가치의 절반-1조-만 될 수 있다 해도 갓 생긴 스타트업으로는 정말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새로 나오는 이오스 블록체인에 필요한 지갑부터 블록 익스플로러, ICO 플랫폼, 탈중앙화 거래소, DApp(쉽게 말해 블록체인 위에서 구동되는 앱) 플랫폼, 여러 DApp 게임 등 유틸리티부터 DApp에 이르기까지 이오스를 위한 모든 솔루션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개발했다.

우리는 이오스 블록체인의 설립 블록 생성자(Founding Block Producer)로 당선되었으며, 이오스 블록체인의 창세기 블록(Genesis Block)을 생성했다. 미국, 중국을 대표하는 블록 생성자들과 함께 이오스 블록체인의 운영 정책을 세우는 태스크 포스의 일원으로 위촉되어 세계 시총 5위 블록체인의 운영 정책을 세우는 한국의 첫 운영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오스는 애석하게도 출시 전 약속했던 것들을 제대로 시장에 전달하지 못했다. 매 거래시마다 수수료를 내야하는 이더리움 대신 사용자가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겠다는 아름다운 이상도 백서 내용과는 다르게 RAM이나 CPU 등 초보자가 이해할 수 없는 개념들이 등장하며 블록체인이 쓰기 어려워졌다.

수수료를 매번 내지는 않지만 그건 CPU를 어느 정도 담보(staking) 해놓은 계정에 한정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처음 백서와 블로그, 인터뷰에는 전혀 없었다. 세상의 어떤 초보자가 CPU, RAM 개념을 단번에 이해하고 스테이킹과 언스테이킹을 할 수 있을까? 두껑을 열어보니 이더리움이 더 쓰기 쉬웠다.

또한 블록 생성자 투표는 완전 비정상적이 됐다. 이오스 생태계에 전혀 도움을 못주는 블록 생성자들이 단지 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또 코인을 많이 가진 고래들과 단지 친하다는 이유로 21명의 블록체인 운영자가 됐다. 진짜 이오스 생태계를 위해 일한 지갑 개발사와 유틸리티, DApp 개발사는 50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오스 블록체인을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4조원 이상의 돈을 모은 개발사 블록원은 정작 이오스 생태계를 위해 자기 자원을 투자한 전세계의 우리같은 여러 업체들에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다.

이같은 움직임을 일년 가까이 가장 내부에서 지켜보며 우리는 이오스 블록체인을 출시 전부터 선택해 다양한 유틸리티와 앱을 만드는데 수십억을 투자해온 선택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이오스 생태계 발전을 위해 일하는 업체에 투자와 지원을 공공연히 약속해 온 블록원을 믿고 기다렸지만 블록원은 끝내 아무런 개발사 지원 프로그램도 내놓지 않았다.

(이더리움 재단이 컨센시스와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함께 서로 같이 성장한 것과는 완전히 대조된다. 블록원이 이오스 생태계 발전을 위해 출자한 EOS VC 자금은 ICO로 모은 자금에 비하면 극히 미미할뿐 아니라 정상적으로 이오스 생태계에 환원되지도 못했다. 토큰 홀더들은 4조원이 넘는 ICO 모집금액이 대체 어디에 갔는지 물어본적도, 물어볼 권리도 없었다.)

블록체인 출시 후 일년 이상 지나자 블록 생성자 투표에서 우려했던 담합과 (당초 금지된) 투표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전부터 그런 움직임은 일부 블록 생성자들 사이에 암암리에 있었지만 일년쯤 지나니 그런 일을 하지 않는 블록 생성자는 21위 내에 들지 못할 정도가 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제재를 가할 힘도 권한도 없었다.

블록원도 ‘우리는 소프트웨어만 만들었지 직접 블록체인을 출시한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의한 담합과 투표 행위에 간여할 수 없다’는 지극히 방관적 입장을 취했다. 가끔 ‘투표에 참여해 전체 코인의 10%에 해당하는 권리를 행사할 것’이라 엄포를 놓기도 했지만 이는 번번히 선언적이기만 했다. 실제 블록원의 투표 참여로 담합한 블록 생성자들이 블록체인 운영에서 쫓겨나는 건강한 변화는 아직까지는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이런 투표 상황은 우리가 바라고 상상하던 이오스의 모습과는 완전 달랐고, 투표 담합이 개선될리 없는 상황에 이르자 결국 이오스 생태계에 더 깊게 들어가는게 위험하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2018년 가을이다. 우리도 높은 순위에 꾸준히 들려면 남들처럼 손에 흙을 뭍여야 하는데, 그건 우리가 지금껏 약속한 ‘건강한 시장 조성에 이바지하겠다’는 설립 이념과 완전히 배치됐다.

100억원을 쓰고 1조짜리 회사가 될 기회가 있었던 도전

그때 이미 우리는 이오스 생태계(EOS 코인을 산 것이 아니라)에 30억원 이상을 온전히 투자한 후였다. 지금와 철수하는건 큰 출혈을 감수해야 했지만 더 미적거리면 안된다고 판단했다. 과감히 행동해야 실패해도 다음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모두 기대한대로 이오스가 이더리움을 넘어 훌륭한 ‘3세대 블록체인’이 되었더라면, 적어도 설립자들이 백서와 인터뷰에서 약속한대로만 내놓았더라면 우리는 이오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가장 빨리 양질의 지갑과 유틸리티, DApp을 개발한 회사로 ‘이오스의 컨센시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우리는 거래소가 아닌 블록체인 회사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조 단위, 또는 적어도 수천억 단위의 가치를 갖는 블록체인 회사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도전은 매우 생소했지만 당시 주어진 정보로는 충분히 도전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지금 2017년 처음으로 돌아가도 ‘제2의 컨센시스’가 되겠다는 도전은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실패하면 최대 100억원을 잃지만, 성공하면 Upside가 1조원 이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오스가 이더리움을 넘어 3세대 블록체인으로 각광받을 수 있을지 출시 전에 보다 면밀히 검토해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나뿐 아니라 나를 믿어준 한국에서 가장 투자받기 힘든 VC들의 판단과 결정이었다면, 지금 그때로 돌아가도 모두들 시장과 기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한정된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내릴 근거도 충분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결국 그때 나는 오를만한 가치가 있는 높은 산을 발견해 제시한 것이고, 그 산을 믿게된 사람은 직원이 되고 주주가 되어 다같이 그 산에 가본 것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산은 막상 가보니 없었지만. 가볼만한 가치가 있던 여정을 이해하고 믿고 투자하고 함께 달렸던 모든 이들에게 진심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우리의 그 도전에 투자했던 VC 심사역들은 ‘블록체인’하면 당시 거래소와 솔루션 납품밖에 없던 시절 다른 산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보았고, 치열히 공부해 투자심의위원회에 올렸다. 50대 이상의 임원들에게 블록체인 시장을 가르치고 설득해 실제 투자까지 이끌어냈다. 덕분에 우리가 그 산에 실제 가볼 수 있게 했다. 우리는 훌륭한 등반대원들을 꾸려 이오스 생태계의 최고 인싸이자 가장 높은 품질의 제품들을 만드는 회사가 되었다. 이는 모태 펀드를 받아 쓰는 우리나라 투자 환경의 특성상 앞으로도 쉽게 없을 극도로 모험적인 도전이었다.

따라서 이 글을 빌어 우리가 이같은 여정을 해볼 수 있게 해준, 회사에서 많은 반대 의견을 이겨내고 투자에 참여했던, 우리나라의 다른 어떤 VC들보다도 블록체인을 깊이 공부한 우리 투자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또 가볼 가치가 있는 여정에 함께 올라타 준 인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남아있는 우리들의 도전이 멈추지 않는한 그들 모두의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가 가보고자 하는 다음 산

블록체인 유틸리티 개발, DApp 개발, 메인넷 개발, 노드 운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블록체인 관련 일을 해보고 나서 결국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시장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재는 우리가 롤모델로 삼았던 컨센시스조차 인력 구조조정과 제품 줄이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블록체인 시장에서 유일하게 돈을 버는 비즈니스는 가상화폐 거래소다. 전에도 그랬지만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거래소는 세계적으로는 바이낸스가, 국내는 먼저 시작한 이른바 ‘4대 거래소’들이 선점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들을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각국 법정화폐를 취급할 수 있는 거래소들이 각 나라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이들은 자국 내에서는 존재감이 크지만 나라 밖에서는 또 거의 영향력이 없다. 앞으로도 상황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업하는 거래소(거의 바이낸스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와 각국 법정화폐를 취급하며 살아가는 국가별 거래소들로 양분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거래소가 없는 나라에 가서 거래소를 빨리 차리거나, 아니면 거래소가 아닌 다음 비즈니스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거래소가 없는 나라는 시장이 매우 작거나 아예 없을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같은 외국인보다 자국민이 창업한 자국 업체가 나중에 생기더라도 법정화폐 취급에는 외국인보다 더 유리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우리는 거래소 다음으로 필요해질 서비스를 찾기로 했다. 그러면서도 막연한 블록체인 사업보다 더 뚜렷한 수익모델이 있는 서비스여야 했다. 또 갈수록 줄어드는 한국 가상자산 시장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사업할 수 있는 분야라야 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바로 디지털 통화 환전업이다.

지금 비트코인을 이더리움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거래소로 비트코인을 보내 이더리움을 가진 누군가와 거래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환전을 필요로하는 만큼의 물량을 가진 다른 거래 상대방이 그 순간 없다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 만약 우리가 미국 여행을 가려고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하는데, 달러를 원화로 바꾸고자 하는 다른 사람을 직접 찾아 거래해야 한다면 여간 불편한게 아닐 것이다.

우선 중고나라에 나와 같은 금액을 맞바꾸고 싶은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올려두고 갓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남은 달러를 팔아 원화로 바꾸려는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그런 상대방이 내가 원할때 내가 필요한만큼의 달러를 들고 바로 나타나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잘못하면 내가 미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환전을 못하는 일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중간에 은행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는 은행을 찾아가 손쉽게 원화를 달러로 바꿀 수 있다. 은행에서는 내가 10만원을 가져오든 10억원을 가져오든 정해진 환율에 따라 즉시 달러로 바꿔준다. 나와 반대 수요를 가진 거래자가 올 때까지 은행 입구에서 기다릴 필요는 전혀 없다. 창구에 가면 앉은 자리에서 즉시 얼마든지 바꿔 준다. 은행에 달러가 없어서 내가 들고간 원화를 환전하지 못할 걱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은행은 이처럼 풍부한 유동성(돈)을 가지고 개인 고객이든 기업 고객이든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팔아 달러를 벌면 삼성은 은행에 이 달러를 원화로 바꿔줄 것을 요청한다. 은행은 망설임없이 환율을 불러주고 환전해준다. 삼성전자는 환율 변동에 노출되지 않으면서 벌어들인 달러를 손쉽게 원화로 바꿔 직원들 월급을 주고 광고비를 낼 수 있다. 이게 은행이 환전 서비스를 통해 제공하는 효용이다.

가상화폐 시장에는 아직 이런 잘 갖추어진 환전 인프라가 없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대량의 코인을 다른 코인으로 바꾸려면 거래소로 코인을 보내 매번 가격이 바뀌는걸 보며 불안하게 거래해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대량 거래자를 위한 가상화폐 장외거래(OTC) 서비스가 2013년 이후 속속 등장했다. 하지만 OTC 업체들은 가입 과정과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거래 금액이 보통 최소 10만달러부터다. 환율이 은행처럼 공개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번 텔레그램 같은 메신저로 물어봐야 한다. 거래도 텔레그램으로 진행하고, 정산은 하루 한번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시스템이 사람 손으로 운영된다.

또한 고객들은 전세계 OTC에 모두 가입하지 않는한 시장에서 현재 가장 좋은 환율을 알 수 없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가상화폐 OTC 시장은 빠르게 커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OTC를 통해 거래해야만 공개된 환율에 따른 정가 거래, 주문 규모에 상관없는 대규모 거래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이에 우리가 전세계 모든 OTC에 대신 가입을 하고, 고객들은 우리 서비스 안에서 전세계 OTC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한다. 그러면 모두가 현재 전세계 시장에서 가장 좋은 가격을 찾아 효율적으로 거래할 수 있다. 모든 거래자가 분명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작은 거래들을 묶어 큰 거래 하나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면 10만불을 환전하지 않는 사람도 10만불을 거래할 때 가격으로 환전할 수 있다. 각자 개인적으로 거래소에서 환전할 때보다 가격이 현저히 유리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한번만 가입하면 고객들은 전세계 OTC에 가입한 효과를 보게될 것이다. 또한 웹사이트에서 은행처럼 실시간으로 고시 환율을 보고 거래할 수 있다. 매번 텔레그램으로 가격을 물어볼 필요 없이 24시간 직접 환율을 확인하고 환전할 수 있다.

결국 거래의 목적이 투기가 아니라 환전에 있다면, 우리 서비스를 통해 거래소보다 더 싸고 편리하고 빠르게 환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환전은 왜 필요한가?

투기는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거래소는 지금도 앞으로도 오랜 시간 매출 1위 카테고리를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가상자산이 여러 나라에서 제도화되며 기업과 금융기관이 시장에 참여하고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환전은 전체 블록체인/가상자산 시장에서 매출 2위 카테고리는 될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통화 환전이 필요한 잠재 수요처들은 다음과 같다.

1) 전세계 거래소가 수수료로 벌어들인 코인을 팔 때. 거래소가 자기 거래소에서 자기 고객을 대상으로 코인을 파는 행위는 다소 불편할 수 있으므로 이럴 때 거래소가 환전 서비스의 주요 고객이 될 수 있다. 실제 우리보다 제도화가 빨리된 일본에서는 정확히 그리 되고 있다.

2) 전세계 은행이나 온/오프라인 환전소, ATM, 핀테크 앱들의 가상자산 환전 서비스 파트너. 고객을 가지고 있는 은행이나 전통 환전소, ATM 등은 가상자산을 다루어 본 적 없지만 제도화 후 수년이 지나면 분명 비트코인도 다른 외환과 같이 은행이나 ATM기를 통해 환전 가능한 통화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이런 서비스들은 거래소가 아니라 환전소와 제휴해 고객들에게 환전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고객에게 환율을 미리 고시할 수 있고 금액의 크기에 관계 없이 즉시 환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거래소보다 환전소를 쓰는 것이 안전하므로.)

3) VIP를 유치하고자 하는 전세계 카지노 호텔들.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가상자산이 제도화되면 카지노들은 해외 VIP들을 유치하기 위해 분명 비트코인으로 게임 칩을 환전시켜줄 것이다. 그런 수요는 특히 환전 금액이 클 것이기 때문에 거래소에 연동하기엔 환율과 체결시간 면에서 불안하다. 따라서 환전소를 붙이는게 훨씬 안전하고 싸고 빠를 것이다.

4) 대규모 즉시 거래가 필요한 기관 투자자들. 아직 기관 투자자들은 가상자산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없지만 규제가 생기고 제도화되면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기관들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다. 기관 투자자들은 다루는 자산의 사이즈가 워낙 크기 때문에 거래소에서 거래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거래소의 유동성(거래 가능하게 실시간으로 깔려있는 주문들)이 턱없이 부족할 수 있다.

5) 빠른 차익 거래를 원하는 개인 투자자들. 정가 대규모 즉시 거래는 동일 상품에 대해 서로 다른 시장 사이에 일시적인 가격 격차가 발생할 때 이를 쉽게 이익으로 취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거래소에서 차익거래를 할 경우 내 평단가를 거래가 끝나기 전까지는 쉽게 알 수 없지만, 환전소에서는 거래 전 미리 환율을 알 수 있어 다른 시장과의 가격 격차와 내가 취할 수 있는 이익을 미리 계산해 볼 수 있다.

6) 전통 PG사를 포함한 모든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들. 앞으로 가상자산을 이용한 일상 결제 서비스가 가상자산 제도화 후 봇물 터지듯 등장할 것이다. 거의 모든 PG사들이 보조적인 결제수단으로 가상화폐 결제를 지원해 이들 PG가 이미 들어가 있는 수십, 수백만개의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가상화폐 결제가 가능해지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이런 때에도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들은 반드시 누군가와 제휴해야만 한다. 비트코인 결제가 들어오는 즉시 받은 비트코인을 현재가에 팔아 원화로 조금의 손실도 없이 바꿀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래소에서는 실시간으로 시세가 변한다. 또한 결제 금액이 크면 당장 못팔고 거래 상대방을 마냥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결제 서비스로서는 큰 리스크다. 따라서 가상화폐 결제 서비스들은 거래소가 아닌 환전소와 제휴할 수 밖에 없다. 환전소는 거래금액의 크기와 관계없이 정해진 환율로 즉시 환전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결제 서비스들이 우발적인 손실을 볼 가능성을 제로로 만들 수 있다.

7) 모바일 지갑 서비스들. 앞으로 가상자산은 물론 중앙은행 발생 디지털 화폐(CBDC), 지역화폐, 모바일 상품권, 기프티콘, 바우처, 포인트 등 가치를 갖는 수많은 디지털 자산들이 스마트폰에 담기고 QR 코드나 NFC 방식으로 결제에 쓰일 것이다. 신용카드를 쓰는 것만큼이나 온/오프라인 간편결제가 일상화될 것이고 사용 가능한 모든 자산들이 스마트폰 지갑에 담길 것이다. 이들 지갑은 앞으로 디지털 자산간 경계를 허문 환전 서비스가 꼭 필요해진다. 한국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원화를 비트코인으로, 비트코인을 롯데 포인트로, 다시 롯데 포인트를 서울사랑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지갑들이 나올 것이다. 디지털 자산간 통합 환전 서비스를 모바일 지갑들이 제공하게 되면 각 디지털 자산의 풍부한 유동성과 좋은 환율은 지갑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분명 디지털 자산 환전 서비스와 제휴를 맺고 제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목표는 이것이다. 비트코인으로 시작하지만 디지털로 가치를 담아 거래되고 유통되고 사용되는 모든 통화와 포인트, 상품권을 실시간으로 환전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직접 지갑을 운영하는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지갑업체, 거래소들에게 환전 솔루션을 제공하는 인프라가 될 것이다. 디지털 통화 환전의 경우 우리와 손잡아야만 충분한 유동성(거래 가능한 양)도, 좋은 환율도 고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한다.

왜 디지털 통화 환전업인가? ‘디지털 통화’도 이제 시작이고(물론 거래소는 끝났지만 나머지는 이제 시작이다), 그 안에서 ‘환전업’은 아직 아무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전으로는 아직 세계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비어있다. 거래소로 초기로 보자면 아직 바이낸스를 만들 기회가 환전 시장에는 남아있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당장은 거래소보다 훨씬 작은 시장이겠지만, ‘모든 디지털 자산/통화간 환전을 가장 싸고 빠르고 쉽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오랜기간 연구하고 노력하다보면 2, 3년 뒤에는 분명 세계적으로 큰 수요가 생길 시장을 우리가 선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섯명으로 할 수 있는가?

우리가 모든 분야 일을 다하려 한다면 지금 남은 인원만으로 힘들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 환전 서비스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영원히 다섯명이 아니라 앞으로 보수적으로 자금을 쓰며 필요한 때 천천히 인원을 늘려갈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외주도 적극적으로 써서 모든걸 내재화하지 않고 계속 적은 고정비를 유지할 것이다. 그래야 오래 버틸 수 있고 오래 버틸 수 있어야 새로운 분야인 환전업의 수요가 생기는 과정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환전 서비스는 우리가 기술적으로 자신있게 생각하는 데이빗 거래소의 백엔드를 어느정도 활용해 개발하고 있어 다시 맨 바닥부터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릴 수는 있어도 분명 좋은 제품은 나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비용이 크게 줄어 환전이라는 한 분야를 오래 파볼 수 있게 된 구조를 잘 유지해 볼 작정이다. 인원이 줄어 생긴 단점도 분명 있겠지만 한 분야에 딱 자리깔고 앉아 최대한 오래 버티며 제품 발전시켜 갈 시간적 여유-시간의 여유는 곧 월 고정비용의 극단적 통제에서 생긴다-가 생긴 점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얼마전 과거 내가 열여섯살 때 도메인 등록대행 서비스를 운영하며 경쟁했던 대표님을 20여년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나도 돈을 잘 벌었는데 금방 소문이 나며 너도나도 도메인 등록대행에 뛰어들어 한때 경쟁사가 200개 넘게 생겼다. 2001년쯤 되자 모두 돈을 못버는 상황이 왔고 2년 넘게 지속됐다. 우리도 그 2년을 못버티다 망했고 그 대표님은 인원을 극단적으로 줄여 끝까지 살아남은 세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결국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 3개 회사는 근 20여년 동안 꾸준히 수백억대 매출을 안정적으로 올리고 있다고 했다.

결국 서울로 바로 가든 부산이나 광주 찍고 가든 잠시 대구에 머물렀다 가든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남으면 다시 서울 갈 기회는 생긴다. 하지만 회사는 망하면 그동안의 모든 노력과 과정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다섯명이 남아도 그동안 만들어 놓은 제품이 있고 소스 코드가 있고 우리가 이걸 통제할 수 있고 100% 이해하고 있고 그간 쌓은 전세계적인 관계가 다 살아있으면 언제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고 끝나고 나면 그간의 모든 시간과 성과는 그야말로 제로가 되고 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지만 실은 지금 9부 능선까지 넘은 상황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언덕 넘어 문만 열만 성공인데 마지막 언덕에서 인원 좀 줄었다고 ‘끝났네’, ‘포기하네’ 하는 자세로는 절대 인생에서, 사업에서 원하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내가 볼 때 지금이 2001년의 도메인쯤 되는 것 같다. 20년 전에는 끝까지 버틴 이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끝까지 버틴 사람은 그 후 20년간 독점적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내 삶에 오롯이 남아있으므로 이번에는 결코 중도에 포기하거나 먼저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그동안의 모든 자료와 네트워크, 경험을 가진 CEO와 CTO, BD 디렉터와 경영지원팀장이 남아 있으므로 인원이 줄었다고 우리가 특별히 하지 못하거나 모르는 일은 사실 거의 없을 것이다.

또한 나는 처음부터 체인파트너스라 회사 이름을 지은 이유가 블록체인 산업의 외부 업체들과 폭넓은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파트너스’를 넣은 것이다. 우리와 함께 꿈꾸었고 산을 올랐던 100여명의 훌륭한 동료들이 도처에서 일하고 있고, 우리는 서로의 발전을 위해 그들과 앞으로 외부에서도 힘을 모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자체적으로 인원이 많을 때에는 힘을 합치지 못하던 외부 업체들과도 이제는 폭넓게 협력하고 서로 잘하는 일을 밀어줄 수 있다.

작은 조직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까지 새로운 산업을 다양하게 실험하며 과감한 시도로 많은 공부와 경험을 했다고 하나 기업을 운영하는 측면에서 대단히 비용 비효율적이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주주들이 한결같이 견지해 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르게 훨씬 더 타이트한 운영 방식을 견지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표명하고 싶다.

앞으로는 추가로 큰 펀딩이 이루어지더라도, 우리가 좋은 매출과 수익을 내는 날이 오더라도, 비용 비효율적인 고정비 확대는 지양하고 폭넓은 외부 협력을 통한 효율성 중심의 조직 운영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2018년 12월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의미를 갖게될 것이요, 지나친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인생에 자산으로 남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아래 메일은 우리가 모든 사업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때 전사에 쓴 메일이다. 그 후로 1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똑같은 선택과 집중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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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는게 부끄러운 것이지 끝까지 도전하는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행히 16개월이 지나 이제 우리는 어느 산으로 가야하는지, 가고 싶은지 명확해졌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실적과 평판에 있어 많은 손실을 보아야했다. 이 고통이 무의미하게 끝나는 일이 없도록, 나는 남은 사람들과 최선을 다해 다시 회사를 건강하게 키워보고 싶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분야가 그동안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어렵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가 재미있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 16개월을 사람들과 계속 헤어지며 치열하게 찾은 산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아직 검증되지 않은 산을 향해 100여명이 우르르 몰려가면 또 위태로워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많은 경험을 함께 겪은 소수의 등반팀과 함께 천천히 우직하게 새 산을 한번 타보려 한다.

우리가 시작하려 하는 새 여정에 힘을 보태 함께 가보고자 하는 주주들을 새로 기다린다.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 것을 처음에는 사실 부끄럽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고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가 새로 가려 하는 산을 기관 투자자가 이제는 두려워서, 이해하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더 믿지 못해서 투자하지 못한다면 공감하는 개인들을 주주로 초대해서라도 나는 가보고 싶다.

우리는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투명하게 일할 것이고 회사가 가는 길과 실패, 배움들을 최대한 솔직히 외부와 나눌 것이다. 그러다보면 괜히 안들어도 될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왜 가려고 하는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우리 행보를 이해하고 같은 편이 되어줄 이들도 그만큼 늘 수 있기 때문이다.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비로소 우리가 소수의 인원으로 바라던 땅에 가 닿을 수 있고, 그 땅의 주인이 될 날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지, 도움을 부탁드린다.

체인파트너스, 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일본의 디지털 금융 제국 SBI 그룹의 사업전략

소프트뱅크그룹의 금융 자회사로 1999년 시작한 SBI 그룹의 IR Presentation을 분기마다 보고 있는데 이 회사가 참 대단하다. 일본이라는 큰 나라의 디지털 금융을 거의 혼자 끌고 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페북에 쓰려다 내용이 많아 블로그에 간단히 정리해 본다. 시간이 없어서 소회는 최소한으로.

아래는 2019년 Annual Report에 나온 CEO 코멘트인데 디지털 자산에 기반한 생태계 구축을 그룹의 핵심 방향으로 서두에 적어 놓았다. 물론 증권, 은행 등 기존 캐시 카우에 기반한 확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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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IR 자료에서 소개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 투자 및 운영 현황이다. 채권평가사 모닝스타와의 JV인 모닝스타재팬을 SBI가 가지고 있는데 여기를 통해 디지털 자산 평가도 할 계획이고 R3와 Ripple 양쪽 모두에 투자를 해서 일본 시장용 JV를 양사와 모두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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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지분율. Clear Markets은 미국에서 라이센스 받아 합법적인 디지털 자산 파생상품 취급하려는 거래소이다. CoolBitX는 대만계 콜드월렛 제조사인데 최근에는 FATF 권고에 따른 Travel Rule 솔루션인 SignaX를 만들어 SBI 그룹 계열 거래소에 제공하는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SBI의 그림을 보면 디지털 자산 수직계열화를 꿈꾸고 있는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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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 CapitalBase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나 크라우디의 일본버전이다. 라이센스를 받아 2019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디지털 자산 포트폴리오로 분류하고 있는걸 보면 향후 STO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봐야할거 같다.

SBI는 Ripple 미국 본사 지분의 10% 남짓도 보유하고 있다. XRP의 대부분을 RippleLabs가 소유하고 있으니 그 지분법 평가 이익만 해도 최소 수천억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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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송금 자회사인 SBI Remit은 현재는 MoneyGram을 통해 송금을 처리중이나 Ripple과 만든 자회사인 SBI Ripple Asia와 이를 대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남의껄로 고객 먼저 확보 후 천천히 백엔드 자기껄로 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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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SWIFT도 올해 연내 모든 국제 결제가 30분 내 처리되는 새로운 시스템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그러면 핀테크 송금 업체들의 장점이 다소 상쇄될 것이다. 결국 아래 설명처럼 SWIFT는 범용성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30분 내, 핀테크 업체들은 범용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수분 내 송금 완료의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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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 그룹은 요새 핀테크 회사들의 서비스를 플랫폼으로 묶어 API로 만든 다음 이를 일본 내 지역 은행에 제공하는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러면 미리 지분 투자를 해놓은 핀테크 업체들의 거래도 늘고 SBI는 중간에서 API 사용료를 받을 수도 있다. Money Tap 역시 SBI가 키우는 회사 중 하나. (SBI FinTech Incubation은 자기 생태계에 넣을 핀테크 회사를 육성하는 Arm이고 SBI Neo Financial Services는 지역 은행에 API화된 핀테크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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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젊은 세대 공략을 위해 T-Point(우리나라로 치면 OK Cashbag)라는 e포인트를 만들어 이를 전계열사에서 현금처럼 쓰게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는 SBI Neo Mobile Securities라는 자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SBI가 재밌는게 그 자체가 미국의 Charles Schwab이나 한국의 eTrade증권이나 초기의 e미래에셋증권처럼 온라인 증권사로서 전통 증권사를 파고들어 승리했는데, 이제는 자기파괴적으로 젊은 세대 공략을 위한 Neo 뱅크와 Neo 증권을 자회사로 또 만들어 세그먼트별 접근을 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

아래 슬라이드를 보면 자기들이 밀고 있는 소액송금 핀테크 회사인 머니탭과 젊은 세대 공략용 증권사 네오모바일 증권, SBI FXTRADE(외환 중개사), SBI VC Trade(크립토 거래소)를 T-Point로 연동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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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사인 소프트뱅크, 야후 재팬, 그리고 이제는 라인을 통해 네오 모바일 증권과 은행, 증권, 외환, 크립토, 송금, 소셜렌딩(P2P 렌딩)까지 T-Point로 연계하겠다고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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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 증권은 현재 일본 내 2위 증권사다. 1위는 역사와 전통의 노무라. 그러나 성장 속도는 단연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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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 재팬과 제휴를 해서 야후 재팬 계정으로 바로 SBI 증권에 계좌 개설과 거래를 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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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 라인이 야후재팬의 모회사 Z홀딩스에 합병되면서 SBI 입장에서는 더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증권, 외환(금리가 마이너스인 일본에서는 개인이 재테크를 위해 일상적으로 외환 거래를 한다), 은행, 그리고 VC(가상화폐), 핀테크까지 SBI가 보유한 여러 자회사를 Z홀딩스 계열 온라인/모바일 서비스에 공급하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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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SBI는 SBI Crypto라는 마이닝 전문 자회사를 차렸다. 지도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채굴하고 있고 작년에는 비트코인 가격 상승과 함께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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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SBI는 채굴장에 이어 채굴장비 개발에도 직접 나섰다. SBI Mining Chip이라는 자회사를 세워 한창 개발중에 있다. 이정도면 세상의 어떤 금융사보다 크립토 사업에 열성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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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I 그룹의 IR 자료에는 이건 빙산의 일각일 뿐이고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있다. 소프트뱅크도 그렇지만 SBI 역시 IR을 아주 잘하는 편이라 생각한다. 한국의 어느 금융사가 이 정도로 디테일하게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 전략들을 공개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감의 표현이거나 다른 회사는 들어오지 말라는 선전보고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SBI 실적은 매년 무섭게 늘고 있다.

일본 디지털 금융의 향방을 알고자 하는 분은 SBI의 자료들을 샅샅이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요새 한국 금융그룹도 신남방정책으로 동남아 금융사를 많이 사고 있지만 일찍이 SBI만큼 많은 나라에 여러 자회사를 가진 아시아 금융사를 찾기 힘들다. (한국에서 SBI는 SBI저축은행과 벤처캐피털인 SBI인베스트먼트를 운영중이다. SBI저축은행은 당연히 그 다음 기회-인터넷 은행과 같은-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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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없어서 이만 줄인다. 한국에서 이 정도 디지털 금융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카카오와 토스가 유력하고, 한화가 Lifeplus라는 브랜드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SBI의 전선에 비하면 시작 수준으로 봐야할거 같다.

자국에서 디지털 금융이라는 테마를 20년 전부터 딱 쥐고, 이를 레버리지해서 지역 확장(국제적), 영역 확장(디지털 자산) 하는 모습은 다소 두렵기까지 하다. 다만 금융은 규제산업이라 로컬사업의 성격이 다분하여, 디지털을 잘 이해하는 회사가 있다면 여러 나라에서 비슷한 회사가 탄생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본다.

Video killed the text star

# 비디오의 시대는 많은 텍스트 전달자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과거 블로그가 대세이던 시절 필명 깨나 날리던 이들이 지금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트위터나 페북에는 이렇게 저렇게 적응을 했는데 인스타에는 적응을 못하더니 유튜브에는 아예 넉다운됐다. 바야흐로 ‘Video killed the text star’다. 더 이상 지식으로 무장한 좋은 글쟁이들은 메세지를 전파할 방법이 없다. 그 간극을 슈카월드 같은 경제 유튜버들이 채워주고 있지만 아직은 공급부족이다. 전인류가 유튜브로 가벼운 컨텐츠만 소비한다 해서 특별히 우려할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싸이월드-블로그-트위터-페북-인스타로 건너오는 20년의 텍스트 시대동안 얼마나 생산적이었나? SNS가 생산성과 크게 관련 없다는 점에서 비디오 미디어로의 대전환은 단지 텍스트로 생각을 전달해 온, 그래서 영향력을 얻어 온 이들의 실각과 새로운 그룹의 부각만을 가져올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예전보다 안읽는다고 세상의 발전이 더뎌지지 않은 것처럼. 세상은 계속 잘 돌아가겠지만 텍스트로 재주 부리며 살아온 이들의 세상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 의외로 선배들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선배들도 후배들 만나고 싶어하지만 전례없는 라떼는 말이야 무드가 세대간 교류를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가뜩이나 한살 차만 나도 존대하면서 서로 못친해지는 우리같은 나라에서는 세대간 교류는 중요하다. 당장 내 주위만해도 깜짝 놀라는 인생 이야기를 가진 선배들이 많다. 그런 얘기는 유튜브에 안나온다. 깊이있는 컨텐츠가 비디오 미디어를 타고 흐를 날도 오고 있다. 시작은 게임과 먹방으로 가볍게 왔으나 아직 비디오로 도착하지 않은 다양한 컨텐츠 형태가 있다. 명색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로서, 일로서든 취미로서든 여유가 되면 한번 해보고픈 영역이다.

# 중요한건 희미하게라도 꾸준히 가는 것이다. 법적으로 깨끗하고 스스로 계속 노력하며 믿고 돕는 사람들이 있다면 희미하다가도 금방 큰 불 되고, 또 말도 안되는 인생의 결실을 만난다. 언제나 그랬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나는 너무도 당연히 확신한다. 다만 웃긴 것은 희미할 때 무시하고 쌔한 모습 보이는 사람들이다. 고수들은 오히려 희미할 때 잘해준다. 이 사람 다시 금방 커질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수들은 상황의 역전이 얼마나 고소한지 이런 상황이 영원할거라 착각한다. 대체로 인생을 꾸준히 히트하며 살았던 사람은 몇번 고비를 만나도 또 계속 잘한다. 잘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고비에서 정말 괜찮은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그렇다.

# 2006년부터 운영된 이 블로그는 순간순간의 찌질함이 가득 묻은 일기장 같은 공간이었는데, 지금 회사 시작하면서 아주 심각한 글만 올리는 곳이 됐다. 그래서 다시 좀 더 힘을 빼볼까 한다.

2020년의 크립토/블록체인 시장과 생각할 지점들

안녕하세요, 체인파트너스의 표철민입니다.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연말에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새해 블록체인과 크립토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정리해달라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이에 이 분야에 들어와 어느새 세 해째(2017년 말, 2018년 말) 한해를 정리하는 글을 씁니다.

Bitcoin

비트코인은 2018년 내내 떨어져 2019년 초 3,911달러에서 출발해 6개월도 안돼 $12,880달러를 찍고 다시 쭉 빠졌습니다. 허나 이제 시장에서 비트코인은 길게 빠지더라도 한번 대세 상승을 시작하면 그 상승폭도 날카롭다는 경험을 몇 차례 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트레이더들이 비트코인으로 수익을 낼 기회는 계속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들어가고 나오는 시기를 일반인이 정확히 포착하기 어렵기에, MVRV Ratio 같은 보조적 지표가 1 언저리에(1 밑에 있으면 더 좋습니다) 있는 요즘 같은 때 급히 현금화할 필요 없는 여유 자금 일부를 적립식으로 투자해 놓고, 다음 과열 양상(2 이상)이 왔을 때 정리하는 다소 수동적인 전략은 괜찮을 수 있다고 봅니다.

비트코인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나온지 이미 만 10년이 넘었고, 최근 TD Ameritrade를 인수하며 미국 내 압도적 1등 온라인 증권사가 된 Charles Schwab이 2019년 12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27세-38세 사이 밀레니얼 세대들은 Disney나 Microsoft, Netflix 주식보다도 Grayscale Bitcoin Trust(Coindesk를 소유한 유명 컴퍼니 빌더인 DCG가 소유한 자산운용사 Grayscale이 개발한 상장 크립토 신탁 종목으로, 미국의 코넥스쯤에 해당하는 OTCQX 시장에서 거래된다.) 종목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는 상황(해당 종목에 신탁된 Bitcoin 규모: 2019년 9월 현재 $2.3b.-약 2.6조원-)입니다. 프랑스는 곧 고교 교육 과정에서 Bitcoin을 가르친다고 합니다.

비트코인은 전세계에 블록체인의 가치를 보여주었고 은행이나 중간자 없이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거기서 위안화를 기축통화만들고픈 중국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의 영감얻었고, Facebook은 자사의 전지구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돈(Libra)을 만들어 싶어 합니다. 올해부터는 대부분의 모바일 메신저에 크립토 지갑 탑재가 본격화될 것이고, 한 5년만 지나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친구들과 디지털 화폐를 주고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디지털 지갑에 비트코인은 거의 항상 1순위로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그것은 이미 현실로 펼쳐지고 있는 일들이지만 너무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오히려 비트코인의 대중화를 늦추는(사용 상품이 아니라 투기 대상으로 만드는) 해가 될지 모릅니다.

비트코인은 희소성이 있다는 점에서 금과 자주 비교되기도 하고, 휴대와 이동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금보다 낫다는 말도 듣습니다. 2019년 세계금위원회(WGC, World Gold Council)가 펴낸 리포트는 앞으로 비트코인이 가야할 길을 보여줍니다. 1971년부터 2018년 말까지 모든 기간을 조사한 결과 금은 S&P 500과의 상관관계가 낮아 자산 다변화를 통한 포트폴리오 분산에도 효과적이었고(이건 서로 0.2 미만으로 비트코인도 동일합니다), 1900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 어느 주요 통화를 들고 있는 것보다 가치가 지켜졌으며(비트코인은 아직 기간이 짧아 시장 신뢰가 취약), 세계 3대 통화인 Euro/Yen 거래쌍이나 Dow Jones보다도 유동성이 풍부(비트코인은 아직 유동성이 검증되지 않음)했습니다.

금의 변동성은 1971년 미 달러의 금 태환이 일방적으로 종료된 후 치솟기 시작하다 점차 안정을 되찾았고, 지난 10년간은 주요 증시나 원유보다도 적은 변동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애초에 사토시가 비트코인 논문에서 밝힌 설계 목적이 “금융기관의 개입없이 P2P로 사용하는 전자화폐”였다는 점에서 실제 송금과 결제에서 쓰이는 날을 열려면 가치는 지켜지되 지금보다 변동성은 줄이고 유동성은 키워야 합니다. 지갑이 대중화되고 ETF가 나오고 하면 점점 그렇게 되겠지만, 시장의 균형점을 찾기 전까지는 70년대의 금값처럼 다져지는 기간이 걸릴듯 보입니다.

이로써 비트코인은 향후 최소 몇년간은 대안화폐와 투기자산으로의 목적과 기대가 섞인 다소 기이한 존재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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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tcoin

Altcoin은 거의 2년째 꾸준히 빠졌습니다. EOS는 Ethereum의 대항마로 기대를 많이 가졌지만 1라운드 결과만 놓고 보자면 거버넌스 문제로 좋은 블록체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블록체인 G2인 미국과 중국에서 두루 인정받는 블록체인은 Bitcoin 외에는 Ethereum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대체로 미국에서 만든 체인은 중국에서 인정받기 쉽지만, 중국에서 만든 체인은 미국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Tezos나 Algorand, Cosmos 같은 미국 출신 프로젝트는 코인 가격에 있어서도 미국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듯 보입니다. 반면 NEO, Tron 같은 중국 프로젝트는 미국에서는 인기가 없습니다. 중국과 한국이 좋아하는 EOS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지난 10월 시진핑 주석이 ‘블록체인 굴기’를 선언할 때 NEO와 Tron의 가격이 급등했던 것처럼, 중국의 움직임이 가장 먼저 호재로 반영하는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만약 오늘 당장 Altcoin만 가지고 고객들을 위한 ETF를 짜야한다면, Ethereum에 50%, 나머지 절반 중 20%는 미국인이 만들고 미국에서 사랑받는 프로젝트들(Ripple, Tezos, Cosmos, Algorand 등)에, 남은 30%는 중국인이 만들고 중국에서 사랑받는 프로젝트들(NEO, Tron, ONTology, VeChain 등), 일본에서 사랑받는 프로젝트들(Cardano, Bitcoin Cash 등), 한국에서 사랑받을 프로젝트들(Klay, LINK 등)에 각 10%씩 담을 것 같습니다. (물론 Altcoin에 투자하는 비중은 Bitcoin에 투자하는 자산의 최대 1/3을 넘기지 않을거고요.)

언젠가 크립토 기반의 ETF 또는 ETF 같은 바스켓 토큰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저는 높은 변동성을 추구하는 크립토 투자자들의 특성상 Altcoin이 완전히 죽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Bitcoin에 비해 사이즈는 훨씬 작겠지만, 변동성은 더 클 것이기 때문에(코스피에 비해 코스닥 변동성이 더 큰 것처럼) Altcoin은 최상의 투기 종목으로 나름의 생명력을 가져가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프로젝트들처럼 ETF나 그 비슷한 바스켓을 짠다고 할 때 편입될만한 종목이라야 오래 살아남는 Altcoin이 될 겁니다. 2017년의 강세장이 제2, 제3의 Altcoin을 만들기는 이미 늦은 때였는지는 몰라도 잘만 하면 제7, 제8의 Altcoin 정도는 만들 수 있는 기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앞으로도 꾸준히 7, 8위 정도의 위치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Altcoin 바스켓에 편입될 기회가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편입되지 못한 종목들과의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크게 벌어질 겁니다.

DeFi

블록체인 기반의 탈중앙화된 금융을 뜻하는 이른바 ‘DeFi(Decentralized Finance)’는 2019년의 큰 화두였습니다. USDT가 담보된 USD를 믿을 수 없다는 점에 착안해 블록체인으로 담보를 잡는 Maker가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Ethereum만 담보로 잡았는데 2019년 11월 몇몇 다른 ERC-20 토큰도 담보로 잡을 수 있도록 한 차례 진화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DeFi의 장점은 규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입니다. 점점 더 규제는 들어오겠지만 반대되는 개념인 이른바 ‘CeFi(Centralized Finance)’에 비해 운영의 주체가 모호해(분명히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뒤에 있지만) 잘 보이지 않습니다.

초보자들이 매번 차트보며 크립토 투자하는건 어렵기 때문에 차트 따라 알아서 투자해주는, TokenSets와 같은 DeFi 자산운용 서비스도 있습니다. 종전같으면 이런 공모 상품을 만들려면 매우 높은 규제의 벽이 존재했지만-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이런 상품을 블록체인 위에 띄워 전세계인에게 판매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DeFi는 규제 당국에 심각한 고민거리를 안겨 줍니다. 소속된 국가가 없고 회사도 아니고 만드는 사람 역시 점조직처럼 활동하며 상품 가입 과정에서 고객 신원확인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러면서도 하는 일은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의 그것과 똑같다면, 이건 얼마나 큰 일인가요?

만약 은행이 이자로 2% 겨우 주는데 블록체인 기반의 DeFi 은행이 10% 정도 준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직은 규모들이 매우 작지만, 앞으로 DeFi가 불러올 규제당국의 고민은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한국 스타트업 입장에서 보면 사실 DeFi가 규제도 모호하고 한번 히트하면 전세계가 고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업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DeFi는 고객 입장에서 보면 CeFi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지갑도 만들어야 하고 거래소에서 크립토도 사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크립토 가격 변동에 노출되지 않으려면 별도의 헤징도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CeFi보다 약간 나은 수준으로는 고객을 모으기 힘들 겁니다. 압도적인 이익을 고객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하는데, 이제 그 점이 DeFi를 고민하는 스타트업들에게는 큰 숙제라고 봅니다. CeFi에서는 아무래도 규제로 인해 하기 힘든 사업이나 진입장벽 때문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던 사업들이 DeFi에서 잘될 수 있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Lending

크립토 담보 대출은 유망한 DeFi의 한 분야이지만 아직은 CeFi로 더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거래소들이 직접 또는 제휴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Genesis Capital, Babel Finance, Nexo 같은 전문 크립토 담보 대출 회사들이 성업중에 있습니다.

크립토 담보 대출은 개인 고객은 아무래도 대출 규모와 빈도가 작기 때문에 사실 기관이 있는 시장에서 성장하는 분야입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크립토를 취급하는 기관이라 할만한 주체가 없기 때문에 크립토 담보 대출이 성장하기는 다소 어려운 상황입니다. 내년에 특금법이 들어온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금융기관의 크립토 취급이 전면 허용되기까지는 매우 많은 난항이 예상돼 크립토 담보 대출도 의미있게 커지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깃발 꽂고 버티는 자가 호황이 왔을 때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토종 크립토 렌딩 회사인 빌리빗델리오는 한국 크립토 시장에 소중한 스타트업들입니다. 이런 회사들은 우선 국내 개인 대상 대출 시장에서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빗썸 같은 회사들이 델리오와 제휴를 통해 개인 대상 대출 서비스를 하는 것은 생태계를 위해 아주 바람직한 행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크립토 담보 법정화폐 대출은 규제 문제로 각국의 로컬 플레이어들이 다수 등장해 먹고 살 것으로 보이나, 크립토 담보 크립토 대출은 국경이 없는만큼 잘하는 회사가 전세계를 독식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누구나 가장 유명하고 이자가 제일 싼 곳에서 대출받고 싶어 할테니 말입니다.

그런 까닭에 크립토 렌딩을 비롯한 모든 DeFi 서비스들은 단 하나의 특장점이라도 세계 1, 2위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국경없이 전세계에서 고객을 받을 수 있으면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경제를 갖춰 렌딩이든 운용이든 스테이블코인이든 2등, 3등 대비 월등히 저렴한 가격, 현저히 낮은 수수료, 가장 높은 안정성-담보나 보험 커버 등-을 확보하게 돼 하위 서비스들은 대등한 경쟁을 하기 힘든 상황(마치 국내 데이터만 가진 카카오와 전세계 데이터를 가진 구글이 AI에서 같은 퀄리티를 내야하는 것처럼)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Custody

크립토 수탁(Custody) 역시 기관이 있어야 같이 발전하는 분야로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기관의 시장 진입이 요원하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외 수탁 업체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으므로 몇년 뒤 한국에도 크립토 수탁 시장이 열리면 외산 솔루션들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2019년 출시된 업비트의 기업용 수탁 서비스인 업비트 세이프가 프랑스 Ledger사의 솔루션을 사용한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업체들은 앞으로 해외 기술을 구입해 한국시장에 내수 판매하는 서비스 업체로 전락할 가능성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비단 수탁뿐 아니라 렌딩이나 운용, 스테이킹 등의 크립토 금융 상품들 역시 세계를 무대로 장사하는 글로벌 업체들의 상품 경쟁력이 앞서 언급한 규모의 경제 문제로 국내 업체들의 그것보다 전반적으로 뛰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체 상품을 개발할 능력이 부족한 국내 거래소들은 결국 이들과 제휴해 판매하는 한국 판매처에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됩니다.

그나마 업비트 정도 되니 크립토 금융을 하는 자회사를 만들어 대출, 운용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보다 작은 거래소들은 그럴 여력이 없으니 해외 크립토 금융 선두 업체들과의 제휴로 경쟁력있는 상품을 조달할 유인이 커지게 되고, 이는 대부분의 국내 거래소들이 직접 좋은 상품을 만들 능력을 잃고 다만 고객을 마주하는 수고로 약간의 마진을 남기는 지역 소매상 정도의 위치가 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아마 각 지역의 법정화폐를 취급하는 거래소들은 법정화폐를 취급하는 혜택에 대한 반대급부로 규제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야 할테고, 그러면 또 그리 오래지 않아 아무 대출이나 운용, 수탁 상품이나 판매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판매하는 크립토 금융 상품에 대한 규제도 생겨날 것이고 그러는 동안 비교적 규제 밖에 있는 법정화폐를 다루지 않는 거래소들은 더 멀리 달아나 더 공격적인 상품을 더 자유롭게 판매할 겁니다.

내 크립토를 규제 밖에 있는 거래소로 보내는 방법이 영원히 차단되지 않는한, 조금만 발빠른 고객이라면 규제 밖에 있는 거래소에서 제공되는 크립토 금융 상품이 훨씬 더 경쟁력있는 상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고 이는 전반적으로 제도권 안에 있는 거래소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즉 우리는 앞으로 법정화폐를 취급하는 혜택을 얻는 동시에 자유로운 영업을 포기하는 거래소를 가질지, 아니면 반대로 법정화폐를 포기하고 좀 더 자유로운 영업을 택할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이 지구상 어딘가에 크립토만 취급하는 더 공격적인 거래소에도 합법적 라이센스를 주는 섬나라는 생겨날 것입니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Curacao는 전세계 온라인 도박 사이트들에게 합법적인 라이센스를 발급합니다.)

수탁 얘기를 시작했다 좀 돌았습니다. 수탁이 정말 필요해되면 그건 스타트업의 영역은 아닐 겁니다. 기관이 들어오는 시대가 되면 지금 미국의 BakktFidelity처럼 우리나라도 은행이나 신탁사, 증권사들이 직접 할 것이고, 이들이라고 Ledger Vault 같은 이미 기술적으로 한참 앞선 외산 솔루션 구입 못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시장의 해자라든지 진입장벽은 거의 없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수탁 사업의 해자는 오직 브랜드뿐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하고 나중 하고는 거의 무의미합니다. 만약 2013년에 시작한 해외 스타트업 수탁사 BitGo와 2024년에 시작할 KB가상자산수탁 또는 신한디지털자산신탁 중 골라야 한다면 저는 고민없이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Stablecoin

스테이블코인은 체인파트너스 창업 초기부터 관심이 아주 많은 분야였습니다. 때문에 ‘KRWT’나 ‘원테더’같은 상표도 등록 받았고 관련 도메인도 Pegging.io, DollarTether.com, SGDTether.com, KRWTether.com 등등 30개는 가지고 있습니다. 법률검토도 받고 실제 이 사업을 하려고 여러 차례 준비하며 깨달은게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외환 질서에 크게 의존적이라는 것입니다. 중국 위안화는 중국 경제권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다지 갖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원화는 한국사람 말고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미 달러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합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나 쉽게 자국 화폐로 바꿀 수 있어(=풍부한 유동성) 수요가 높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국부 유출을 엄격히 통제하는 국가들에서는 더더욱 달러 수요가 높습니다. 스테이블코인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KRWT가 나오든 CNYT가 나오든 가장 인기있을 스테이블코인은 압도적으로 미 달러와 1:1로 페깅된 디지털 화폐일 것입니다.

미 달러는 전세계가 갖고 싶어하는 화폐이지만 CNY나 KRW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 달러를 확실히 1:1로 받을 수 있다는 보장만 신뢰할만 하다면 동일조건에서 수요는 정확히 외환 시장에서의 수요와 동일할 것입니다.

물론 크립토 시장에서 CNY와 KRW의 위상은 외환 시장의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2019년 전세계 외환 시장에서 가장 활발히 거래된 통화들은 USD(88.3%, 이하 합계 200% 기준), EUR(32.3%), JPY(16.8%), GBP(12.8%), AUD(6.8%), CAD(5.0%) 순이었고 CNY와 KRW는 각각 4.3%와 2.0%에 그쳤습니다.

아직 어떤 통화로 크립토를 가장 많이 사는지 통계는 발표된 적이 없지만 자전거래를 걸러낸 실제 거래 규모를 발표하는 BTI(Blockchain Transparency Institute) 랭킹으로 추정컨대 크립토 마켓에서 KRW가 차지하는 위상은 위환시장과 같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테이블코인 분야에서는 아직 USD를 위협할 어떠한 다른 통화 기반 스테이블코인도 의미있는 거래량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9년 12월 세계 Top3 OTC 하우스인 Circle이 자사의 OTC 사업부를 Kraken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자사의 스테이블코인 USDC 활성화에 집중한다고 밝힌 것도 USD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잠재력이 아직 크기 때문일 겁니다.

이상의 이유로 저는 앞으로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면 1:1로 페깅되는 자산의 점유율,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고려할 때 KRW나 SGD, HKD 등 제3국 화폐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기보다 USD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이미 많은데 똑같은걸 후발주자로 만들어봐야 점유율을 올리기 힘들겠지만 큰 파이의 1%를 빼앗아오는 것이 작은 파이의 30%를 갖는 것보다 가치있는 시장도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확실히 미 달러와 바꿀 수 있다는 신뢰만 얻을 수 있다면, 위안화 또는 원화와 바꾸고 싶은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그 스테이블코인을 더 많이 원할 것입니다.

금강제화 상품권은 구두와 일부 다른 가맹점에서밖에 못쓰기 때문에 롯데상품권에 비해 수요가 적습니다. 제가 바라보는 이종화폐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이와 비슷합니다. USDT가 롯데상품권이고 USDC와 TUSD가 신세계와 현대백화점 상품권 정도 된다면, 금강제화 상품권보다 점유율이 낮아도 옷이나 먹을걸로 더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뉴코아나 NC백화점 상품권이 보다 쓸만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에게 선점보다 중요한건 용처라고 생각합니다. 원화가 아무리 용처가 많아도 달러에 비할바는 못됩니다.

STO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증권형 토큰 발행)는 제도나 인식 모두 아직은 요원한 일인 것 같습니다. 재작년 글에도 언급한대로 저희 회사에는 해외에서 STO 투자 권유가 많이 들어옵니다. ICO 투자 백서만 받다 실제 뉴욕의 고층빌딩이 토큰화된걸 보면 눈이 휘둥글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동산 전문가에게 검토를 맡기면 해당 부동산이 전통 자본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안돼 토큰으로 넘어온 물건이거나 담보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위험한 후순위 권리이거나 합니다. 하긴 상식적으로 좋은 부동산이면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쉬웠을텐데 왜 토큰 발행을 할까요?

물론 건물주가 블록체인 세상을 믿어서 쉬운 자금조달 방식을 포기하고 일부러 선구자의 길을 가려는 것일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이 전체 STO 하는 사람 중 얼마나 될까요?

하지만 ICO 투자만 하던 크립토 개인 투자자들 중에는 제가 STO 백서를 처음 볼 때 느낀 것처럼 훌륭한 건물 조감도 나오고 하면 혹하는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ICO도 아주 초기 환상같은게 있을 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문제있는 프로젝트가 많다는걸 사람들이 깨달으며 점점 더 깐깐히 따지게 되고 나중엔 단계적으로 조금씩 진행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ICO를 뜻하는 DAICO 같은 개념도 나왔습니다.

STO의 첫번째 붐도 이런 모습일거 같습니다. 몇년뒤 규제가 완비되고 STO 프로젝트나 거래소가 쏟아져 나오면 전통 자본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프로젝트들이 자극적인 약속과 사은품을 달고 우후죽순 나올거고, 사람들은 실체를 잘 모르기에 ICO 초기 때처럼 묻지마 투자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장하고 기대와는 다르다면 마치 지금 ICO 투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듯 STO도 암흑기를 몇년 거친 후에 비로소 더 건전한 물건들이 이성적인 검토를 거쳐 판매되며 균형점(=ICO 때는 없었지만 STO에는 있을 Underlying Asset의 내재가치)을 찾아갈 겁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블록체인과 크립토 분야는 인지과학의 연구결과인 Dunning-Kruger Effect가 꼭 들어맞는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고백하건데 처음 이 분야에 들어와 멍청함의 산꼭대기에 있었던거 같습니다.

지금도 지속가능성의 고원 정도는 아니지만 깨달음의 비탈길 정도를 걸으며 제가 이 분야에서 지금 무엇을 모르고 과거엔 무엇을 몰랐었는지 보다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분야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한 제 자신이 얼마나 무지했는지, 그래서 용감했는지 종종 이불킥을 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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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STO도 앞서 Lending과 비슷하게 당장은 아니어도 먼저 하고 있으면 나중에 호황이 올 때 터줏대감으로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금융위 샌드박스를 통과해 한국의 부동산 수익증권 거래 시장을 만들려고 노력중인 카사루센트블록 같은 회사는 담대한 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들 업체들이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증권형 토큰으로는 가지 않고 금융위 샌드박스 통과를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부동산 수익증권 거래 정도로 수위 조절을 했지만 일단 열고나면 토큰화는 상황보며 천천히 해도 되니 어쨌든 우리나라 STO 시장을 처음 열 선두주자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두나무는 증권플러스 비상장이라는 비상장주식 거래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향후 규제 변화에 따라 토큰화될 여지도 있고, 미술품을 분할 거래하는 아트블록, 프로라타아트, 아트앤가이드, 음악 저작권을 분할 거래하는 뮤직코인 같은 업체도 각자의 분야에서 STO 시장을 열어갈 선구자들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STO라는 표현은 되게 오래 걸릴거 같고 손에 잡히지 않는 반면 ‘자산유동화’라 하면 이건 자본시장이나 정책당국, 투자자들도 공감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변화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많은 비유동자산들이 유동화될거라고 봅니다. IT의 발전으로 거래비용이 현저히 낮아지고 결제와 정산이 쉬워진 점이 자산유동화를 가능케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봅니다. 거기다 모두가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신뢰할 수 있는 블록체인은 거래 기록을 남기는데 안성맞춤이라 할 수 있겠지요.

요컨대 앞서 살펴본 더닝-크루거 효과처럼 초반엔 무지로 인한 거품도 낄 수는 있지만 길게 보면 자산유동화는 모두에게 좋은 방향이고 사회적 공감도 얻고 있으므로 지금 어려워도 깃발 꽂고 가고 있는 업체들이 장기적으로는 의미있는 시장을 만들어 낼거라 생각합니다.

Staking / 크립토 운용

Staking과 크립토 기반의 자산운용 사업들도 요새 부쩍 많이 보입니다. 거래량이 줄어든 여러 거래소들이 신규 먹거리 경쟁을 하느라 우후죽순으로 Staking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는데요, 이에 따라 Staking 서비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크립토들은 장기적으로 유리한 한해가 될거 같습니다.

자산운용은 ‘연 00% 보장’이라는 문구가 참 많이 보이는데, 법적으로는 다소 우려스러워 보입니다. 차익거래로 여전히 충분히 약속한 수익을 줄 수 있다는게 제공자들의 입장이지만 이게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본의 아니게 폰지(Ponzi)로 갈 수도 있기 때문에 제공자나 고객 모두 주의해야 합니다.

크립토는 아직 법적 지위가 없으므로 운용업 라이센스 없이 운용해도 된다, 은행업 라이센스 없이 고객 돈 수신해도 된다 하는 일각의 주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굳이 이런 판결 때문이 아니더라도, 금융 규제당국이 사후적으로도 가장 엄격히 보는 문제가 유사수신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종종 미리 허락 받기보다 일단 지르고 나중에 용서 받는게 낫다고는 하나, 그래도 이제 Staking과 운용은 적잖은 위험을 안고 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나중에 규제가 생기고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그때는 당연히 고려할 수 있을 겁니다. 분명 필요한 분야고 누군가 용기내 시작하는 것은 응원할 일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는 분야입니다.

Dapp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에 대해서는 왜 Capp(Centralized Application, Dapp과의 비교를 위해 지금 농담삼아 만든 용어로 우리가 맨날 써온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의미) 대신 사용해야 하는지, 그것도 Dapp 이용을 위한 별도 지갑앱을 설치한 후 크립토를 담아 이용해야 하는지, 그렇게 Capp이 제공하지 못하고 Dapp만 제공할 수 있는 특별한 가치가 있는지 여전히 잘 공감이 안가는게 사실입니다.

일부 게임 Dapp들이 Dapp중에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나 모바일 등 전통 게임들 관점에서는 아직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미미한 수준입니다. 물론 NFT(Non-fungible Token, 게임 내 비싸고 희귀한 칼 등 뽑기만 하면 돈이 되는 귀한 확률형 아이템의 희소성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보장해 주기 위한 방법)를 사용하면 기존 게임들의 가렵던 부분을 긁어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공급자 위주의 발상인 듯 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리니지에서 뽑는 아이템이 실제 희귀하지 않다고 믿었다면, 리니지가 20년째 생명력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물론 의심하는 사람도 많았고 의심할만한 일들도 종종 있었지만, 사실 하우스 운영 방식을 하우스가 소상히 공개하지 않는한 플레이어가 알 방법이 없기에 카지노는 잘 돌아갑니다.

물론 이제 지갑 설치나 크립토 구매의 허들은 앞으로 카카오나 라인 같은 메신저들이 낮춰주면 정말 Capp 수준의 또는 그 이상의 재미를 주는 게임 Dapp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Capp보다 불편하면서 재미와 효용은 오히려 적은 Dapp만 거의 보아왔기 때문에 업계 전반에 노하우가 쌓이기 위해서는 다른 분야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딱 한가지 Dapp의 기회는 Capp으로 존재하기 어렵던 극강의 사행성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마저도 앞서 언급한 Curacao 같은 섬나라에서 정식으로 라이센스를 받고 이미 Capp들이 극강의 사행성을 입출금이 Dapp보다 더 용이한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보니 다소 희석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면 남은 탈규제 영역은 이보다도 더 위험한 것들(마약/무기/포르노 거래)인데 이제 도박보다 용서받기 힘든 것들이기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앞서 소개한 TokenSets이나 Maker 같은 대표적인 DeFi 서비스들도 Dapp입니다. 똑같이 지갑을 설치하고 크립토를 사와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소비자 효용(자국 규제 내 금융상품 대비 높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불편을 상쇄하는 경우 Dapp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게임 아이템도 물론 수익을 얻을 기회는 주지만 이건 블록체인이나 NFT여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게임의 흥행 때문인 것으로, 원인과 결과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흔히 사용자 행동을 유도하고 리워드로 크립토를 지급하는 블록체인 서비스들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서비스가 일단 재밌거나 유익해야 지속 가능한 것이지 리워드가 먼저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DID

DID(Decentralized IDentifier, 해외에서는 SSI-Self-sovereign Identity-를 더 많이 사용)는 지난해 국내 블록체인 분야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기존에는 웹/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할 때 사이트마다 다 가입을 새로 해야했고 그러다보면 보안 문제도 생기고 비번을 까먹는 일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 대안으로 나온게 네이버, 카카오, Facebook, Google 등 대형 포털 아이디로 로그인하는 이른바 ‘소셜 로그인’ 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중소 사이트들에 비해 네이버나 구글은 내 비번을 더 엄격히 관리할거라는 믿음이 있고 비밀번호를 잊을 가능성도 비교적 적습니다.

그러나 이런 서비스들은 네이버, 구글 접속이 어렵거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에 회사가 사라지게 되면 모두 로그인이 불가능해집니다. 또한 네이버나 구글이 내 정보를 점점 독점하게 되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블록체인 기반 DID(탈중앙화된 인증)입니다. DID를 쓰면 특정 업체에 대한 종속 없이 내 정보는 블록체인에 암호화되어 저장되고, 이 정보를 여는건 비밀키를 가진 본인만 가능합니다. 내 개인정보 중 일부를 선택해 특정 사이트에 제공하는 것도 온전히 내 의지와 통제하에 이루어집니다. 특정 업체가 회원정보를 소유/관리하지 않으므로 어떤 회사가 망한다고 내가 로그인을 못하게 되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블록체인을 쓰기에 아주 좋은 용처입니다. 그래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들까지 작년 한해 DID 선점을 위해 열렬히 뛰어들었고 이 움직임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빠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공인인증서를 마음먹고 배포하니 전국민이 쓰게 되었던 것처럼, DID도 참여하는 업체들의 면면상 상당한 파괴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규제나 인식 문제로 국민들의 개인정보가 전면적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에 기록되기는 어려울거 같고, DID 연합체에 참여하는 기업들간의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이론상(모든 참여 기업이 망해도 소비자는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목표의 절반 정도 수준으로만 우선 구현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퍼블릭 블록체인으로까지 올 것이고 모든 참여 기업이 망한다는 전제는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DID는 우리같은 소비자들이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 파고들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마치 요즘 통신 3사가 함께 PASS라는 인증 앱을 띄워 많은 국민들이 자연스레 쓰게 된 것과 같이.)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탈중앙화된 신원 인증 체계인 DID 역시 기업들이 서로 자기가 먼저 차지하겠다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정보가 저장되는 뒷단(Back-end)이 블록체인이 아닌지, 무슨 블록체인인지 고객은 전혀 몰라도 되지만 고객이 실제로 DID 인증을 사용할 앞단(Front-end)을 선점하는 회사는 고객을 쥐고(마치 간편결제 앱 PAYCO나 위의 인증 앱 PASS가 들어가면 온갖 금융 서비스를 추천하듯) 다양한 서비스를 추천할 수 있게 되고, 자기 DID 솔루션을 여러 금융사나 정부, 대기업들에 공급할 기회도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금융 SI 업체나 보안/인증 솔루션을 판매하던 회사들 입장에서 DID는 경쟁이나 자기 영역을 잠식할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계속되어 온 인증의 진화 과정(Active-X 기반 공인인증서 -> i-PIN -> 샵메일 -> Mac/Linux 등 Multi OS 호환 -> Active-X 없는 공인인증서 -> 생체 인증 -> 간편 인증 -> DID)에서의 다음 먹거리일 뿐이고, 그 분야 대부분의 업체가 뛰어들었으니 금방 현실이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네이버나 구글 같은 특정 기업이 운영하는 인증 서비스가 죽거나 점유율이 떨어질거냐? 그건 아니겠지요. 은행이나 통신사 등 종전에 소셜 로그인을 쓰지 않던 서비스들에서 DID 비중이 커질 것이고, 헤게모니를 쥔 Facebook이나 Google 같은 업체들은 당연히 자사 로그인을 고수할 겁니다. 예컨대 Instagram에서 Facebook 로그인이 아닌 DID 로그인을 허락할 것이냐, YouTube에서 Google 계정이 아닌 DID 계정 로그인을 허용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각국 공정위 개입이 있기 전까지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따라서 DID가 좋은 취지임에는 분명하나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는 i-PIN 정도의 공감(정작 소비자는 왜 써야하는지 모르고 오히려 새로운걸 배워야 하기에 불편함만 커지지만, 관련 업체들에게는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만 얻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Blockchain for Enterprise

저는 그동안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이었습니다. 노드 수가 적은 블록체인은 데이터 위변조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위험하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작년 여러 기회를 통해 실제 대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접하며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기업들 간의 거래는 참여자가 둘 이상인 거래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둘끼리는 서로만 잘 감시하면 되는데 3인 이상이 되면 이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해야 합니다. 누구 하나가 이익을 볼 요량으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거래 내역을 조작하거나 하는 경우는 잡아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참여자가 3인이 아니라 다섯, 열개가 넘는 거래도 기업 현장에는 허다했습니다.

그런 거래는 거래의 진위여부를 검증하는 노드(검증인) 수가 100개, 1,000개가 아니라 5개, 10개의 거래 참여자들끼리라도 어느 누구도 거래내역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정도의 신뢰만 있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환경이 됩니다. 종전에 무역을 할때는 10개 이상의 업체들이 산지에서부터 만들어진 서류를 순차적으로 다음 단계로부터 넘겨 받으며 진행되어 왔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 서류에 손을 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지만 어느 단계에서 누가 어떤 이유로 얼마나 고친지 전체 거래 과정에 참여하는 어느 누구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런 까닭에 무역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이 모두의 거래원장만 공유하고 있더라도 충분히 데이터 조작 가능성이 줄고 서로를 의심해 발생하는 신뢰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은 워낙 초기라 각 현장에서의 충분한 운영 성과가 쌓이기 전이지만 그래도 단순화하면 거래 참여자가 둘 이상인 모든 기업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못믿는 신뢰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충분히 도입할만한 가치가 있는 기술이 바로 블록체인입니다.

여러 산업군에 걸친 수많은 거래들은 소수의 노드 분산만으로도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도입비용 대비 절약되는 신뢰비용이 더 클 경우 기업 현장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기업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잘 모르더라도 국지적이고 단발성으로 블록체인의 잇점을 누릴 수 있는 BaaS(Blockchain as a Service)는 앞으로 기업과 관공서용으로 널리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 까닭에 그동안 제가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은 앞서 더닝-크루거 효과에서 살펴본 무지의 발로는 아니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 됩니다.

아래는 기업 현장에서의 블록체인 활용에 관해 제 생각을 바꾸게 한 계기 중 하나였던 작년 가을 어느 행사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기사화도 된 자리였으므로 당일 발표자료를 몇장 소개합니다. 한번 살펴보시면 제가 설명한 ‘참여자가 3인 이상의 거래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수단으로 블록체인을 활용해 과거보다 기업 현장의 문제를 쉽게 달성하는 사례’들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물론 기업현장에서의 활용도 아무데나 쓰면 안되고 참여자들이 서로를 못믿어 시간과 비용의 비효율이 발생하는 경우 중에서도 일부에서만 블록체인 도입이 좋은 성과를 얻을 것입니다. 좋은 문제를 찾았어도 설계를 잘못했거나 도입을 엉터리로 했거나 아니면 나머지를 다 잘했는데 사용을 제대로 못해 기대한 성과가 안나오는 경우도 분명 있을 겁니다. 블록체인이 필요한 많은 케이스를 찾고, 여러 프로젝트가 시도되고 성공/실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좋은 용처와 해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클라우드 초기 때처럼 기업들이 이걸 전면적으로 쓰기 전에 연구하는 단계이지만 삼성SDS, LG CNS, SK C&C, SK텔레콤, KT, IBM,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등 기업 현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이 블록체인 SI, BaaS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케이스의 발견과 확산은 몇년 내에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다고 판단됩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스타트업의 제일 큰 고민이자 문제는 각 산업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블록체인 스타트업은 무역업이 어떤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블록체인을 도입해 무역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 제시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거의 모든 산업군에 걸쳐 IT 솔루션을 제공해 온 이런 대기업 계열 IT 회사들은 이른바 ‘Domain Knowledge’라고 하는 산업에 대한 전문성이 있습니다. 이런 회사들은 블록체인을 쓰면 어느 분야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겠다는 기획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회사들은 개발도 혼자 다 할 수 있지만 일정 분야의 개발과 구축은 스타트업들과 함께한다면, 도메인 날리지가 있는 대기업과 개발이 빠른 스타트업 연합군이 글로벌 블록체인 SI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우리 체인파트너스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은 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블로코, 아이콘루프, 람다256, IBCT, 케이체인 등과 같은 훌륭한 블록체인 기술 스타트업들이 있기에 다른 나라들 대비 B2B 사업의 기초 체력은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나가며.

지금까지 블록체인과 크립토의 여러 분야별로 한해 정리와 앞으로를 위해 생각해볼 지점들에 대해 개인적 소견을 몇자 적어보았습니다. 올해 글을 쓰면서는 과거에 썼던 글들에서 제가 했던 우려나 비판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저 스스로 그리 잘 하지도 못했으면서, 뭘 안다고 비판적 견해를 취했는지 부끄럽고 송구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과거 저의 글들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셨던 분들께는 용서받지는 못하더라도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말씀만이라도 전하고 싶습니다.

새해의 고민 포인트

앞서 이미 내용 중에 저의 고민이 다 녹아 있지만 좀 더 간결히 고민할 지점만 정리를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제도권 편입 VS. 더 밖으로.

올해부터 여러 나라가 라이센스를 줍니다. 라이센스를 따려면 국내에서는 ISMS-P 인증 취득 등 기본 요건을 달성해야 하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제도권 안에서의 플레이가 밖에서보다 점점 훨씬 제약될 것입니다.

제도권 안에도 충분한 내수 시장과 성장 여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길을 택하는 것이 옳은데 현재 한국의 크립토 시장은 내수의 성장 여력이 다소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규제로 손발이 묶인 제도권 내 거래소는 상품 다변화의 경쟁력을 잃고 제도권 밖의 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승리한 상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소매점의 역할에 머물 것입니다.

국가 규제에 스스로를 맞추려는 노력은 직접 글로벌 진출을 하거나 해외를 상대로 금융 상품을 만들어 팔만한 경쟁력은 점점 약화시킬 겁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제도권 편입을 포기하고 더 밖으로 나아가는게 옳은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2. DeFi VS. CeFi, 내수 VS. 글로벌

앞서 설명한대로 DeFi는 지갑 설치와 크립토 구매 등 소비자의 진입장벽이 높지만 전세계를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CeFi는 자국 규제에 의존적이라 글로벌 진출이 어렵고 금융 규제의 높은 벽을 뚫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자국 내 소비자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DeFi 대비 진입장벽이 낮고 안전하며 지속가능성이 있습니다.

CeFi는 앞서 거래소 사례처럼 내수 사업에 어울리지만 DeFi는 글로벌 대상 사업에 어울립니다. 물론 DeFi는 장기적으로 보면 여러 나라에서 지금의 우버나 타다처럼 법으로 규제되는 날이 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1위의 도박 사이트인 Bet365가 여전히 전세계 많은 국가에서 접속/이용 가능한 것과 같이 계속 이용 가능한 나라들은 분명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안전하지만 성장 여력이 불투명한 라이센스 기반의 내수 사업을 하느냐, 아니면 안전하지 않더라도 작은 내수보다 많은 사람을 잠재 고객으로 둘 수 있는 글로벌 사업을 규제 밖에서 하느냐는 전적으로 자기의 시장 판단에 달렸습니다. 아마 크립토 안에서도 어떤 사업은 규제와 큰 상관없이 살아남는 분야가 있을거고, 규제로 인해 완전히 통제되는 부문도 있을 겁니다. (적어도 법정화폐가 크립토와 바뀌는 지점만큼은)

3. 살아남으면 볕이 드는가? VS. 볕 드는 곳으로 가야 살아남는가?

블록체인을 매일 업으로 3년 정도 하니 이 분야는 아직 ‘만들면 써주겠지’, ‘소비자는 이게 필요할거야’하는 공급자 위주의 관점이 주를 이루는 곳입니다. 아직 블록체인에 관심있는 사람의 8할은 그저 ‘100배 마진거래’ 정도에 눈길을 주는데 블록체인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 하나같이 동화속 세상에 사는 이들 같습니다.

DeFi든 CeFi든 Dapp이든 Capp이든 DID든 할거 없이 중요한건 소비자에게 필요한거냐 아니냐입니다. 지난 2년간의 크립토 가격 하락으로 인해 크립토와 블록체인 분야의 총수요는 분명히 크게 떨어졌습니다. 총수요가 갑자기 높아지면 공급과의 갭이 생기기 때문에 이것저것 필요해 보이는 것들이 생겨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갑자기 오른 수요가 또 확 떨어져 이제는 필요해 보이던 것들이 공급 과잉이 된 상황입니다.

이럴때는 냉정하게 총수요가 올라오지 않으면 우리가 만든 제품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버티고만 있으면 살 기회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식 같은 제품도 과감히 일단 뭍고 줄어든 총수요 안에서 아직 충족되지 않은, 전에 우리가 추구하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문제를 찾아 집중해야 하는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체인파트너스의 선택

우리 체인파트너스는 총수요가 급증하던 시기 탄생해 덕분에 훌륭한 인재들을 모아 당시로서는 필요한 사업들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총수요 감소로 공급과잉에 처하며 우리 손으로 만든 좋은 제품들을 뭍고 좋은 인재들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이때 아니면 한국에서 이 정도의 인재들을 모아 이렇게 다방면에서 규모감 있는 크립토 비즈니스를 할 기회가 없을거 같아 총수요 감소로 인한 후퇴가 개인적으로 너무나 비통했습니다. 꿈으로 뭉친 사람들과의 이별 또한 작년 내내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신을 단단히 차리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만든 것을 들고 총수요가 올라가기를 기우제 지내듯 기다릴 것이 아니라 줄어든 총수요 안에서도 필요하고, 앞으로 총수요가 오르면 훨씬 더 필요해질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만약 크립토가 사기고 이미 끝났고 미래가 없다면 각자 짐 싸서 갈 길 가는게 우리가 아무리 오래 했어도 더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앞서 우리가 함께 살펴봤듯 중국 등 대형 정부나 Facebook 등 큰 글로벌 기업들이 디지털 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있고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의 시장 참여, 전세계 정부의 규제 마련으로 인해 크립토가 머잖아 ‘정상 금융 자산’으로의 지위와 입지를 얻게될 것은 이제는 더 다툴 필요도 없는 자명한 미래입니다.

우리는 2019년 초 블록체인 관련 업무를 모두 버리고 크립토로 간다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면서 (크립토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모태펀드의 눈치를 또 볼 수 밖에 없는) 일부 VC로부터의 투자 유치나 (법이나 가이드라인에 기술된 적은 없지만) ‘크립토 회사는 그냥 안되는’ 까닭에 기보와 신보로부터의 대출도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시 우리의 결정이 맞았고, 지금 다시 돌아가더라도 블록체인보다 크립토에 집중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블록체인이 가져다 줄 효용도 물론 훌륭하지만, 크립토는 보다 가까운 미래에 사회의 일부가 될 것이고 그리 되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많은 요소들이 새로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게 재미있는 것은 크립토가 커지든 작아지든간에 사회의 일부가 될게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시장에 대한 인식이 어두워 작년 한해 신규진입자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이 노하우와 기술을 고도화시킨 그 전부터 있던 업체들은 이제 저만치 달아났기 때문에, 앞으로 호황이 와서 새로 들어오는 업체들은 이제 동일 조건에서 싸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물론 한국이 상대적으로 크립토 회사의 투자와 대출에 있어 좀 더 가혹한 여건인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모든 나라의 크립토 스타트업은 다 행복한데 우리만 힘든 환경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기에 만 3년을 기술과 노하우 쌓으며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는 어쩌면 유리한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시장에서 찾은 기회

그동안 체인파트너스는 크립토 장외거래(OTC), 거래소, 결제, 전화주문, 블록체인 노드 운영, 마이닝, 지갑, 크립토 발행 자문, 마케팅, 미디어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시장을 배우고 우리의 무지를 깨달아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만큼 각 분야의 최전선에서 크립토 산업을 넓은 범위로 경험한 회사도 드물 것입니다.

이같은 범위의 경제는 어느 분야가 포화인지, 어느 분야는 아직 아닌지, 또는 있어도 아직 완성이 덜 되었는지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20년을 IT 서비스만 만들어 온 사람으로서 자동화할 수 있는걸 아직도 사람이 수동으로 처리하고 있는 비효율도 의외로 많았습니다.

이에 우리가 풀고 싶은, 풀 수 있는 시장의 문제를 찾아 작년 가을부터 다시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거래소도 DeFi도 Dapp도 아닙니다. 크립토 시장의 열기가 식었다 하나 이 서비스는 머잖아 크립토 시장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업체와 개인들에게 꼭 필요해질 서비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비로소 업계의 모두와 함께 도우며 일할 수 있습니다.

2020년 크립토 세미나 신청과 크라우드 펀딩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 지면으로 소개하자면 다시 이 글이 너무 길어질 듯 하여 우리가 무엇을 만들고 있고 시장에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하는지는 따로 찾아뵙고 설명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2020년 크립토/블록체인 시장 전망과 함께 체인파트너스가 준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설명이나 세미나가 필요한 기관에서는 제 메일(pyo@chainpartners.net)로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VC, 증권사, PE 등 자본시장 플레이어들, 언론계, 법조계, 대학 등의 사내 세미나나 대 고객 행사, 친목 모임 등 다양하게 초대해 주시면 검토하여 크립토 산업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이 지면으로 다 적을 수 없는 내용을 나눌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더불어 저희가 조만간 신사업과 관련한 크라우드 펀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산업이 커질 것이고 우리가 옳은 문제와 답을 찾았다면, 당장 시장이 작아져 있어도 좋은 제품을 출시하고 다음 도약을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체인파트너스의 크라우드 펀딩 소식을 받아보길 원하시는 분들은 이 링크로 신청해 주시면 준비되는대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한없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본 크립토/블록체인 시장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지난 3년간 정말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더불어 요즘은 크립토를 넘어 외환이나 전통 자본 시장에 대한 공부도 안할 수 없어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Facebook이나 Instagram을 구독해 두시면 부족하나마 공부하는 내용을 꾸준히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년 정초에, 표철민 올림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이 나오다

올들어 회사 일 외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이 지난 금요일 드디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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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분들이 각자 분야의 작성과 수정, 감수를 맡아 거의 일년여간 노력해 왔다. 밖에서 볼 때는 짧은 글이지만 이 짧은 글이 나오기까지 적어도 열 차례는 수정을 거쳤다. 나는 블록체인 분야의 좌장을 맡아 권고안의 블록체인 분야 서문을 썼는데, 피드백을 반영해 한 세 번을 완전히 다시 썼다.

발표되고나서 기자분들 전화가 와서 반응이 “엥? 왜 그렇게 내용이 없어요?” 였는데 이 정도 나오기까지도 얼마나 많은 반대가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이 권고안은 블록체인 분야에서만큼은 아래와 같은 의미가 있다.

  1. 암호자산으로의 용어 통일

    우리나라에는 가상화폐, 암호화폐, 가상통화, 디지털 자산, 암호자산 등 비트코인을 필두로 한 크립토를 부르는 너무나 다양한 용어가 있다. 우리는 이를 화폐보다 자산의 성격을 강조하고, 허구와 같은 가상(Virtual)보다 원어(Crypto) 그대로의 취지를 살리고자 최근의 국제 흐름에 따라 ‘암호자산’으로 용어 통일을 시도했다. 이는 단순 임기응변식 정리가 아니라 ‘앞으로 이렇게 가야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따라서 향후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에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희망한다.
  2. 2030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

    이 권고안은 블록체인 분야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2030년의 대한민국을 가정하고 쓰여졌다. 따라서 당장 내일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크게 보면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블록체인 분야도 크게 보면 1) 허가형 블록체인의 산업/공공 분야 도입 활성화를 통한 신뢰 사회 구축 2) 비허가형 블록체인 활성화를 통해 앞서 1)의 목적을 보다 저렴하게 구현 3) 암호자산 제도화를 통해 앞서 2)의 목적을 보다 지속 가능하게 실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여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10년 뒤에 돌아봤을 때 ‘아, 그래도 참으로 옳은 방향을 제시했구나’ 느낄 수 있도록 고민했다.
  3. 정부 정책 변화의 불씨

    이 권고안은 정부를 향해 ‘4차산업혁명 시대에 경쟁국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말그대로 ‘권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권고를 실제 채택할지 여부, 채택하면 얼마나 할지, 언제 할지 여부는 모두 개별 정부 부처에 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없는 ‘권고’가 의미있는 이유는 적어도 정부 조직도 내의 한 부서가, (그것도 4차산업혁명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라고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 놓은 부서가) 지금까지의 정부 정책과 사뭇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정부 조직도 내의 어느 누구도 다른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따라서 개별 부처가 지금까지와 다른 정책을 펴야겠다는 필요를 느낀다 해도 태세 전환의 특별한 명분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이 정부든 다음 정부든 2019년 10월에 대통령 직속 4차위가 남겨 놓은 문서는 부처 담당자의 정책 설계 과정에 참고자료가 될 수 있으며 때로는 같은 방향의 정책을 펴고자 할 때 좋은 명분이자 논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정부위원이 아닌 민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간위원임에도 불구하고, 암호자산 제도화 관련 의견을 권고안에 포함시킬 때 같은 이유로(정부 조직도 내의 누군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 때문에) 여러 반대와 저항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장병규 위원장께서 앞에서 여러 차례 방어를 한 까닭에 특히 블록체인 분야는 정부 기조와 사뭇 다른 내용을 최종안에 담을 수 있었다. 정작 블록체인 분야에 종사하는 동료들은 권고안의 내용이 다소 실망스럽다고 한다. 하지만 권고안의 부록을 잘 보시면 한국거래소(KRX)에 비트코인을 직접 상장하고 비트코인 파생상품 출시도 고려하라고 권고했는데, 이건 현재까지도 미국이나 스위스 등 극히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정부 조직도 내 조직이 권고한 암호자산 정책 방향치고는 매우 급진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 뉴스도 많고 사회도 뒤숭숭해서 많은 분들이 일년여간 준비해 온 권고안이 그다지 소개가 덜 된듯 하여 그 의미를 몇자 적어 보았다. 위 2번과 3번은 블록체인 분야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통하는 의의일 것이다.

그리고 이 권고안의 내용은 정책 관련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학습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저자들이 각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분들이기도 하고, 산업연구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정보화진흥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한국식품연구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공 싱크탱크가 두루 참여해 권고안의 공신력을 높였기 때문이다.

아래 권고안은 지면의 제약으로 인공지능부터 헬스케어, 금융, 농업, 모빌리티, 교육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변화할 모든 사회 분야의 미래상과 가야할 길이 각자 2-3페이지의 아주 짧은 분량으로 정리되어 있다. 보다 자세한 정책 방향을 보려면 부록을 꼭 함께 읽으시기를 권한다.

2030년의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시간을 뺏겼지만 훌륭하신 분들과 국가의 미래, 특히 지금 몸 담고 있는 분야의 미래를 제시하는 일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데에 무한한 영광과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

4차위가 기대에 비해 결과가 없다고 외부 비판이 많았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 위원장님 이하 각 정부 부처에서 파견 오신 지원단과 다른 위원님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목격하고 다 저마다의 이유와 사정이 있음을 느끼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그래도 나는 4차위에 파견되어 있는 각 부처의 공무원들이 다시 각자 자리로 돌아가 언젠가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서게 될 때, 이런 조직을 경험하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더 나라의 미래에 도움되는 정책을 펴리라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 대정부 권고안 (다운로드)

대정부 권고안 부록 – 상세 정책 제언 (다운로드)

체인파트너스의 첫 2년, 1막을 마치며.

안녕하세요, 표철민입니다. 어느새 5월이 되었고, 서른 셋의 늦은 나이에 군에서 제대해 새로운 일을 시작한지도 2년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까마득한 중3 때 시작한 다드림커뮤니케이션이라는 도메인 등록대행 회사를 3년, 그리고 대학 2학년 때 시작한 위자드웍스라는 위젯, 모바일 앱 개발 회사를 10년 운영하고 그 사이 게임 회사와 자잘한 부업들도 했습니다. 처음 웹사이트를 만들고 돈을 벌어본게 1999년이니 올해로 딱 20년이 되었습니다.

군에 다녀와 새로 시작한 회사는 체인파트너스라는 블록체인 회사입니다. 제가 제대한 2017년은 비트코인이 끝모를 상승을 하던 해입니다. 그 해 초 마침 가까운 선배(지금 해시드의 김서준 대표)를 만났다 이더리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트코인은 2013년부터 조금씩 샀었지만 군에 가있는 동안 나온 이더리움은 신세계였습니다. 서버나 운영하는 사람없이 블록체인 기반으로 앱을 돌릴 수 있다는 말은, IT를 오래 접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관심가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봄과 여름, 이더리움과 그 위에서 돌아가는 앱들을 샅샅이 공부하고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지만 KAIST와 포항공대를 찾아가 작은 세미나를 열고 같이 블록체인 세상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블록체인비즈니스연구회>라는 모임도 만들어 제가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 공유했습니다. 그해 여름 동안 천명 가까이 되는 사람이 3회에 걸쳐 진행된 그 세미나를 들으러 왔습니다.

코인 가격에 대한 이야기 없이 전세계에 존재하는 블록체인 비즈니스, 기술의 현황, 그리고 법/제도 상황에 대한 세미나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블록체인 백서를 읽는 공부 모임도 만들어 블록체인에 푹 빠진 분들과 함께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임을 통해 만난 분들과 지금의 회사를 창업했습니다. 2017년 7월이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뭘로 할까 하다가 블록체인 산업의 후발주자인 한국에서 모두의 친구이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조력자가 되자는 의미로 ‘체인파트너스’라 이름 지었습니다. 밤낮없이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2017년은 원채 블록체인의 인기가 뜨거울 때라 너무도 훌륭한 인재들을 운좋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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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 최대의 블록체인 미디어인 Coindesk와 암호화폐 자산운용사인 Grayscale을 소유한 DCG처럼 블록체인 분야의 다양한 사업을 소유한 컴퍼니 빌더 모델을 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선 전통 언론사와의 합작으로 디센터(Decenter)라는 블록체인 미디어를 창간했습니다. 토크노미아(Tokenomia)라는 암호화폐 설계 자문사를 설립해 10여개 암호화폐의 개발을 돕기도 했습니다.

출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블록체인인 EOS(이오스)의 노드를 운영하는 대표자 선거에 출마해 높은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오시스(eosys)라는 이름의 EOS 블록체인 전문 엑셀러레이터를 설립해, EOS 블록체인 이용을 위한 지갑, 검색엔진, 게임 등 각종 유틸리티를 출시했습니다.

코인사이트(Coinsight)라는 이름의 YouTube 채널을 개설해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일반인에게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했고, 폴라리스(POLARIS)라는 이름의 자체 블록체인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을 모아 피클(PYKL)이라는 마케팅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암호화폐를 이용한 금융 서비스는 2017년 5월 체인파트너스 첫 사업계획서의 대부분을 차지한 분야입니다. 우리는 기술로 차별화한 암호화폐 거래소인 데이빗(daybit)을 2018년 10월 오픈했고, 11월 글로벌 8대 장외거래 업체와 제휴한 국내 첫 암호화폐 장외거래(OTC) 서비스인 체인파트너스 OTC를 열었습니다.

암호화폐를 증권가의 시각으로 조명하는 체인파트너스 리서치는 올 4월부터 암호화폐 리서치센터로는 세계적으로도 흔치않게 Bloomberg에 리포트를 내고 있습니다. Bloomberg 터미널은 전세계 대부분의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구독하는 단말기로, 암호화폐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전통 자본시장에서도 참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2018년 1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출시한 이더리움 오프라인 결제 서비스인 코인덕(Coinduck)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두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1천개 매장을 확보해 Forbes에 소개되며 크립토 국가로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올해 삼성전자가 출시한 갤럭시S10에 유일한 암호화폐 결제 서비스로 코인덕이 탑재되면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삼성 블록체인 월렛에 초기 탑재된 네 개의 블록체인 서비스 중 가입이나 별도 설치가 필요없이 아예 앱 내에 내장된 서비스는 코인덕이 현재까지도 유일합니다.

체인파트너스는 이토록 많은 진전을 단 일년 반만에 이뤄냈습니다. 물론 일을 하면서 작년 내내 암호화폐 시장이 어려워진 까닭에 우리는 올들어 몇가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해야 했습니다. 암호화폐 신규 개발이 크게 줄어들자 토크노미아를 정리했고, 더 이상 새로운 블록체인이 시장에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하에 폴라리스를 접었습니다. 코인사이트와 피클을 정리했고 다른 사업들도 조직을 최대한 슬림하게 조정했습니다. 설립 후 처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큰 체질개선을 이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어디에 더 힘을 쏟고 어디에 좀 더 힘을 빼도 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은 다 들고 직접 하기보다 분사(Spin-off)해 더 작은 조직으로 가는게 효율적이라는 판단도 내렸습니다. 블록체인 분야에서 살아남아 끝내 좋은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보다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실행력이 좋은 팀입니다. 불과 일년 반만에 14가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하나씩 궤도에 올리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그것도 어디서 빌려다 대충 만드는게 아니라 모든 기술을 자체 개발했습니다. 법적으로도 항상 꼼꼼히 따져보고 출시합니다. 시장의 수요를 찾고 여기 대응하는 서비스를 가장 빨리 냅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 중 하나가 체인파트너스 OTC였고 출시 네 달만에 240억 거래를 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암호화폐 장외거래 시장은 주로 음성적으로 형성되어 왔습니다. 최근 버닝썬 사건의 조연 중 하나였던 이른바 ‘린 사모’가 한국에 송금한 기록이 전혀 없음에도 국내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음성적인 암호화폐 장외거래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체인파트너스 OTC는 국내 암호화폐 장외거래 최초로 철저한 거래자 신분확인(KYC)과 돈 세탁 방지(AML)를 위한 자금 출처 확인을 거칩니다. 현재 금융위원회 관할의 모든 업체는 암호화폐를 사거나 보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거래는 모두 비금융권의 양성적 거래였다는 점에서 아주 희소한 사례입니다. 만약 언젠가 금융권의 암호화폐 보유가 허용된다면 당연히 양성적인 거래를 원할 것이고, 우리 OTC 데스크는 국내에 없던 서류를 처음부터 만들어가며 ‘깨끗한 암호화폐 장외거래’라는 새 시장을 개척해 온 보상을 얻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 시장 수요를 발견해 출시한 서비스가 작년 12월 낸 비하인드(Behind)입니다. 오픈 후 세 달만에 입소문만으로 200억 거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날 우리 팀은 아직 어느 거래소에도 상장되지 않은 암호화폐를 사람들이 P2P로 거래하는 경우가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기가 빈번했고, 거래 가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같은 상품이 거래자에 따라 다른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이런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보다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실시간 거래가를 공개하고 중간에 암호화폐를 에스크로(Escrow) 해주는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반응은 아주 좋았습니다. 특정 코인이 비하인드에 상장되자 P2P 거래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비하인드에서 거래하는게 훨씬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체인파트너스는 암호화폐 시장의 틈새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서비스를 좋은 타이밍에 내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돌아보면 2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체인파트너스가 얻게 된 가장 큰 경쟁력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가장 많은 서비스를 직접 만든 경험과 거기서 배운 통찰, 자랑할만한 개발자와 디자이너들을 보유하고 스스로 필요한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제작력, 전원 금융권 출신 국내 변호사들과 해외 변호사로 구성된 블록체인 전문 법무팀의 전문성 이 세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창업부터 폭발적으로 일을 벌리며 두루두루 사업 기회를 모색한 1막을 지나, 다소간의 정리와 수렴을 거쳐 이제 다시 초점을 맞추고 몇가지 사업을 깊게 파내려가는 지금이 체인파트너스에게는 본격적인 2막이자 가장 큰 도전의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시리즈 A 펀딩으로는 전례없는 140억을 투자받아, 한국을 기초부터 탄탄한 ‘미래 크립토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금융권과 법조계, IT 업계에서 최고의 인재들을 초대해 한 발자국씩 쌓아올려 왔습니다.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국가적 탄압과 4대 거래소에만 실명계좌를 열어주는 은행들의 불공정 거래, 일면식도 없는 분들의 거의 영원할 것 같은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오랜 시간 우리가 꾸준히 쌓아 올린 법적 토대와 기술의 초석 위에 앞으로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크립토 금융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꿈이 열매 맺는 날도 오리라 믿습니다.

모색과 발산의 1막을 마치고 집중과 수렴의 2막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부 동료들과의 작별이 있었습니다. 매우 슬프고 미안하고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과거 10년을 했던 위자드웍스와 그 이전의 회사 경험으로 돌아보건데 과거 동료들에게 가장 미안한건 중간에 우리가 헤어져서가 아니라 끝내 존경받는 회사를 만들지 못해서입니다.

내가 어느 위대한 회사의 초기 멤버였다는,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헤어진 동료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보답입니다. 따라서 떠난 동료들에게, 그리고 함께 2막을 시작하는 소중한 멤버들에게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시간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습니다. 단지 우리가 치열하게 노력했다가 아니라, 그래서 성공시켰다는 결과를 꼭 같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때로 사장이 냉정해지거나 화목함을 깨야하는 때도 있습니다. 회사 운영이라는 것이 해보니까 그렇습니다. 저도 모두가 즐거운 일 하게 놔두고, 못하면 잘하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언제나 웃으며 지내고 싶지만 그러다간 아무도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각자 왔던 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끝까지 가서 마지막 장을 넘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간절해야 하고 사장만큼, 때로 그 이상으로 독해져야 합니다.

이제 막 2년간의 1막을 마치고 다시 새로운 멤버들과 일부 집중된 사업으로 2막을 시작하는 체인파트너스는, 앞으로 보다 똑똑하게 일할 것이고 더 포용적이 되어 전체 블록체인 회사들과 함께 일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많게는 130명의 사람들이 2년간 진척시켜 놓은 일을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블록체인 업계 최초로 EU 가입국 몰타(Malta)로부터 최상위 디지털 자산 취급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올들어 필리핀 중앙은행(BSP)로부터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 인가를 받았습니다. 100개 이상의 기업이 평균 1년 넘게 줄서서 받는 인가를 우리는 딱 3개월만에 받았습니다. 아직 공개하지 못하지만 더 큰 준비들도 하나씩 차근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체인파트너스 2막의 목표는 가장 많은 국가에서 법정화폐와 암호화폐를 합법적으로 취급하는 ‘크립토 금융 전문 다국적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크립토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어쩌면 우리나라 핀테크 업체로는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더 큰 글로벌 금융 회사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미래의 돈은 모두 디지털 화폐가 되리라 확신하고 있고,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는 한국의 어떤 금융 회사보다 먼저 준비된 회사가 될테니 말입니다.

조만간 우리가 그리고 있는 2막의 자세한 계획을 소개하고, 보다 많은 분들이 체인파트너스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 개인적으로도 올해 사업 20주년을 맞습니다. 회사를 지키기 위해 항상 이를 악물고 일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회사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이따금 실수를 하고 고객과 커뮤니티로부터 호되게 혼도 납니다.

작년에 성급하게 발표한 이오스 타워를 짓겠다는 계획이나, 데이빗 거래소 오픈이 여러 차례 연기된 일은 큰 실수이자 잘못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계획을 말할 때 보다 신중하게 하고, 계획한 것은 기한 내 지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폴라리스 블록체인 개발을 종료한 일로 실망한 분들도 계십니다. 그건 우리가 아무도 안쓸 블록체인을 하나 더 만들어서 괜히 토큰 세일이나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장에 블록체인이 너무 많고, 대부분의 블록체인이 실제 트랙젝션도 없는 현실을 볼 때 그 결정은 우리가 더 정직해지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도전을 하는 이상 실수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잘못한 것은 빠르게 시인하고 사과드리겠습니다. 이 업계에 들어와 만 2년을 일해보니 정말 많은 오해를 받고 다양한 종류의 근거없는 악담에 시달립니다.

그래도 정직하게 하려고 노력한 끝에 미력하나마 20년을 살아 남았습니다. 비록 매우 터프한 업계에 몸담고 있지만 앞으로도 정직함과 성실함을 추구하겠습니다. 누구보다 오래하는건 자신있고 이미 해봤기 때문에 체인파트너스도 5년, 10년, 20년 당연히 간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온 시간을 함께해 주시고 도와주신 모든 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표철민 올림

한 해 정리와 2019년 블록체인/크립토 시장 전망

글이라는 것은 자꾸 쓰지 않으면 쓰는 방법을 잊는듯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무릅쓰고 씁니다. 올 한 해는 어떻게 지난지 모를 한 해였습니다. 연말엔 의례 ‘다사다난했던 한 해’라는 표현을 쓰지만 올해는 정말 그랬습니다. 크립토 업계에 있던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올해 좋았던 일을 꼽자면 체인파트너스 동료들을 만난 일입니다. 이건 무엇보다 중요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다들 기억하고 있습니다. 안좋게 헤어진 사람도 있지만 분명히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락을 해야만 했는데 너무 바빠 못한 사람, 답장을 못한 사람, 대화하다가 끊긴 사람도 있습니다.

올 한해 제게 여러모로 서운했던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한동안 하루 서너시간 자면서 일만 했습니다. 운동은 상상도 못하고 제대로 된 점심 식사는 2주에 한 번 정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았으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제가 부족해 올해 여러모로 많은 실망도 끼쳤습니다. 몇가지 생각해 보면 이오스 타워가 생각납니다. EOS BP로 출마해 국내외 후보들과 과도한 선거전을 벌이며 BP가 되면 이오스 노드를 유치한 건물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특정 국가 후보들의 담합으로 국내 모든 후보가 BP에서 밀렸고, 전체 블록체인 시장의 거품이 빠지며 EOS 가격도 크게 하락했습니다. 코인 가격이 떨어지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블록체인의 성격상 생태계 지속성이 위협 받는 것이 이 세계이므로, 우리가 이오스 타워를 올리는 꿈은 지금으로서는 다소 멀어졌습니다.

이 점 많은 분들께 실망을 끼치게 되어 송구합니다. 하지만 이오스 타워를 제외한 모든 공약은 약속대로 착실히 이행해 가고 있습니다. EOSscan을 대체하는 EOS 이용 종합 포털인 EOShub가 출시되었고, 예고했던 NOVA 월렛이 출시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탈중앙 거래소인 EOSDAQ이 출시되었고, Tokenext도 나왔습니다.

다소 늦었지만 DAYBIT이 EOS 기축 거래를 시작하였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EOS 교육 프로그램인 We.D, 글로벌 DApp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인 DIA,  EOSYS 블로그를 통한 EOS 교육 자료 제작도 계속 했습니다.

EOS 생태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자원 임대 도구인 Chintai는 최근 BP들의 투표로 전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5명의 관리인을 선출했습니다. 여기에 당당히 EOSYS가 선출되어 Chintai 운영과 Chaintai에 모인 EOS 토큰을 활용한 대리 투표권을 행사하는 대리인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단지 토큰 많은 사람이 좌우하는 EOS BP 선거가 아니라 전세계의 인정받는 BP들이 모여 그간의 노력과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선출한 관리인이기에 더욱 값진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 블록체인계의 경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껏 이렇게 큰 블록체인의 코어 그룹이 된 국내 회사는 없었습니다.

EOSYS는 EOS를 만든 Block.one의 부사장이었던 Thomas Cox가 좌장으로 있는 EOS Work Proposal Working Group에도 참여해 매년 새로 발행되는 토큰의 운영 방침도 함께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러 의미로 한국의 EOSYS는 EOS 블록체인 운영의 핵심에 들어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모두 지난 한 해 여러분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이오스 타워는 현재로서는 너무 송구합니다마는 우리는 약속을 지키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여건이 되는 날이 오면, 다시 꿈꾸겠습니다.

EOS는 완벽한 마지막 블록체인은 아니지만 충분히 훌륭한 블록체인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빠른 블록체인이고 나머지 모든 블록체인 DApp이 일으키는 Transaction을 합한 것보다 많은 Transaction이 EOS 위에서 동작하고 있습니다.

즉 당분간 적수가 없는 블록체인이고 겨우 올해 6월에 나온만큼 앞으로 더욱 발전해 갈 것입니다. EOSYS는 그런 블록체인의 인사이더고, EOS가 커지는 혜택을 EOSYS가 그대로 받을 것입니다.

EOS는 애초에 오픈소스를 이용한 변형(Hard fork)을 권장한 체인입니다. 그러나 아직 변형이 많이 안나왔습니다. 우리는 애초부터 EOS를 이용해 기업이 쓰기 편하게 변형한 블록체인을 만들겠다고 예고해 왔습니다. 이름은 POLARIS입니다. 올 3월부터 꾸준히 조금씩 발전을 시켜왔고 최근 Position Paper 2.2 버전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어떤 블록체인을 구상하고 있는지 자세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EOS 블록체인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기업이 쓰기 편한 부분을 강화한 일종의 EOS 산업용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하나씩 베일을 벗고 좋은 파트너들과 진짜 블록체인이 필요한 곳에 사용해 갈 것입니다.

요즘은 블록체인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을 도입했다고 연일 보도자료를 냅니다. 기왕이면 우리는 아주 적게 쓰여도 POLARIS가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곳에만 쓰이기를 바랍니다. 블록체인이 필요하지 않은 곳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것은, 불도저 몰고 레이싱 경주를 나가는 것만큼이나 비용비효율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DAYBIT 거래소는 올해 두 차례의 연기 끝에 10월에 출시되었습니다. 몇 가지 실수가 있었습니다. 먼저 모 해외 거래소와의 제휴건이 있습니다.

해당 제휴는 실제 추진중이었으나 저의 부주의로 논의 과정 중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이후 딜이 지지부진해 깨졌고 기사를 보고 묻는 사람이 많아지자 해당 거래소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데이빗과의 제휴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기꾼에게 엄정 대응하겠다”는 다소 강한 표현을 써서 마치 논의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해당 기사가 나간데 대해 직접 만나서도 사과했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갑자기 그런 트윗을 올린건 여전히 깊이 유감스러운 행동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연기가 두 차례나 된 것은 모두 제 불찰이었습니다. 변명하자면 중간에 원화 수신 문제가 있었고 리워드 기능을 추가하게 되면서 각각 한달과 두달 일정의 설계 및 개발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온전히 저의 잘못입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세번째는 오픈 이후의 일입니다. 리워드 프로그램을 위해 설계된 데이 토큰 가격이 상장 직후 크게 올랐다 떨어진 일입니다. 이로 인해 여러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중에는 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 토큰 가격이 오르는 것은 저희에게도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가격을 우리 또는 우리와 연결된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띄우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 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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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24일 현재 제 데이 토큰 보유량. 평단 $0.122에 201,475개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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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매도 거래 내역입니다. 데이 토큰은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습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일 안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해 거래소가 가져가는 수수료의 고정 비율을 낮췄고, 그간의 수수료 수입을 이용해 장내 고지 후 꾸준히 데이 토큰을 바이백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데이 토큰이 낮은 가격대를 횡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부러 펌프 앤 덤프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제 두달 넘게 운영하며 데이 토큰의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장기적으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데이빗 거래소가 본연의 건강한 거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개선은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 왔습니다.

그런 배움을 앞으로 서비스에 하나씩 적용해 갈 것입니다. 우리가 오픈 후 순차적으로 EOS를 상장하고 기축 마켓을 도입해온 것처럼, 이같은 배움을 서비스에 적용하는 기간도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은 전혀 없는 데이 토큰의 기능도 하나씩 붙여갈 것입니다.

체인파트너스와 그 인접 생태계 전반에 걸쳐 데이 토큰은 단일 화폐이자 상품권처럼 실제 서비스를 구입하고 이용하는 용도로 널리 통용되도록 차근히 만들어 갈 것입니다.

얼마전 주주 중 한 사람으로부터 ‘앞으로 시장에 아무 약속도 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었습니다. 그간 우리가 너무 많은 약속을 해왔기 때문에 제 때 출시가 안되면 사람들이 실망하게 된다고, 그냥 시장에 기대를 주지 말고 때 되면 내라는 말이었습니다. 약속한 대부분의 일을 실제로 하고도 욕먹은 걸 생각하면 많이 공감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새로운 약속을 거의 안합니다. 여느 언론 인터뷰에서도 주의하고 있고 제 약속의 산실이었던 이 블로그도 두 달 가량 아무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를 만들어서는 안되겠지만 최소한 이 사람이, 이 회사가 무슨 생각을 하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때때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처럼 계획과 비전을 빼면 아직 실체가 없는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씁니다. 하지만 글의 끝까지, 또 앞으로의 글과 인터뷰에서도 큰 방향은 제시하되 구체적인 내용과 일정은 약속하지 않으려 합니다.

데이 토큰 가격이 떨어지면서 저는 제가 최대한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것과는 무관하게 살면서 가장 많은 욕을 들어먹었습니다. 올 여름께 국제적인 다단계 조직이 500억 어치에 해당하는 이더를 줄테니 데이 토큰을 통째로 팔라고 접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제안을 뿌리치고 새벽까지 일하다 집 앞의 24시간 분식집에 들러 만두 라면을 먹었습니다. 스스로 깨끗하게 살고 있다는 뿌듯함에 그 이야기를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나 데이 토큰 가격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그 사진을 캡처해 저를 ‘표만두’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500억 거절했다고 스스로 우쭐해 놓고 정작 상장 후 가격 방어 하나 못해주다니 한심해 보였을 겁니다. 당시 제가 올린 글을 보고 “표철민은 맨날 똑같다. ‘나는 이렇게 잘하려 노력하는데 당신들은 왜 그리 몰라주느냐’고 우는 소리 한다”는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자기 연민과 자기애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를 돌아보고 앞으로 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토큰 가격의 향방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데이빗의 미래를 믿기 때문에 데이 토큰을 계속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 특정 거래소가 마켓 메이킹 봇을 일정기간 사내에서 돌려 검찰에 기소되었다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적어도 데이빗은 그런 일은 없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곳입니다.

나중에 누군가 들어와 자료를 다 열어 보아도 우리 스스로 자신있고 떳떳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따금 실수하는게 있을지 몰라도 거래소 운영에 있어서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하기 위해 정말 애쓰고 있습니다.

내년도 전망

내년도 전망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블록체인을 다루는 미디어가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전통 미디어도 블록체인을 다루고 블록체인만 다루는 신생 매체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참으로 반가운 일입니다.

새해를 맞아 몇몇 언론사에서 내년 시장 전망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연말이라 몇군데 인터뷰도 했는데요. 활자화되는 과정에서 제 발언의 취지가 더러 생략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러 오해가 생길거 같아 부득이 직접 써서 본래 뜻을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많아 글이 길지만 이 글을 읽으면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이해되실 겁니다. 누구를 서운하게 하려고 제 시간 들여 이렇게 글 쓰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배운 것들, 제가 블록체인 시장의 여러 정보가 모이는 곳에서 겪고 느끼게 된 것들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최대한 고민하고 나누어서 한국의 블록체인 업계가 각기 따로 시행착오하는 시간을 줄이고, 힘을 모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의 원년

내년에는 카카오 계열의 Klaytn과 라인 계열의 LINK, 그리고 두나무 계열의 Luniverse, 블로코 계열의 Aergo 등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들이 속속 나옵니다. 티몬과 배달의민족 등 여러 서비스에서 사용한다고 예고한 Stable coin인 Terra도 나옵니다. 이더리움은 제휴팀이 없지만 이런 프로젝트들은 제휴팀이 있어 파트너를 설득해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회사에서 직접 DApp을 개발하거나 파트너사에 일정량의 토큰이나 현금 등 보상을 지불하고 DApp 개발을 시키기 때문에 순전히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이더리움이나 EOS 생태계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탈중앙화 블록체인 진영보다 중앙화 블록체인 진영은 이미 기존 서비스에서 확보하고 있는 유저도 많고 사용자 경험에 대한 이해도 훨씬 높습니다. 따라서 카카오나 Facebook, Baidu가 만드는 블록체인이나 DApp이 이더리움이나 EOS 기반 DApp보다 쓰기 쉬울 가능성은 거의 확실합니다.

프로토콜뿐 아니라 지갑 같은 유틸리티도 기존 인터넷 기업들이 만드는 것은 훨씬 쉬울 겁니다. 탈중앙 철학에 다소 위배되더라도 지갑 앞 단을 중앙화하면 핸드폰 번호나 Facebook, 카카오 계정으로 로그인 시킬 수 있습니다. 알아 볼 수 없는 난수로 로그인해야 할 일은 중앙화된 블록체인에서는 거의 사라질 겁니다.

또한 기존 사용자 기반이 없는 이더리움이나 EOS에 비해 자신들이 운영하던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를 유입시키기 훨씬 유리합니다. 따라서 단시간 내에 사용자수는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이 그렇지 않은 블록체인을 압도할 겁니다.

올해까지는 주로 운영의 주체가 없거나 운영의 주체도 그다지 유저를 부을 힘이 없는 블록체인들만 있었다면 내년은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겁니다. ‘이더리움 대 EOS’가 아니라 ‘탈중앙 블록체인 대 중앙화 블록체인’의 경쟁 구도를 띄게될 겁니다.

아마 중앙화 블록체인은 지역색을 강하게 띌 것으로 전망됩니다. 카카오 Klaytn은 한국에서, 라인의 LINK는 주로 일본과 대만 등 LINE 메신저가 강한 지역에서, 그리고 Baidu나 Alibaba가 만든다는 블록체인은 당연히 중국에서 사용자가 가장 많을 겁니다.

Facebook도 블록체인팀이 2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내년에는 속속 준비중인 것들을 내놓으리라 생각합니다. Whatsapp에 Stable coin을 개발해 넣어 인도의 송금 시장을 노린다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200명이 Stable coin 하나만 만들고 있을리 없기 때문에 Facebook과 Instagram, 그리고 Whatsapp 메신저를 가진 Facebook 그룹은 블록체인 대중화에 가장 큰 다국적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은 회사입니다.

Google과 Apple은 아직 조용히 있지만 블록체인 세상이 와도 사용자 접점은 모바일과 데스크탑에서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양대 모바일 플랫폼을 쥔 두 회사는 급할게 없습니다. 언젠가 Google이 모바일 Chrome 브라우저에 암호화폐 지갑 플러그인을 내장하면(당연히 그렇게 될 겁니다) Google은 단숨에 세계 1위 암호화폐 지갑 서비스 회사가 됩니다.

Apple 역시 이미 있는 iWallet에 암호화폐 지갑만 추가하면 전세계 수억명의 사용자를 금방 흡수할 수 있습니다. 유저를 잔뜩 쥐고 있는 중앙화된 주체들은 사실 블록체인 혁명에 그리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탈중앙 진영이 만든건 오픈소스로 모두 공짜로 가져다 쓸 수 있지만 탈중앙 진영은 중앙화 진영이 가진 사용자가 없습니다.

물론 탈중앙 진영이 영원히 불리하기만 한건 아닙니다. 결국 블록체인은 인터넷이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를 제공하며 사용자를 얻을 겁니다. 그것은 주로 기술적인 것보다는 정치적인 탄압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터넷에 있고 싶지만 있을 수 없는 서비스들이 블록체인으로 와서 사용자를 얻을 겁니다. 불법 영화 스트리밍, 온라인 도박, 마약 거래, 무기 밀매, 매춘, 포르노, 온갖 핍박받는 소수자 또는 음성적 커뮤니티가 그런 예입니다.

이런 서비스들은 수요가 높지만 인터넷에서는 서비스되기 나날이 어려워지는 것들입니다. 추적 기술이 발달하며 점점 두려움이 커가지만 수요는 오늘도 내일도 사라지지 않을 것들입니다.

아무래도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들은 이런 서비스들의 처리에 골머리를 안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 생태계로 들어오는게 고맙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일이 될 겁니다. 반대로 음성적인 서비스들 입장에서도 만약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정보를 블록체인 운영 주체에게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면 온전히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느끼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진짜 블록체인이 필요한 서비스들은 운영의 주체가 없는 이더리움이나 EOS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일시적으로 양질의 DApp을 만들고 유명한 회사를 파트너로 참여시키고 기존 사용자를 참여시키는 일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중앙화된 주체들이 잘할 겁니다. 허나 시간이 한 두 해 더 지나고 나면 결국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서비스들은 대부분 운영의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에 둥지를 틀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안전하고 지역색 없이 보다 국제적인 블록체인이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이더리움이 성능 문제도 있고 해서 많은 DApp들이 갈 길을 잃었습니다. 그 사이를 EOS가 치고 들어왔고 내년에 나올 여러 블록체인들이 각자의 영역을 넓힐 겁니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고작 2014년 12월에 나왔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겨우 말 배우는 수준입니다. 사람들은 당장 이더리움이 뛰어 다니거나 박사 학위를 따기를 바랍니다. 고작 3년 된 실험적 소프트웨어에게 말입니다.

내후년쯤 뒤에는 이더리움이 번듯하게 말도 하고 학교도 다닐 겁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DApp은 충분히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커뮤니티도 세계적으로 가장 큽니다. EOS는 물론이고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은 이더리움이 아직 제대로 등판하지 못한 2년을 골든 타임으로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전세계 블록체인 진영에서 고른 지지를 얻고 있는(언제나 IT의 바로미터가 되는 북미에서 특히 인기가 많은) 이더리움이 시장을 평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계획경제 식으로 단시간에 발전시키는건 자본을 투여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만 전세계 커뮤니티의 고른 지지와 개발 참여는 자본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돈 주고 DApp 개발 시킬 수 있지만 돈이 무한정 있는게 아니면 언젠가는 멈추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블록체인이 끝내 살아남기 위해 가장 힘써야 하는건 견고한 글로벌 커뮤니티입니다.

북미는 애초부터 이더리움의 Co-founder였던 Joseph Lubin이 창업한 Consensys가 뉴욕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대적으로 이더리움의 텃밭입니다. 현재 EOS 기반 DApp 사용자는 보통 중국 4-50%, 한국 3-40%, 그리고 나머지 국가를 다 합쳐 1-20% 정도 나오는데 지역 확대는 EOS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입니다. 이를 넘지 못하면 결국 EOS도 앞으로 나올 다른 중앙화된 블록체인과 마찬가지로 특정 지역에서만 인기있는 체인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이 산업에 들어와 항상 혼란스러웠던 것이 과연 블록체인이 말하는 ‘탈중앙성’은 소수 주인공들을 위한 명분일 뿐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코인을 만드는 것은 소수고 블록체인도 만들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건 이더리움이나 EOS 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지한이나 로저버, 브룩 피어스처럼 개인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된 사람들은 이 시장이 존속하는 한 거의 지는 일이 없는 게임을 하게 될 겁니다. 대형 거래소들 역시 시장의 헤게모니를 움직이는 주체가 된지 오래입니다. 그들에게 과연 ‘탈중앙’은 어떤 의미일까요?

영화에 빗대자면, ‘블록체인 산업’은 빨간 약 먹고 매트릭스를 탈출한 사람들에게 다시 집 지어주며 재벌이 되는 아이러니한 분야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내년은 중앙화 진영이 탈중앙 진영에게 도박을 제외한 건전한 DApp의 가능성과 아름다운 사용성을 한 수 보여주어 탈중앙쪽 혁신도 자극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디밴드들끼리 모여 자유롭지만 대중성은 없는 노래를 지어 부르던 마을에 갑자기 SM과 YG가 떨어진 상황이 된 겁니다. 마을 원주민들은 혼란스럽지만, 분명 대중성을 배울 것입니다.

다시 컨텐츠가 갑이 되어 모셔가는 시대

국내외의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이 제휴팀을 가동하면 굉장히 많은 회사들이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그 속도는 아무래도 암호화폐 시장 열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만 다양한 실험이 여러 카테고리에서 일어날 겁니다. 최근에 야놀자가 두나무의 Luniverse 플랫폼 위에서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을 하겠다고 제휴를 맺은 것도 그런 예입니다.

이스라엘 체인인 Orbs는 한국까지 와서 제휴사를 찾고 있습니다. 벌써 Yes24를 비롯해 여러 기업과 지자체가 Orbs 체인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블록체인을 도입하지는 않을테니 블록체인 도입에 관심 있는 소수 기업들을 놓고 체인 간 경쟁이 치열할 겁니다. 어디랑 하기로 했다가 보다 좋은 조건으로 다시 빼앗아 오는 경우도 더러 있을 겁니다.

스마트폰 초기에 한때 앱스토어가 세계적으로 600개가 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중국에서는 일부 사설 스토어가 살아 남아 성업중이지만 이제는 Google Play와 Apple AppStore가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습니다.

이더리움이나 EOS, 그리고 앞서 열거한 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은 모두 양질의 DApp이 많이 올라와야 의미가 생기는 이른바 ‘플랫폼 블록체인’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앱스토어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아이폰 초기에 신기하고 재밌는 앱을 쓰려고 아이폰을 산 사람이 많습니다. 즉 플랫폼과 컨텐츠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앱을 쓰려고 아이폰을 사고, 아이폰을 산 김에 앱을 씁니다.

물론 블록체인은 스마트폰 같이 고객 접점이라기보다는 아마존 클라우드 같은 백엔드 인프라에 가깝기 때문에 사실 최종 사용자 입장에서는 자기가 쓰는 서비스가 백엔드에 이더리움을 썼던 Klaytn을 썼던 전혀 알 필요가 없습니다.

블록체인 플랫폼에서는 주로 DApp 개발자가 플랫폼이 주는 경제적 또는 마케팅적 인센티브, 그리고 자기가 구현하려는 서비스 기능을 가장 제대로 제공해 주는 플랫폼이 어디인지, 또한 자기 서비스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사용성을 보장할 수 있는 플랫폼인가에 따라 어느 블록체인을 선택할지 결정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초기에는 많은 블록체인의 제휴팀들이 ‘파트너사의 필요에 따라 블록체인의 기능을 추가해 주겠다’고 제안할 겁니다. 레퍼런스도 만들겸 파트너사의 DApp 개발을 아예 플랫폼이 대신해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벌써 그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장이 이렇게 되면 결국 일반인이 누구나 아는 소비재 회사나 고객을 많이 가진 회사, 또는 양질의 컨텐츠를 많이 가진 회사는 블록체인 플랫폼들에게 ‘유치 1순위’가 될 것입니다. 서로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독점’ 또는 ‘한시적 독점’ 제휴를 요구할 것이고 결국 금새 컨텐츠가 갑이 되어 블록체인을 고르는 입장이 될 겁니다.

컨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독과점 상태가 되면 헤게모니는 플랫폼이 쥐지만, 플랫폼이 난립할 때는 컨텐츠가 헤게모니를 쥡니다. 언제나 그래왔고 블록체인에서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진정한 블록체인 문제는 어디에.

지난 한 해 여러 블록체인 활용 사례가 나왔습니다. 가장 자주 언급된 것이 지역화폐일 겁니다. 지난 지방선거 후보들의 단골 공약이 지역 사회에 통용되는 코인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요. 실제 내년부터는 예산에 반영되어 아마도 활발하게 개발이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이 사업에는 스타트업부터 대기업은 물론 공기업까지 뛰어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지역화폐는 정말 블록체인 없이 못 만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역 바우처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에 포인트를 충전해 줍니다. 이건 몇년간 블록체인 기반이 아니었지만 잘 돌아갔습니다.

지금 블록체인 기반이라 이야기하는 여러 지역화폐도 실제 동작 원리는 대부분 Off-chain(블록체인에서 거래되는게 아니라 추후 비동기식으로 기록)입니다. 즉 현재의 그리고 내년에 본격화될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는 실은 마케팅 용어에 다름 아닙니다. 블록체인 없이도 중앙화해서 할 수 있고 지금도 잘하고 있으며 블록체인을 넣는다고 특별히 개선이 있는 서비스가 아닙니다.

송금은 어떨까요? 블록체인계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들은 사회적 문제가 ‘Unbanked people’ 즉, 아직 은행 계좌가 없어 돈을 주고 받지 못하는 인류가 1/3이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근처의 환전상에서 현찰로 돈을 주고 받기 위해 많게는 30%의 환전수수료를 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오히려 후진국일수록 자금 이동에 선진국 주민보다 많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아이러니를 이른바 ‘Poor tax’라 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블록체인이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여러 블록체인 기반 송금 프로젝트의 꿈입니다. 참 멋지죠. 심지어 아프리카의 ‘Unbanked people’들에게 비트코인 원장을 중계하는 위성을 쏘겠다는 블록체인 회사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우선 스마트폰이 있어야 합니다. 요새 저가형 스마트폰 많으니까 아프리카에 보급이 많이 되었다고 가정하죠. 그러면 더 이상 블록체인 기반 송금이 필요할까요? 스마트폰이 있다는 얘기는 당연히 이동통신망이 깔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냥 WeChat Pay나 Alipay로 송금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블록체인계의 주장은 ‘중앙화보다 안전하다’, ‘중앙화는 부패됐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WeChat Pay나 Alipay가 사용자의 돈을 훔쳐간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13억 중국 인구가 그토록 열성적으로 사용하지는 않겠죠. 길거리 노점상까지 받는게 WeChat Pay인데, 일대일로 전략으로 아프리카에 열심히 손을 뻗치고 있는 중국이 WeChat Pay나 Alipay를 아프리카에서 서비스하지 못하란 법이 없습니다.

Facebook이 Whatsapp 메신저에서의 송금을 위해 개발한다는 Stable coin 역시 아프리카에 스마트폰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 제공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블록체인이 해결하려는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들간의 송금 서비스는 이미 중앙화에서 잘 제공하고 있는 분야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입니다.

네트워크나 스마트폰이 필요없는 송금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들이 있어야 하는 전제로 하는 블록체인 기반 송금은 중앙화된 송금 대비 어떠한 잇점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중앙화된 송금 서비스는 자사 사용자끼리 송금 수수료도 무료입니다.

물론 현재의 은행간 국제 송금 프로토콜인 SWIFT보다는 Ripple이 개발한 xCurrent 솔루션 같은 블록체인 기반 국제송금 프로토콜이 훨씬 비용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마는 이건 기관간 거래에 쓰이는 프로토콜입니다. 개인간 송금은 여전히 중앙화쪽이 훨씬 더 많은 답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블록체인 기반 공인인증서는 ‘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20년 넘게 사용해 온 공인인증서는 그동안 안전하지 않았던 건가요? 마치 앞서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가 중앙화된 지역화폐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블록체인 기반 송금이 중앙화된 송금보다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블록체인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적용을 한 것입니다. 그랬기에 사용자는 잘 설득이 안됩니다.

내년 예산을 보니 많은 블록체인 국책 과제가 나왔습니다. 지자체도 블록체인 과제를 예산에 올렸습니다. 또 블록체인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 블록체인으로 굳이 풀 필요 없는 문제들이 ‘블록체인 기반’이라는 뭔지 굉장히 어렵고 멋져 보이는 수식어를 달고 개발될 겁니다.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 지원이 분명 도움이 되지만, 블록체인’도’ 풀 수 있는 문제 말고 블록체인’만’ 풀 수 있는 문제에 예산이 가도록 해야 국비가 낭비되지 않습니다.

일년여전 글에서 제가 언급한대로 언젠가는 블록체인이 미들맨을 없애고 직거래하는 시대를 만들어 여러 산업을 전복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앙화 집단이 바보가 아닌 한 그렇게 쉽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진짜 블록체인을 생각하는 사람과 회사는 블록체인을 마케팅 용어로 쓸 것이 아니라 전복을 꾀하는 산업에 우뚝 서있는 전통의 강자들을 물리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도박과 사행성 게임

아래는 EOS의 2018년 12월 23일 기준 실제 동작하는 인기 DApp 순위입니다. 유저수도 많고 24시간 실제 토큰이 왔다갔다한 내역은 압도적으로 도박 DApp이 많습니다. 카테고리의 빨간색이 모두 도박 DAp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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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부터 실제 DApp이 돌기 시작한 TRON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인기있는 대부분의 DApp은 도박입니다. 빨간색은 대놓고 도박이고 갈색은 사행성 DApp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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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같은 시각 이더리움의 DApp들 순위입니다. 이더리움 성능이 너무 떨어져 실시간성이 중요한 도박 DApp은 거의 없습니다. 이게 이더리움이 깨끗해서가 아니라 이더리움에 올리고자 했으나 성능이 떨어져 못올린 도박 DApp들이 상대적으로 빠른 EOS나 Tron을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도박 DApp이 없는 이더리움은 DApp별 24시간 사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EOS 대비 1/3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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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더리움 성능이 개선되면, 이더리움의 상위 DApp 순위도 빨간색이나 갈색이 대부분 채울 것입니다. 아직은 아이러니하게도 느려서 깨끗합니다.

비트코인은 DApp이 없지만 최근 24시간동안 가장 입출금이 많은 계좌 Top 25를 보면 그중 최소 10개 이상은 항상 비트코인을 베팅에 사용하는 도박 사이트들이 차지합니다. 결국 주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트랜젝션은 어김없이 온라인 도박 서비스가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데이터들을 놓고 볼 때 블록체인 킬러 DApp은 도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의 첫번째 히트작이었다면, 두번째는 온라인 도박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역화폐나 개인간 송금, P2P 음원 서비스, 농수산물 유통 등은 아직 아닙니다.

STO (증권형 토큰 발행)

이 시장의 많은 분들이 STO(Security Token Offering, 증권형 토큰 발행)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까지 10조 달러(10 Trillion dollar)가 된다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딜 가나 그 소리여서 대체 그 수치가 어디서 나온 것인가 궁금했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한 증권형 토큰 플랫폼 회사가 ‘자체 추정’한 내용이 수백개 사이트에 인용되며 마치 STO 시장이 머잖아 그렇게 되는 것처럼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회사 멤버들과 함께 전세계 STO 시장 조사 자료를 뒤졌는데, 제대로 된 추정치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STO에 대해 나온 모든 전망은 근거없는 자료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NDA(비밀유지협약)가 있어 자세히 보여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지만, 저는 몇달 전 두바이와 뉴욕의 중심지에 상업 부동산(빌딩)을 STO하는 자료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맨날 백서 수준의 ICO만 보다가 STO라는 신선함과 짓고 있는 건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저는 너무 멋진 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증권사에서 온 우리 CFO는 딱 보자마자 “절대 투자하면 안되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유는 담보가 전혀 없는, 후순위 채권을 토큰화한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생각해보니 전통 자본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이 자연스러운 상업 부동산이 STO라는 독특한 자금 조달 수단을 택했을 정도라면, 어딘가 자금 조달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았습니다. STO 초기에는 그 자금 조달 방식의 생소함으로 인해 좋은 투자 대상일수록 선택을 꺼릴 것이고(전통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쉬운데 굳이 새 방식을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마 초기 STO의 대부분은 후순위이거나 무담보, 극도로 위험한 트렌치(=채권 종류)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TO 초기에는 아무런 담보도, 지분도, 권리나 약속도 없던 ICO에 비해서는 훨씬 더 안전해 보일 것이기 때문에 그런 착시 효과로 인해(실제로는 위와 같이 극도의 위험자산일 가능성이 높지만) 판매는 성황리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제가 두바이에 신축하는 아름다운 건물의 전경에 매료된 것처럼 말이죠.

STO가 담보하는 자산이 건전하든 그렇지 않든 사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게 ‘증권’이라는 겁니다. ICO는 아무나 만들고 중개할 수 있었지만 증권은 그렇지 않습니다. 증권중개업 라이센스가 없는 회사가 STO로 나온 토큰을 팔거나, 중개하거나, 소개하거나, (지금 다단계 업자들이 하듯) 리세일 하면 이것은 증권법 위반이 됩니다.

STO는 그 기본 속성이 증권을 중개(Brokerage)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드시 중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는 증권사의 영역이지 스타트업이나 개인, 팀이나 리셀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비상장주식 분야 1등인 38커뮤니케이션이 20년이 넘도록 ‘삽니다’와 ‘팝니다’ 게시판만 열어 놓고 중간에서 중개를 못하는 이유도 바로 중개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STO에 대해서는 특히 이 업계에 있는 회사들이 과도한 기대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STO는 증권이고 증권사가 아니면 취급할 수가 없습니다. 즉 STO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물론 열리기도 쉽지 않겠지만) ICO 때처럼 아무나 막 뛰어들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물론 그림이나 부동산 등 그동안 유동화가 어려웠던 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토큰이 갖는 장점이 많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STO는 마치 2017년 초의 ICO나 2015년의 AI와 같이 환상을 갖게 하는 용어입니다. ‘2022년 10조 달러 시장’이라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가 끼면 더욱 그럴싸해집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분야임에는 틀림없지만 세가지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첫째, 토큰에 펀더멘털이 생기는 점입니다.

담보 재산이나 약속된 배당이 있기 때문에 그런게 없던 유틸리티 토큰보다 상대적으로 토큰 가치를 산정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유틸리티 토큰 때와는 차원이 다른 펀더멘털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높은 변동성을 추구하는 토큰 시장에게는 이게 약일수도, 독일수도 있습니다. 가치의 기준이 생기므로 더 이상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표시 자산의 건전성 측면입니다.

STO가 엄청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STO라는 낯선 자금 조달 방식을 선택한 투자 물건들은 대체로 전통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즉, 전통 시장의 기관들은 절대 투자하지 않을 자산이나 트렌치를 잘 모르는 개인들에게 판매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브로커들은 STO를 처음 접하는 개인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마치 작년의 ICO처럼 열심히 팔아제낄 것입니다.

셋째, 발행의 주체와 거래자 모두에게 불편함이 커지는 문제입니다.

STO를 통해 발행된 토큰은 증권사 라이센스를 가진 회사들이 브로커(중개인)로 활동하는 STO 전용 거래소를 통해서만 거래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일반적인 토큰 거래소에서 쉽게 거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엄격한 비대면 본인확인, 자금 출처 확인 등이 필요할 겁니다.

요컨대 거래 과정이 지금의 토큰 거래보다 훨씬 까다로울 겁니다. 발행회사 역시 다소 간소화되기는 하겠지만 증권신고서에 준하는 내용을 규제당국에 제출해야 할 겁니다. 이는 몹시 거추장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까지 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좋은 담보 자산일수록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할 겁니다.

STO 시장 초기에 부실 채권을 담보로 한 토큰에 투자해 돈을 날린 투자자들은 금새 신중해 질 겁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점차 건전한 채권을 토큰화한 것에 투자하기를 원할 것이고 시장은 합리적이 될 것입니다.

그럼 전통 시장보다 자금 조달이 쉽거나 빠르지도 않고, 오히려 갖출 것은 다 갖춰야 하는 STO를 발행사들이 굳이 선호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양질의 채권이 토큰화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듭니다. 토큰 거래가가 전통 시장 대비 터무니없이 높게 형성되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토큰화할 이유가 없을 겁니다.

그것이 STO입니다. STO는 마치 블록체인과 같습니다. 블록체인을 붙이면 뭐든 좋아 보이고 새로워 보이는 것과 같이, 시들해진 암호화폐에 활력을 불어 넣을 황금카드가 바로 STO로 보입니다. 그러나 결코 ICO 때의 착각과 피해를 되풀이하면 안됩니다. STO는 생각보다 쉽지 않고 초기 착시를 넘어 건전하게 대중화되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물론 많은 크립토 회사들이 증권 중개 라이센스를 이미 샀거나 땄거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STO 시장이 진짜 커진다면 이미 고객(투자자)을 가진 증권사들이 뛰어들지 않으리란 법이 없습니다.

증권사 출신인 우리 CFO가 토큰 투자 검토를 오래한 저보다 앞서 STO 물건 분석을 훨씬 빠르게 해냈듯이, STO는 전통적인 부동산이나 VC 투자에 가깝기 때문에 전통 자본 시장에 있던 사람이 훨씬 잘할 겁니다.

이에 대해 전원이 증권사 출신인 우리 리서치센터에 물어보니 증권사들은 토큰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STO가 어지간히 커지기 전까지는 건드리지 않을거라고 합니다. 그러면 STO에 대한 대략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STO 시장 초기엔 상대적으로 위험한 실물자산이나 안전한 물건이더라도 위험한 채권이 토큰화될 가능성이 높다.
  2.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2-3년간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에게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만 팔려면 중개 라이센스가 있어야 할거고 그게 없으면 STO 프로젝트의 설계부터 상장까지 전 과정을 돕는 자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3. 다만 시장이 아주 커지게 되면(아직 STO 시장이 커질지는 불확실하다. STO가 기존 증권에 준하게 발행과 거래가 까다로워지면 발행사들이 발행을 꺼릴 것이기 때문-인터넷 소액공모 제도가 10억원 이상 모집시 증권신고서 제출토록 한 이후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것처럼-이다. 유일한 기대감은 상장의 용이성인데, 시장 진입이 유틸리티 토큰 거래소보다 까다로울 것이므로 충분한 거래가 이루어질지 알 수 없다.) 발행 자문에는 전통 IB가 들어올거고 중개도 기존 증권사들이 들어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 전문성을 강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크립토 파이낸스

크립토 파이낸스의 영역에는 크게 OTC(Over the counter, 장외거래), Market Making(시장조성) 또는 Liquidity providing(유동성 공급-결국 같은 말이다-), 운용(Asset Management), 보관 및 자산관리(Custody & Treasury Management), 파생상품 개발/판매 등의 분야가 존재합니다.

운용은 모두가 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 국내에는 뚜렷한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주로 지인들 위주의 50인 이하 사모로 암암리에 하는 곳들이 있습니다. (법의 모호함으로 인해 정식으로 사모펀드 등록을 한 곳은 없고 그냥 암호화폐로 수신해 운용합니다.) 다만 홍콩 증권당국은 크립토 펀드 운영을 제도권 안에서 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11/1 발표했습니다.

보관 및 자산관리 분야는 기관이 보유한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대신 맡아 보관해줄뿐 아니라 무위험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해 약간의 수익을 내거나 가격변동 노출 위험으로부터 벗어날(Hedging) 수 있게 해줍니다. 이 시장에 세계적인 자산운용의 공룡인 Fidelity가 뛰어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다만 암호화폐 보관의 거추장스러움으로 인해 많은 기관들이 현물보다는 선물이나 ETF를 담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Custody 시장이 생기긴 생기겠으나 고객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파생상품 개발/판매는 비교적 최신에 등장한 분야인데 비트코인 가격에 기반한 장외 파생상품을 설계해 판매하는 해외 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주로 옵션 상품을 설계해 팝니다. 암호화폐 ETF를 White-labeling하여 ETF 상장을 추진하는 회사에 공급하는 비즈니스를 하겠다는 하우스도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ETF 운영을 OEM으로 하청주는 구조입니다.

크립토 파이낸스는 기존 금융의 영역을 빼닮아가고 있는데 재밌는건 이 시장에 뛰어드는 기관들과 선수들(주로 증권사 출신인)이 실제 블록체인에는 거의 1도 관심이 없다는 점입니다. 얼마전 싱가폴 최대 크립토 파이낸스 하우스에서 일하는 트레이더를 만났는데 “하루 12시간 내내 크립토를 들여다보고 있지만 요즘 블록체인쪽 이슈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지낸다”고 했습니다.

물론 운용역은 그러면 안되겠지만 이 친구는 OTC쪽이라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실제 크립토 파이낸스에 뛰어든 금융 선수들에게 이 자산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고 전통 자산과 상관관계가 떨어지는 신종 자산군일뿐입니다. 자산의 종류만 바뀌었을뿐 일하는 방법은 똑같습니다.

변동성이 큰만큼 수익률이 높을땐 아주 높지만 아직 전통 시장에서 많은 사람이 안들어갔기 때문에 효율화되지 않은 시장입니다. 따라서 아직 할게 많고 먹을게 많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자극합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막상 들어와서 보면 쉽지는 않습니다. 밖에서 볼 땐 다 할 수 있을거 같지만 들어와 보면 밖에서는 모르던 고충을 알게 되니까요.)

요즘 시장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국내 하우스들도 OTC에 뛰어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해외 하우스들도 국내 OTC 시장에 눈독 들이고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OTC를 깨끗하게 하는 것과 위험하게 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한국의 크립토 OTC 시장은 이미 4-5년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 위험하게 하는 것이었죠. 현금 박치기도 하고 수표도 끊어주었습니다. 거래 상대방이 누구인지, 자금 출처는 어디인지 묻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크립토를 장외에서 가져야하는 사람은 돈 세탁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나 국내 자산을 해외로 유출하려는 사람들이 그간 국내 OTC의 주요 고객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체인파트너스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깨끗한 OTC를 해보고자 올 여름 OTC 데스크를 설치했습니다.

그간 우리가 저런 현찰 박치기 같은 요청을 거절한 건만 해도 수천억은 족히 될 것입니다. 반면 양쪽 거래 상대방이 본인 확인과 자금 출처 서류를 제출하는 깨끗한 거래 건수는 아직 국내는 극히 미미한 수준입니다.

아직 우리나라는 크립토를 사는 기관도 별로 없을뿐더러 관심이 생겼다 해도 나라의 입장이 부정적이어서 구입을 망설입니다. ICO를 한 곳이 많아야 OTC 수요도 커지는데(모금한 토큰을 장외에서 현금화해야 하기 때문에), ICO를 국가가 막아 놓았기 때문에 그쪽 거래 수요도 대단히 적고요.

하물며 장외 파생같은 상품은 크립토를 상시 취급하는 기관(법인고객)이 많아야 수요가 생기는데 우리나라 크립토 파이낸스 하우스들이 건드리기에는 수요가 없습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결국 나라의 부정적인 입장이 ICO와 거래소를 넘어 이렇듯 최신의 배후산업에까지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일일 거래량이 많은 미국이나 홍콩, 싱가폴의 OTC 하우스가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고 국내 OTC 하우스들의 경쟁력은 떨어질 겁니다. (심지어 해외 OTC 하우스들이 최근 국내 은행에 계좌를 열어 속속 원화 결제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말 국내 하우스를 이용해 OTC 거래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OTC는 시작일 뿐이고 MM/LP 비즈니스, 운용, 보관, 파생 등 모든 분야에 있어 경험이 적은 국내 회사들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어질 겁니다. 금융 허브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과 서울에 ‘크립토 금융 샌드박스’를 도입해 이런 분야들을 2년 정도 유예기간을 두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금감원이 주기적인 감독 권한을 갖고 KYC/AML 준수만 철저히 해도 대부분의 우려를 잠재울 수 있을 겁니다.

크립토 시장이 아직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제한적일 겁니다. 이미 음성적으로 4-5년간 국내에서 행해져 온 비트코인 OTC 거래를 양성화해 돈세탁을 어렵게 하고 세원을 확보하는 순기능도 있을 겁니다.

암호화폐가 원자재에 이어 수십년만에 신종 금융자산으로 인정받을 것은 여러 증거로 인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그 자산의 종주국이 될 기회가 아직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불씨가 꺼져가는데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금융맨들이 크립토 파이낸스를 하는 하우스를 설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판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글로벌 시장에 회사가 아주 많지는 않기에 아직은 기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오래 남아있지는 않을 겁니다.

블록체인 경쟁력 갈수록 잃어갈 한국

이 시장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암호화폐 거래소가 벌어들인 막대한 수수료를 다시 블록체인 개발에 투자하거나 펀드를 조성해 지갑이나 보안 등 관련 생태계에 투자합니다. 즉 암호화폐 거래소가 이 시장의 왕입니다. 해외에서는 Binance나 Huobi, OKEX가 똑같이 그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업비트나 빗썸이 그렇게 합니다.

그런 환경이 바람직하든 아니든간에 거래소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OS BP로 Bitfinex와 Huobi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국내 거래소인 코인원도 코인원 노드라는 이름으로 블록체인 노드 운영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거래소를 중심으로 파생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려면 본업의 경쟁력이 중요합니다. 거래소로 시작한 집들은 계속 거래소의 동력이 꺼지지 않아야 다른 사업들을 추진할 추력이 붙습니다. 허나 국내 거래소들은 공격적으로 해외로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해외 거래소들이 그토록 한국 시장에 쉽게 진출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심지어 최근 중국계 거래소인 OKEX는 한국에서 행사를 열고 비트코인 기반 파생상품(Perpetual Swap)을 출시한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자회사에서는 출시 안하지만 한국인도 OKEX에 가입해 거래 가능)

국내 거래소들은 나라에서 신용 공여를 통한 마진거래를 막아 놓았지만 해외 거래소들은 국내에서 우습게 다들 마진거래를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파생상품을 팔겠다고 국내에서 행사를 열다니요.

비트코인 기반 파생상품은 무턱대고 만들 경우 국내에서 ‘도박장 개설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있어 국내 업계는 아무도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파생시장을 못만드는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라 말을 듣기 위해 안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해외 거래소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국내에서 상품을 알립니다. 이래도 되는걸까요?

국내 거래소들이 아무 것도 못하고 손발 묶여있는 사이 해외 거래소들은 한국 들어와 하고 싶은거 다 합니다. 그럼 결국 투자자들은 마진 거래 있고 파생 거래 있는 해외 거래소를 택할 겁니다. 국내 거래소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하루가 다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거래소가 무너지면 배후 산업에 투자할 재원이 떨어지므로 블록체인 산업 투자도 줄어듭니다. 그러면 거래소 경쟁력 약화는 전체 블록체인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집니다. 지난 일년간 국내 블록체인 산업 전반에 투자한 주체가 누구인지 조금만 들여다보면 답이 나옵니다. 민간 VC입니까? 아닙니다. 대부분이 거래소와 대형 블록체인 회사들입니다.

국내 거래소도 마진과 파생 거래를 할 수 있게 허용해 주거나 아니면 해외 거래소가 국내에서 마진이나 파생 거래 제공하는 것을 막아야만 합니다. 역차별도 이런 역차별이 있나요? 국내 업체들에게도 자유를 줄게 아니라면 Warning.or.kr 에서 마진이나 파생 거래 기능이 있는 해외 거래소 접속을 모두 차단해야 합니다.

국내 거래소들이 이런 상황에서도 이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은 어쩌면 대견한 일이 아닐까요? 물론 돈을 잘 벌어 기득권 때문에 못떠나는 것이겠지만 이런 모호한 규제 속에서 손발이 잘린 채 사업해야 한다면 신생 거래소는 처음부터 외국에서 시작하는게 나을 것입니다.

애국심이 가장 중요한 사업의 동기 중 하나인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느끼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요. 손 놓고 있다가 나중에 완벽하게 준비 마친 중국계 거래소들에게 우리나라 거래소 라이센스도 하나씩 다 내어줄건가요? 절대로 안될 말입니다.

가격은 상승 저항 있겠지만 여전히 높은 변동성 갖고 움직일 것

작년 말과 올 한해의 학습으로 현재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앞으로 보다 현명하게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이상 ICO를 했다고 해서 모은 자금을 다 토큰으로만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OTC를 통해 현금화 해놓거나 해외 파생시장에서 헤징이라도 해놓을 것입니다.

투자자들 역시 작년처럼 영원히 올라갈 것으로 기대하고 안팔거나 올해처럼 반대로 끝없이 버티는 일은 적어도 한 번 겪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줄어들 겁니다.

또한 작년까지는 선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의 투자 전략이 Long only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선물 시장이 커져 가격이 떨어질 때 이익을 내는 투자자도 생겨 났습니다. 따라서 과거 비트코인이 2만불 갈 때와는 달리 떨어지는 쪽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으므로 이들이 가격 상승의 저항 세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과는 다르게 여러 나라에서 법정화폐가 암호화폐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법인 모두 신규 자금의 시장 유입이 어렵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제도화가 끝나기까지 적어도 2년은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동안은 아무래도 작년같은 시장 전반의 급격한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긍정적인 측면

여러 나라에서 제도화가 검토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제도화가 되면 법정화폐 수신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동작할 것이고, 건전한 거래 환경이 점차 정착해 갈 것입니다.

아직은 인기있는 DApp이 도박이나 사행성 게임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제는 상상이나 백서만이 아니라 지표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된 점은 작년보다는 상황이 개선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지표도 아직은 인터넷 유저에 비교하면 극도로 초라한 수준이지만(이더리움에서 가장 인기있는 DApp의 24시간 사용자 수가 전세계에서 천명이 안되는 현실) 그래도 새해부터는 중앙화 블록체인들의 활약과 함께 블록체인 서비스 사용자가 분명 비약적으로 증가해 가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앞서 유저와 브랜드를 앞세워 중앙화 블록체인이 지역색을 강하게 띄며 내년의 대세가 될 것이라 점쳤지만 기업들의 한계는 뭉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서로 자기가 최고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힘을 모을 바에는 자기만의 것을 하나 새로 만든다가 기본적으로 기업들이 하는 생각입니다.

그게 중앙화 블록체인의 한계이자 탈중앙 블록체인의 전략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추적의 어려움과 탈지역성, 그리고 특정 기업이나 인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는 건강한 거버넌스가 다소 느리더라도 탈중앙 블록체인이 이 세상에서 끝내 승리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요컨대 이 긴 글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다음과 같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운영의 주체가 있는 블록체인이 블록체인 대중화를 앞당기겠지만, 블록체인이 꼭 필요한 문제는 대체로 운영의 주체가 없는 블록체인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된다.

나가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체인파트너스와 데이빗이오시스폴라리스토크노미아비하인드리서치센터, CP OTC는 내년에도 급변하는 시장에 잘 대응하며 좋은 파트너들과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시장의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불어 체인파트너스는 새해 본격적으로 다양한 소비자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 사내기업가(EIR, Entreprenuer in Residence) 겸 PO(Product Owner)/PM(Project Manager) 포지션을 신규 채용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추진하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분야 신사업을 한 사람이 하나씩 맡아 이끌어가는 소사장 역할을 맡게 됩니다. 전략적 사고와 강인한 실행력을 가진 인재들을 기다립니다. 특히 EIR/PO/PM 포지션은 이 분야 최상위 정보를 접하며 저와 함께 토론하고 사업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블록체인과 크립토가 좋은건 아직 글로벌 기업이 될 기회가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힘을 모아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회사를 함께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분야는 아직 누구도 걸은 적 없기 때문에 종종 실수가 있습니다. 이제 여기서 일 시작한지 일년 반이 넘었는데 원채 잡음도 많고 소문도, 오해도 참 많습니다. 예전엔 그런게 싫었는데 이제는 그냥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년에도 실수가 있을 겁니다. 실수한다는건 저희가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계속 지켜봐 주시고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그럼에도 항상 윤리적인 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길 빕니다. 새해에도 체인파트너스 멤버 일동, 한국 블록체인 산업 발전을 위해 뛴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12월 27일 표철민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