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어가기 전에 크립토 시장 주요 이슈에 대한 생각을 남겨 놓기 위해 시간을 쓴다. 목표는 두시간 넘기지 않기. 시작!
NFT와 예쁜 쓰레기
이 유행의 끝엔 대부분의 NFT는 물릴 것 같다. 나도 물렸다. 올해 초였나 트위터 800만 팔로워를 가진 세계적인 DJ Steve Aoki가 당시만 해도 유명인 중에서는 아주 선도적으로 발행하는 NFT를 $4,500 주고 샀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NFT를 구매했던 NiftyGateway에 오랜만에 들어가보니 누가 나에게 고작 $100에 팔라고 오퍼를 보내놓았다. 거래소 수수료를 떼면 $84.70을 받는단다. ㅎㅎ


이건 지금 팔리고 있는 대부분의 NFT들이 겪게 될 미래다. 여간해선 단언하지 않는데 이것만큼은 단언해도 될거같다. ‘일단 좋은거라니까 사고 본’ (나같은) 사람들은 지갑 속에 여러 예쁜 쓰레기를 갖게 될 것이다.
올 한 해 솔라나 블록체인 한 곳에서만 아래처럼 많은 NFT 컬렉션이 만들어졌다. 다른 블록체인 위에서도 마찬가지다. Cryptopunk나 BAYC와 같은 폭등 사례가 물론 있지만, 급조된 많은 컬렉션이 앞으로 당연히 위와 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디지털 아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이 가격에 절대 작품을 팔 수 없던 많은 무명 아티스트들이 NFT 열풍을 타고 놀라운 판매고를 기록했다. 작가 입장에선 안만들 이유가 없지만, 구매자들은 정신차려보면 작가와 마켓플레이스 좋은 일만 했다는 것을 깨닫고 재구매를 멈추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NFT 현상이 전혀 새롭거나 특별하지는 않다. 알트코인과 똑같다. 다만 5천개든 1만개든 NFT는 알트코인보다 유동성이 더 적고, 그마저도 5천개의 아이템이 각기 다 달라 가치가 동일하지 않다.
내가 팔고자 할 때 정확히 내 번호의 아이템을 사고 싶어하는 사람을 찾기는 알트코인 때보다 더 까다로울 것이고, 내가 특정 번호의 아이템을 사고자 할 때 반대로 정확히 그 아이템을 팔려는 사람도 만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알트코인 때보다 NFT에서 유동성 문제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게 우리가 스무디라는 NFT 검색엔진을 만들고 있는 이유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주로 커뮤니티 규모와 활동성이 성공 요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NFT와 디지털 아트는 살아남을 것이다. 부동산이나 시계, 널리 알려진 미술품, 음악 저작권 등 기초 자산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NFT들은 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기초 가치보다 괴리가 지나치게 커지는 오버슈팅이 발생하지 않는 한, 대체로 이같은 자산들은 (물론 유동성 문제는 비슷하게 있겠으나) 기초 가치에 수렴하는 환금성이 부여되지 않겠나 싶다. (하지만 또 정확히 그 지점-기초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을 크립토를 사는 사람들은 매력 없다고 여기기도 한다. 가치를 아무도 몰라야 상승폭에 제한이 없으므로.)
Web2.0의 추억
2006-7년에 인터넷 업계에 있던 사람들은 웹2.0을 정확히 기억할 것이다. 당시 지금처럼 새로운 인터넷이 온다는 엄청난 기대감과 열기가 있었다. 그 열기 안에서 마치 이번 잭 도시의 트윗과 유사하게 ‘웹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꾸준히 발전해 온 것일 뿐, 결코 웹이 분절적으로 2.0의 이름을 달고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웹2.0은 한낱 마케팅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폄하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때 기사를 링크하려고 살피다 2007년 영상을 찾았다. 그때 나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SBS가 매년 주최하던 서울디지털포럼이었다. 당시 웹2.0이 인터넷 업계의 가장 핫한 이슈였기에 에릭 슈미트 Google CEO를 서울로 초대한 자리에서 한 외신 기자가 웹2.0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어쩌면 영상 속 에릭 슈미트의 농담처럼 이 기자가 웹3.0의 창시자인지도 모르겠다. 무슨 말인지 궁금하시면 영상을 보시길 ㅎㅎ)
그리고 2006-7년으로부터 15년이 지난 2021-22년, 거짓말처럼 웹3.0이 왔다. 개인적으로 웹브라우저에서 이더리움 네트워크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JavaScript 패키지명이 Web3.js 여서 2017년 초 이더리움을 공부하다 굉장한 흥분과 기대, 동시에 ‘와 스스로 웹3라니 엄청 오만하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따라서 웹3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더리움을 필두로 한 블록체인 진형이 꿈꾸던 미래였는데, 이제 그것이 크립토 Hype cycle과 맞물려 실리콘밸리 전통 VC들과 Early Adoptor들의 본격적인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그게 하도 지나쳐 식사 자리며 커피 자리며 할 것 없이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너도 나도 ‘웹3, 웹3’하니까 이제 2021년판 에릭 슈미트에 해당하는 일론 머스크와 잭 도시가 마치 그때의 에릭 슈미트처럼 ‘그만 좀 하라’며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웹2.0 때처럼 모호해서 매력을 끄는 웹3
웹3는 무엇일까?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인 용어지만 일단 내가 생각하는 웹3는 서버와 같이 중앙화된 인프라 대신 퍼블릭 블록체인을 이용해 무신뢰(=사람이 아닌 코드에 의해)로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터넷 어플리케이션을 의미한다. 무신뢰로 동작해야 하니 데이터나 거래를 검증하기 위해 자원을 쓰는 이들에 대한 보상 목적으로 이제 크립토가 약방의 감초처럼 함께 따라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된 자율조직)는 웹3를 구현하기 위한 조직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 생각한다. 코드를 믿고 블록체인 기반으로 동작하면 국경 구분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운영자들의 형태도 굳이 모여서 일하거나 물리적 공간이 있을 필요가 없다. 또한 국가/대기업/포털 등이 가진 기득권을 일부 해체하려는 일종의 사회 운동과도 가깝다보니, 온라인 탄압이나 방해/검열의 가능성도 있어 DAO적 조직이 웹3 애플리케이션 운영에 더 맞는 형태라고도 느낀다.
하지만 이런 해석도 여전히 다소 추상적이다. 15년 전 참여, 공유, 개방을 이른바 ‘웹2.0 서비스’를 구성하는 3요소라 부르던 당시 개념이 추상적이었던 것처럼, 이번 웹3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래서 웹3는 참으로 간편하다. 또 하나의 비슷한 마케팅 용어인 ‘메타버스’에도 은근슬쩍 갖다 붙이기 좋고, 블록체인에도, 크립토에도, DeFi에도, 심지어는 AI나 VR/AR에도 어떤 ‘언젠가 오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지금 준비를 시작해야 나만 뒤쳐지지 않을 것 같은 중요하지만 막연한 미래’ 뜻하는 의미로 갖다 붙일 수 있다.
크립토에서는 그걸 흔히 FOMO(Fear of missing out)라 부르고, FOMO가 낀 모든 테마들은 그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게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왔음을 우리는 지난 수년간 목격해 왔다.
웹3는 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가?
내가 개인적으로 2000년도부터 2002년 사이 닷컴 도메인 등록 대행업을 했었기 때문에, 웹3가 무엇인지, 웹3 서비스들이 정확히 뭘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한가지 사례를 들어 극히 지엽적으로, 그러나 누구나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보려고 한다.
닷컴(.com) 도메인을 등록하려면 우리나라로 치면 후이즈나 아사달, 미국에서는 GoDaddy나 Namecheap 같은 회사에 평균 10달러 내외를 주고 사게 된다. 그러면 그 10달러는 이들 등록대행사의 마진 + TLD 운영사의 마진 + ICANN에 내는 세금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더 옛날에는 닷컴 도메인을 미국 정부가 인정한 한 회사가 독점으로 등록했었다. Network Solutions라는 회사였는데 그때만 해도 닷컴 도메인 하나 가격이 $70이었다. 그러던걸 ‘너무 비싸다’, ‘미국이 세계 인터넷을 독점한다’, ‘ICANN이 미국 한 회사에 과도한 이권을 준다’ 등의 이유로 지금과 같은 전세계 등록업체들의 경쟁 체제로 풀렸다. 이게 2000년도의 일이다.
1999년까지 도메인을 등록할 때는 개당 $70씩 비싸게 해야 했는데, 2000년부터 전세계 업체들의 경쟁 체제로 풀림에 따라 ICANN에 내야 하는 일종의 세금을 빼면 원가가 $6 정도로 떨어졌다. 이 원가가 수년에 한번씩 야금야금 오르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더 이상 신규 등록할 닷컴 도메인이 고갈됨에 따라 ICANN이 먹을게 없어져 이후 20년간 도메인 체제는 변태적 진화를 거듭해왔다.
1차 변화는 다국어의 도입이다. 그 결과 우리는 떡방앗간.닷컴 같은 순 한글 도메인을 등록하고, 실제 운영하는 사이트에 연결할 수 있다. 이 변화가 대략 웹2.0 시대 언저리쯤 있었다. 기억으론 2007-2009년 사이다. 벌써 옛날 일이다.
2차 변화는 수많은 신규 TLD의 도입이다. 이건 비교적 최근에 있었다. 사람들이 도메인을 등록해야 이에 비례해 세금을 뗄 수 있는 ICANN 입장에서는, 신규 TLD가 생기면 보다 많은 도메인 등록이 이루어져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다. (말이 그렇다는거지 실제 세금은 아니다. ICANN의 수익이다.)
최근 몇년 사이 .finance, .fund, .exchange, .tech 등 .com이나 .net이 아니라 온갖 이상한 새 도메인이 많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쩜(.) 뒤에 붙는 새로운 그런걸 TLD(Top-level Domain)라 부르는데, 만약 내가 .chainpartners 라는 TLD를 만들려고 하면 ICANN에 등록비와 운영비를 매년 내야 한다.
최근 몇년 사이 저런 TLD가 수백개 생겼으니 ICANN은 새로운 큰 수익원이 생긴 셈이다. 또한 ICANN은 사람들이 새 TLD 위에서 도메인을 등록할 때마다 소정의 세금을 또 떼어간다. 즉 내가 chainpartners.finance 라는 도메인을 등록하게 되면 .finance 운영사 외에 ICANN도 소액의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 이 ICANN이란 조직은 무엇이냐? 인터넷 도메인 정책을 만드는 비영리기구다. 실질적으로 미국 정부(상무부) 관할 안에 있고, 이런 사람들이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 쓰며 지금 좀 찾아보니 역시 비싸다. 새 TLD를 등록 신청하는 비용이 18만 5천달러(신청비용일 뿐, 등록이 보장되는게 아니다.), 심사를 통과해 등록된다고 하면 초기 1-2년간 비용이 200만달러, 매 분기 운영비가 2만 5천달러(연간이 아니라 분기다!), 등록된 도메인이 5만개를 넘는 순간부터 연간 모든 도메인에 대해 25센트씩을 운영비로 받아간다.
ICANN은 친절히 재무자료를 공개하고 있는데, 그렇게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모른채 지난 20년간 도메인 정책을 운영해 현재 6,900억 정도 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 수수료 매출은 400억원)

이 ICANN 이사가 되면 전세계 휴양지를 돌며 회의할 기회가 주어진다. 지금은 코로나라 원격으로 이루어지지만, 원래는 아래 표와 같이 한번 미팅 때마다 50억씩 시원하게 쓰는 쿨한 조직이다.

도메인 정책을 잘 만들고 운영해 온 ICANN을 욕하고 싶은 의도는 없고, 그냥 이런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웹3는 이제 이런걸 없애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다. Handshake는 자체 개발한 DNS 소프트웨어를 ISP(KT, SK브로드밴드, LG U+ 같은 인터넷 사업자)들이 각자의 망에 깔아주면 ICANN이 구축해 놓은 생태계를 우회해 .chulminpyo 처럼 아무나 아무 도메인이나 만들 수 있게끔 해주는 웹3 프로젝트다.
그러면 ICANN 체제를 거스르는 인터넷 접속을 가능하게 도와준 ISP에게 Handshake 재단이 HNS 토큰을 선물로 지급하겠다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HNS의 토크노믹스를 보면 상당량이 이런 파트너사들에 대한 선물로 배정되어 있는데, 미국 내 최대 도메인 사업자 중 하나인 Namecheap이 올들어 HNS 도메인을 적용하고 기존 서비스 UI 내에 자연스러운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아마도 HNS 토큰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Handshake에서 새 TLD를 등록하거나 Handshake 기반 도메인을 일반 사용자가 등록하려면 여기서도 역시 돈을 내야한다. 물론 이 돈 중 상당수는 Handshake 생태계 확대에 재투자되겠지만, 결국 HNS 토큰을 진작 왕창 사놓은 크립토 펀드나 Handshake 재단 측이 새로운 형태의 ICANN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탈중앙화가 아닌 권력의 이동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잭 도시가 웹3를 탈중앙화가 아닌, 다른 주인을 가진 집중화일 뿐이라 비판하는 이유다.)
물론 재단은 그동안 ICANN이 가졌던 권력을 해체해 소비자들이 훨씬 낮은 비용으로 도메인을 등록하고, 인터넷 도메인 정책을 민주화하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 비전이 실현 가능할 것이냐 아니냐 여부를 따지고 들기에 앞서, 이제 우리 평범한 시민들은 블록체인, 크립토, DAO, IPFS 등 여러 신기술의 조합으로 무려 22년만에 겨우 ICANN에 맞서 무엇인가 도전해볼 기회라도 얻게 되었다는 점에 바로 웹3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따지고 들어가보면 참으로 희미한 도전이다. 이제 겨우 횃불 하나 들고 핵폭탄 가진 미국 정부에 쳐들어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전을 응원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는건 지금까지는 자각이나 인식이 있어도 대체할 방법이나 기술이 없어 아예 도전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적어도 2006-7년의 웹2.0 때는 불가능한게 확실했다. 하지만 이제는 크립토와 블록체인으로 아주 희미하게나마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고, 극소수의 저항군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Next Big Thing을 찾아서.
도메인으로 예를 들었지만 웹3에서는 지난 20년간 당연한줄 알고 써왔던 인터넷의 기술적 근간들을 바꾸겠다는 시도들이 이미 활발하거나 막 시작되고 있다. 20년간 당연히 봐야했던 인터넷 광고를 선택적으로 켜고 그 보상을 얻도록 하겠다는 웹브라우저인 Brave, 브라우저 익스텐션을 깔아 놓으면 내 사이트 접속 정보를 수집(= 역시 20년간 인터넷 광고회사가 당연히 하던 일들)해 이를 원하는 사업자에 판매하도록 돕겠다는 Swash, 중앙에서 수수료를 받는 운영자 없이 데이터 주인이 소비자를 직접 만나 거래하는 데이터 마켓플레이스를 만들겠다는 Ocean Protocol과 같이 브라우저, 서버, CDN, 데이터베이스, 마켓플레이스 등 인터넷의 오랜 유산들에 도전할 새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이제 이런 것들이 하루아침에 바뀔거라는 생각은 안하는게 좋다. 비트코인이 여기까지 오는데 10여년이 걸렸고, 인터넷은 훨씬 오래 거기 있었다. 비트코인은 안쓰던 새로운 무엇인데 반해 인터넷은 매일 쓰는 것이다. 매일 쓰는 것은 오늘도 쓰고 내일도 써야하기 때문에 기존에 구축된 시스템을 바꾸기 더 어렵다. 그래서 웹3에 기대를 걸되 웹3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는 허황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이 주제로 우리 직원들과 토론한 적이 있는데 결론은 제작자로서는 실제 유저가 쓸 생각을 해야하기에 웹3를 시작하기 부담스럽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투자자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껏 크립토, 블록체인, NFT, P2E가 그랬듯 어쨌든 불이 들어오면 그리 사람과 자본이 모이기 마련이라, 당연히 초기에 들어가 유망한 것을 사모으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몰려 가치가 오르고 Exit할 기회만 생기면 되는 것이지, 본질적인 유저 규모와 지속 가능성까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제작자인 잭 도시와 투자자인 안드레센 호로위츠가 웹3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지점이 실리콘밸리 VC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웹3와 DAO 투자에 혈안이 된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기대감으로 인해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면, 지금으로서는 안될 일도 가능해지곤 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역사 속에서 그런 일들을 너무나 자주 보아왔다. 그래서 웹3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웹2.0으로 돌아가보자. 2001년 닷컴 버블이 터진 후 몇년간 거의 암흑기를 보내던 인터넷 산업을 웹2.0이 구했다. 그것이 아무리 마케팅 용어였다 한들, 그때 인터넷 업계에 있던 사람들 중 이 점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 자리에 똑똑히 있었는데 웹2.0 열풍은 몇년간 우울하게 침잠하던 인터넷 업계에 새로 드리우는 빛이었다. 그 Hype을 따라 들어온 새 자본들은 우리가 아직도 쓰고 있는 YouTube, Facebook, Instagram, 그리고 수많은 혁신적인 인터넷 서비스들을 낳았다.
웹3도 그러할 것이다. 많은 도전들이 고작 횃불이기 때문에 실패하겠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Next Big Thing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웹3를 찬양하며 올라타는 것도 맞고, 웹3를 실체없다며 욕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참여할 것이다. 얼마전 주요 인터넷 기업 대표님과 식사를 하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줄곧 웹을 다루며 살아온 웹 세대가 잘할 수 있는 날이 다시 오고 있다”고. 그렇다. 웹1.0과 웹2.0 시대를 관통하며 제작자로 살아온 사람 중 ‘왜 지금 웹3가 왔는가’ 하는 시대적 소명과 기술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웹1.0, 2.0 시대를 그저 유저로만 살아온 이들은 ‘그래서 웹3가 뭔데? 메타버스야?’ 하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것이다.)
웹2.0은 사실 웹1.0(실제 1.0 시절에는 1.0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그저 ‘웹’이었을 뿐.)의 연장이자 개선이었으므로, 기존 인터넷 업체들은 나름 신속하게 잘 적응했다. 물론 스타트업의 영역이 있었고, 그때 Facebook, Linkedin, YouTube, Instagram, Pinterest, Etsy 등등 많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기회를 잡았다. 국내도 마찬가지였고.
2010년대에 들어서자 스마트폰이 본격 보급됐다. 스타트업들을 위한 큰 공간들이 발생했지만 이때도 전통의 인터넷 강자들은 나름대로 잘 적응했다. 고객이 보는 스크린이 단지 PC 하나에서 모바일로 확장된 것일 뿐, 사용자가 익숙하게 소비해 온 컨텐츠는 여전히 인터넷 기업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에 나온 (뭔가 커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스마트 TV 역시 그랬다.
하지만 웹3는 본질적으로 웹1.0 시대에 구축된 구조가 싫다는 것이다. 바꿀 수 있는 영역부터 바꿔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저 감성도 다르고 이용하는 방식도, 소비되는 킬러 컨텐츠도 다르다. 따라서 기존 인터넷 업체들이 웹3 시대에도 스마트폰 때처럼 부드럽게 적응할 수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는 고객 접점의 확장이 아니라 기존 사업 구조의 파괴적 혁신으로 보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강하겠지만, 웹2.0 때 새로운 혁신 서비스들이 등장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듯이 전에는 없던 틈들이 생기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 일정한 틈들에 자라난 웹3 제품들이 의미가 있다면, 점차 커져 몇개는 인터넷 지형의 일부를 바꿀 것이다. 다시 15년쯤 지나 ‘웹4.0 시대 도래’ 뉴스를 보는 날에는, 지금 나오는 희미한 변화들이 이미 우리 생활 속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있을 것이다. 2005년 당시 인터넷으로 전세계인이 매일 동영상을 본다는 꿈같은 말을 하던 YouTube가 오늘날 너무 당연해진 것처럼.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미래
가벼운 글이 무척 무거워졌다. 두시간을 넘기지 않겠다는 목표는 대실패! 그래서 우리(체인파트너스)는 지난 4년간 블록체인 서비스 제작사로서의 오랜 경험과 배움을 살려 Web3 Enabler가 되고자 한다. 앞서 설명한대로 20년 이상 현장을 떠나지 않고 웹을 다뤄온 제작자들의 경험이, 연속선 상의 웹3에서도 진가를 보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웹3의 영역이 너무 넓고 추상적이다보니, 우리는 요즘 스스로를 ‘DeFi 2.0에 특화된 Web3 Enabler‘로 정의하고 연일 관련 분야 제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웹3의 경우 앞서 도메인 사례나 서버, CDN처럼 20년 이상의 레거시가 있고 전통의 강자들이 있다. 매일 쓰는 웹이다보니 바꾸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무너뜨릴 대상이 없는 Crypto-only 제품들이 먼저 유의미한 성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특히 광의로는 아무거나 다 때려 넣을 수 있는 웹3의 전 분야를 통틀어 DeFi가 가장 수학적으로 계산 가능하고, 금융업 특성상 수익 모델이 확실하며, 이미 지난 2년간 허허벌판에 도시를 짓는 수준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빨리 실현될 웹3의 큰 줄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의 1차 발전기에 DeFi는 예치/대출, 토큰 스왑, 현/선물 거래 등 CeFi 태동기에 등장한 가장 기초적인 금융 서비스들을 구현해왔다. 아직 한국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외에는 이미 전통 금융을 닮은 더 고도화된 DeFi 서비스들이 활발히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조류를 통칭해 이른바 ‘DeFi 2.0’이라 부르는데, 웹3와 마찬가지로 마케팅 용어라 치부하는 사람도 분명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뭐라고 하든 DeFi 시장은 어쨌든 지금보다 발전한다.)
이에 우리는 관련 서비스를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 만들어 갈 것이다. 우리가 2년 이상 준비해 지난주 출시한 체인저는 웹3 시대가 되면 중요해질 크립토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토콜이다. CeFi만 하는 제품, DeFi만 하는 제품이 있지만 체인저는 올해 양쪽 시장에서 각각 최적 가격을 구현했다. 내년에는 양쪽 가격을 서로에게 제공해, 고객이 어디서 거래하든 세상에서 가장 좋은 가격과 풍부한 유동성으로 크립토 거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런게 우리가 생각하는 DeFi 2.0 시대의 중요 제품들 중 하나다. DeFi 2.0 중심의 Web3 Enabler가 되려는 체인파트너스의 새로운 비전에 함께 하고자 하는 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 100명까지 갔다 5명으로 쪼그라들었던 우리 팀이 다시 조금 커져 올해 말 20명이 되었다.
한번 줄었던 팀이라 멤버들을 다시 모을 때 처음 팀을 꾸릴 때보다도 곱절로 힘들었다. 잡플래닛에 남겨진 떠난 이들의 부정적인 리뷰나 여러 관점의 평판들을 안고 좋은 인재를 모으기란 백지 상태일 때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오늘 하려는 일의 비전에 공감하는 블록체인 업계의 소중한 인재들이 어렵게 하나둘 다시 모였다.
참으로 힘든 지난 2-3년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정말 배운게 많다. 오히려 잘될 때, 가진게 많을 때보다 더 감사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한번 어려움을 겪고 뚫고 올라온 회사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시장 앞에 한없이 겸손해질 수 밖에 없을듯 하다. 어려움을 뚫고 올라가는 기간동안 우리를 도와준 정말 많은 이들이 있다. 이제 겨우 다시 출발점에 선 것 뿐이지만 그분들 아니었다면 이런 날은 다시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언젠가 그분들께 여러분 덕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분 한 분 찾아가 꼭 드리고 싶다.
내년에는 우리가 DeFi 2.0 프로토콜을 중심으로 Web3 DAO에 투자하는 투자사를 미국에 설립한다. 무모한 꿈이지만 앞으로 10년은 그게 마케팅 용어든 아니든 Web3 시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기 때문이다.
체인파트너스는 이미 지난 2018년 한국 크립토 회사로는 선도적으로 미국 법인을 설립해 현지 네트웍을 발전시켜 왔다. 그 네트웍을 다시 살려 훌륭한 리서치/투자 팀을 미국에 셋업하고 있다.
이 회사는 신속한 투자 의사결정과 크립토를 통한 직접 투자를 위해 VC가 아니라 체인파트너스의 자회사인 일반 법인으로 세워질 예정이다. 새해에 시작하는 이 회사에 대한 투자(=즉 Web3에 투자하는 펀드에 대한 출자)에 관심있는 기업이나 자산가들의 문의도 기다린다. (web3@chain.partners)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 메타버스
메타버스 이야기를 듣다가 과거 싸이월드 미니라이프에 대해 써놓았던 글이 떠올랐다. 본질적으로 메타버스에서 유저들이 뭘할까? 친구 등록하고 만나서 대화하고 떠들고 놀고 일하고 정도가 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처음 나온게 아니라 1990년대에도 있었고 2000년대에도 있었고 2010년대에도 있었다. 그때마다 한 시대를 반짝 풍미했던 서비스들이 있었다.
진짜 대중화가 되느냐는 사람들이 이걸 정말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느냐인 것 같다. 그때는 특별히 못해서 망했고, 지금은 특별히 잘해서 되고는 결코 아닌 것 같다. 그저 모든 인터넷 서비스들이 다 때가 있다. 지금의 메타버스가 특별히 그때와 달라졌을까? 오큘러스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사봤는데 그냥 매번 기술의 진일보 정도였다. 여전히 메타버스는 10년 전, 20년 전과 동일하게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기술은 당장은 사라진다. 그리고 때가 될 때 다시 돌아온다.
게더타운을 멤버들과 잠깐 재미있게 쓰다가 금세 흥미들을 잃었다. 슬랙이나 줌으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에 굳이 오프라인 감성을 넣어, 이도 저도 아니게 만들었다는 대화가 오갔다. 메타버스도 그런게 아닌가 싶다. 중요한건 내용이지 형식이 아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을 그럴듯하게 온라인상에 구현해 놓은 메타버스는 꼭 게더타운 같은 느낌이다.
이미 우리가 카톡과 슬랙, 유튜브나 인스타로 왠만한 커뮤니케이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시대에, 굳이 없어도 될 오프라인처럼 생긴 형식을 어색하게 뒤집어쓴 가상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 내용이 강화되면 당연히 좋은데, 내용은 그대로인 채로(즉 인간의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나 업무 능력이 대단히 향상되는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억지로 3D 공간에 아바타를 띄워 놓고 친구나 동료를 만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용이 그대로인 형식의 과잉이 내가 요즘 범람하는 메타버스들을 보고 경험하며 느끼는 실망감이다.
차라리 게임이면 메타버스가 아니라 그냥 ‘게임’이라고 말하기에 솔직하다. 하지만 단언코 메타버스가 게임보다 재미없다.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 현상을(이들 역시 공교롭게 모두 게임이다) 보고 이를 메타버스 트렌드로 해석한 것이지, 주객이 전도되면 그 메타버스에는 필시 제작자들의 캐릭터만 인당 100평씩 차지하며 허공을 거닐게 될 것이다.
아마 많은 메타버스 제작자들은 이점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트렌드에 올라타야하는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어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내가 웹3의 기회와 위험을 소개한 것처럼 메타버스도 목적(내용)과 수단(형식)이 뒤바뀌어서는 웹2.0 시대의 메타버스였던 세컨드라이프나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한때 북적이던) 싸이월드 미니라이프의 전철을 밟을 것이다.
왜 리니지는 살아 남았으나 미니라이프는 잊혀졌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고, 그때의 답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게임은 게임이니까 재밌어서 하는거지만, 왜 써야하는지 스스로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메타버스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역시나 외교적 마무리를 해야겠다. 메타버스도 NFT나 웹3처럼 역시 아직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누군가는 현실 세계에 대한 단순 오마쥬나 카피를 넘어, 더 나은 재미나 보다 깊은(Rich) 커뮤니케이션을 달성해 스윗 스팟을 찾을 것이다. 그 과정에는 늘 그렇듯 거품과 Hype도 왕창 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뭐든지 내일 세상이 바뀔거라 맹신하지 말되 지금 모습만을 보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관심이 모이고 자꾸 회자되는 쪽으로, 어쨌든 세상은 나아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