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맞지 않는 옷

내가 더 커야지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애 같은 것이 남아서 이따금씩 내 나이가 갈 법한 자리가 아닌 곳에 불려가게 되면 꼭 여지없이 흥분하거나 말도 안되는 말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내가 오래도록 노력해 쌓은 것들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일순간 모래성처럼 사라져가는 일을 더러 겪었고 또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애 같은 어설픔과 흥분이 때때로 튀어나오는걸 보면 나는 아직도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멀은 것 같다. 더 깨지고 침전하고 망가져 보아야 비로소 더 둥글둥글해지고 사람다와질 것만 같다. 아직은 어리고 미숙하다.

가마솥 끓이기

사람들은-특히 선배들은- 이거 하지마라 저거 하지마라 맨날 본질에만 집중하라 하는데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사장들이 어찌 여기저기 관심과 호기심이 없을 수 있겠나. 호기심 없으면 아마 젊어서 창업 안했겠지. 나도 대충 계산하여 인터뷰 백번쯤, 강의 삼백번쯤, 모임 오백번쯤, 책 한권 쓰고 심사위원 열번, 방송 백번쯤, 무슨무슨 수상 열개쯤, 어디 자문위원 감투도 다섯개쯤, 그리고 심지어는 삼일간 짧게나마 정치면에도 오르내리고 하니 그때서야 비로소 세상에 대한 그 많은 호기심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제는 대부분 해본 것들이니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안다. 그러니 언젠가부터는 남이 시키지 않아도 본질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박단소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흔들릴 때마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생각을 다잡곤 한다. 옛날처럼 잡념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모임은 안만들고 거절은 일상이 됐다. 그러니 또한 내 일에 대한 책임과 확신도 생긴다. 예전의 내가 얼마나 타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새삼 느낀다. 다방면에 신경쓰느라 주어진 책무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면 당시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든다.

그럼에도 요즘 보면 신기하게 나랑 똑같은 전철을 밟아가는 후배들이 보이고 그들을 열심히 뜯어말리는 선배들도 보인다. 그나마 뜯어말릴 선배가 있으면 복받은 후배지만 사실 웃긴건 그리 말려 앉혀놔봐야 결국 욕구불만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 그 친구는 기회가 오면 더 방방 뜨려고만 할 것이다. 자기가 직접 겪고 나서 스스로 깨닫는게 가장 완전한 배움이 되고 그 어떤 미련도 남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 싶다. 사실 선배들도 다 직접 겪고 뼈저리게 느낀 것들을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자기도 해보고 싶은데 아직 많은 경험을 해보지 못한 후배들은 선배들의 말을 도통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낀 세대가 되어나니 그 둘의 애증과 같은 감정이 모두 이해가 되어 낄낄 웃음이 난다. 그래서 요즘엔 위에서 열거한 많은 활동을 하나씩 시도하며 천천히 나랑 비슷한-선배들이 말리는- 전철을 밟아 가려고 애쓰는 후배들을 보면 별로 말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지켜보고 싶다. 점차 잘하게 되면 스스로 무엇이라도 되는 양 우쭐해질 감정의 기복도 예상하고, 또 몇 년쯤 뒤에 있을 사람들의 무관심과 그로 인한 상실감에 대해서도 자뭇 우려한다. 그런 일을 겪고나면 그 후배들도 진짜 본질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다 해보고 더 이상 다른 분야가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제품에 집중할 때의 마음가짐은 그 누구보다 깔끔하다. 그러니 선배들도 천천히 가마솥 끓인다 생각하고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은 어떨까 한다. 대부분 아마 중도에 낙오할테니 그 경험 다갖고 돌아온 후배도 아마 보통내기는 아닐 것이다.

역시나 젊어서 미완인 나에게도 호기심 아직 있다면 그간의 소중한 배움이 잊혀 사라지기 전에 좀 더 많은 글 좀 남겨놓는 것이다. 그간 밖으로 꺼내지 못한 참 많은 일들이 있는데, 언제쯤이면 그 이야기들을 오롯이 내어놓을 수 있을까? 그러고보면 여전히 나는 호기심이 많다. 다시금 말하지만 그러니 젊음 아니겠는가. 아직은 미완인, 해본 것보다 하고싶은 것, 해야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좋은 인재라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보기에 나는 열정이 넘치고 열심히 하고 똑똑하고 생각이 많고 배운게 많고 경험이 많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고 같이 일하는 타인들이 이야기하기에 당신은 함께 일하기에 참 좋은 사람이라 할 때 비로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행여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거나 말이나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거나 주눅들게 한다면 그 사람은 앞서 열거한 장점들을 다 갖추었다 하여도 결국 좋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큰 일을 하고자 할 땐 좀 오래 걸려 답답해도 여럿이 함께 가야하기 때문에 결국 똑똑한 사람이 되기 전에 우선 좋은 사람부터 되어야 한다. 먼저 좋은 사람부터 된 사람은 처음에 좀 무능하였어도 많은 주변인들의 도움과 시간을 통해 점차 똑똑해지지만 먼저 똑똑이부터 된 사람은 사람들의 불편과 이를 통한 자신감의 좌절 과정을 거치며 점차 좋은 사람으로 개선되어 간다. 아무래도 후자가 쓴맛을 보며 쓸만해진다는 점에서 전자보다는 덜 해피할 수 밖에 없다. 전자든 후자든 시간을 통해 우리는 더 똑똑해지고 더 쓸만해지지만 아무래도 함께 일하기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 먼저 된 후에 똑똑함과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자기 자신과, 함께하는 주위 사람들, 그리고 전체 조직의 행복을 위해서 훨씬 바람직한 방향이라 하겠다.

조급함을 없애는 것

어릴 때는 참 조급했다. 오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나는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무언가 안되면 걱정되고 조바심나고 결국 그래서 더욱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스트레스주고 그랬다. 그러다보면 결국 직원들이 못견디고 나갔다. 내가 자른 적은 거의 없어도 직원들이 스스로 나간 적은 참 많았다. 결국 다 나의 불찰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상당 부분 조급함에서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보다 조금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가며 사실 배경 지식이 더 늘었다던가 실행력이 더 빨라졌다던가 하는 것은 크게 느낄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변화는 이제 조급함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왜 그리 급했는지. 아마 항상 가장 어리고 가장 빠르게 남들보다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계속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이 잘 안풀릴 때 스트레스의 강도는 남들보다 훨씬 더 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약간은 옆도 보고 때론 뒤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컨트롤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약간은 그리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확신을 갖고 행한 일이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펼쳐져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좌절감이 밀려오는데 그 감정도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인생을 살다보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를테면 기분좋게 집을 나섰는데 난데없이 추돌사고를 당했다거나, 갑자기 가족이 아파 병 간호를 해야 한다거나, 예측하지 못한 일로 소송을 당했다거나, 거절할 수 없는 지인들이 어려운 일을 부탁해 왔다거나 등등-이 항상 일어난다. 이들은 또한 바쁜 삶 속에서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예상할 수 없는 규모로 터진다는 점에서 기대한 일이 안되었을 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고통스럽다. 나 역시 그런 일종의 일상 속 매몰비용이 급작스레 항상 발생하는 것에 대단한 스틀레스와 짜증을 받았는데 이것의 근원은 조바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빨리 성취해야 하는 조바심, 설정한 시간안에 계획한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야 하는 조바심들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런 조바심을 안받기 위해 내 인생의 매몰비용 Limit을 정하기 시작했는데 재작년 말에 새해를 맞이하며 설정한 Limit은 1년의 15%다. 15% 안에서는 어떠한 예상할 수 없는 공적, 사적 사건들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머지 85%를 잘 살기위해 당연히 감수하고 거쳐야하는 통과의례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일년중에 계획하며 살 수 있는 날이 365일이 아니라 315일쯤 된다고 애초에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일년을 시작하니 어떤 예상치못한 일들이 와도 그냥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처리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Limit 안에서라면 별로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나에게 일년 중 50일 정도는 원래 남의 일을 돕고, 내가 예전에 잘못한 일을 바로잡고, 긴 인생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금은 알 수 없는 버퍼들을 만드는 시간으로 쓰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와도 별로 놀랍지도 조바심이 가중되지도 않는다. 그러고나니 이제 짜증이 좀 줄었고 스트레스도 낮아졌다. 그러다보니 주위 사람들도 덜 괴롭히고 더 오래 함께 걸음을 맞추며 때론 빠르게 또 때론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대부분 오래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모든 것이 조바심을 버린 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고 힘이 빠졌다거나 추진력이 낮아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어깨에 항상 힘들어가 있고 항상 당장 계획한대로 이루지 못하면 큰일나는 것 같은 불안초조한 마음을 좀 더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랄까.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항상 힘 들어간채로 사는 것보다 성과면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고-오히려 더 낫고- 삶의 질 차원에서도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도 나에게는 여러 예상하지 못한 공적, 사적 이슈들이 항상 터져 나오지만 그래도 15%의 의식적 버퍼를 마련해 두었기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급함을 조금씩 더 내려놓을 수 있다면 현재 하고있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오늘을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느끼며 살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