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블록체인 사업들에서 배운 것들

우리가 여러 블록체인 사업을 4년간 하며 느낀 것 중 아직 공유한 적 없던 이야기들을 잊기 전에 간단히 정리해 본다. 한시간이 목표. (엄청 대충 휘갈겨서 한시간 반이 딱 걸림.)

# 토크노미아

토크노미아(Tokenomia)라는 이름의 블록체인 컨설팅 사업이 있었다. 2017년에 기획해 2018년에 시작했다. 15개 정도 프로젝트들을 백서 쓰는 것부터 자금 조달, 상장, 커뮤니티 빌딩 등을 체계적으로 도와주었다. 당시로나 지금의 관점으로 보나 서비스가 아주 전문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컨설팅, 은행 출신 인재들이 프로젝트에 붙어 필요한 Advisor 소개부터 밋업 개최, 프로젝트에 맞는 해외 컨퍼런스 참가까지 모든걸 도왔다. 그런데 이걸 몇년 하고 깨달은건 이런 서비스 조직은 항상 고객과 서로 기대수준이 다르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10가지를 잘해도 고객은 한두가지 아쉬운 것 때문에 비용 내는 것을 아까워했다. 그래서 우리는 돈을 받는 에이전시가 아니라 돈을 넣은 투자사가 되면서 오히려 이런 서비스 중 한두가지라도 제공하면 고객이 훨씬 더 만족한다는걸 깨달았다. 우리가 진작 작은 펀드 하나를 만들어 투자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도왔더라면 훨씬 더 만족도가 높았고 수익성도 높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사업은 2019년 말 철수했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비즈니스라 생각한다. 다만 돈이 있는 펀드가 돈을 넣어주면서 크고 작은 소개나 백서를 봐주는 정도의 (전통 VC는 하지 못하는) 도움을 준다면 우리가 돈을 받을 때보다 훨씬 더 좋은 딜에 참여할 기회가 많으리라 생각한다. 그때 우리와 미팅을 먼저하고도 대기업의 ICO 딜 자문은 다른 펀드에 빼앗기기 일쑤였는데, 돌아보면 그 회사는 자문료를 청구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투자해주면서 도움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우리가 다음 턴에서는 작게라도 펀드를 만들어 투자를 시작하려는 이유다. 도울 수 있는 다른 부분들은 이미 해보기도 했고 가지고도 있으니.

# 이오시스

2017년 당시 우리 태생부터가 EOSscan.io 라는 웹서비스를 만들어 당시 이더리움의 경쟁자가 되리라던 EOS 커뮤니티의 국제적인 관심을 받으며 시작된 회사라서 EOSYS라는 EOS 블록체인 엑셀러레이터를 설립했었다. 이더리움이 아무것도 없을 때부터 옆에서 지갑과 노드 등 이것저것 만들어주며 함께 성장한 Consensys라는 회사를 벤치마크해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함께 성장하기를 꾀했던 사업이었다. 2017-2018 사이 2년간 우리는 EOS 지갑(NOVA), EOS 블록 익스플로러, 개발자 교육, 각종 EOS 교육 자료 제작(지금도 당시 자료가 Medium에 남아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시길), P2E 블록체인 게임(2019년에 이미 2종의 타이틀을 출시했었다), EOS 해커톤, 국내외 밋업, 노드운영자 선거 출마 및 정책 입안 활동(EOS 블록체인 처음 출범 당시 세계 15위의 운영자로 당선) 등 한 블록체인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거의 모든 제반 엑셀러레이팅 활동을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활발히 진행했었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EOS 블록체인 헌법 제정 관련 논의에 아시아 대표로 참가해 발제하기도 했다. 이런 국제적인 블록체인 운영 경험을 가장 빨리, 그것도 가장 깊이 핵심 멤버로 했던 경험은 나에게나 우리 멤버들에게나, 회사에게나 아주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사실 이런 경험을 업계 전체로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있는데 2019년 크립토 겨울을 맞으며 우리 코가 석자라 경험을 나누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물론 그런 여유는 없지만 언젠가는 이런 우리의 경험을 나누거나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EOS 블록체인의 노드 운영자들이 담합하고 부패하며 서로 매표 행위를 하는 과정까지 낱낱이 지켜보았다. 블록체인 운영 정책이나 DAO 의사결정 매커니즘을 어떻게 설계하느냐, 개발사가 DAO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서 전세계 커뮤니티가 주목하던 훌륭한 블록체인이 그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은걸 베팅했기에 너무 슬프고 마음아픈 과정이었지만, 일찍이 한국 블록체인 업계 어디서도 겪지 못했던 국제적인 경험이었기에 이렇게 개인적인 배움이자 기억으로 사장되고 마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도 한다. 잘 해보려는 우리 팀과 다른 국내 팀, 전세계 커뮤니티의 훌륭한 리더들과 개발자들이 있었는데 EOS를 잘 되게 해보려 했던 DAO 멤버들과 토큰을 일찍 대량으로 구입한 고래들, 그리고 개발사(Block.one) 사이에 이해관계가 너무 첨예하게 갈려 도저히 의견 일치가 되지 못했다. 누구보다 많은걸 베팅했기에 누구보다 많은 손실을 입고 우리는 더 있다가는 회사가 날아갈 판이어서, 눈물을 머금고 2019년에 철수했다. 그나마 우리는 뒤늦게나마 현실을 깨닫고 철수라도 해서 회사는 지켰지만, 아직 거기 남아 훨씬 큰 기회비용을 떠안은 커뮤니티의 동료들도 있다. 다른 블록체인과 달리 EOS는 토큰 하나당 복수의 리더를 뽑도록 허용한 것이 결국 진짜 커뮤니티를 위해 일하는 리더가 아니라 단지 매표를 잘하는 리더에게 베니핏이 몰리도록 해 진짜 일하는 리더들은 모두 떠나는 치명적 결과를 낳았다.

# 폴라리스

당시 EOS 소프트웨어를 포크해 메인넷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사내에 있었다. 베어 마켓이 오고 사업을 줄이게 됨에 따라 그 프로젝트가 중단되었는데, 그 팀이 그대로 떠나 훗날 다른 블록체인을 위한 이오시스 같은(그 블록체인에서 필요한 유틸리티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 블록체인은 지금 시총이 10위권 이내고, 그들이 만든 유틸리티는 이더리움의 Etherscan처럼 해당 블록체인의 킬러앱이 다수 되었다. 우리가 이루려던 일들은 회사가 어려울 때 체인파트너스의 유산을 가지고 나간 여러 팀들에 의해 다소 실현되었다. 참으로 웃긴 사업의 역설이다. 아무리 열심히 하고 좋은 인재를 모아 잘 준비한다 한들 중요한건 타이밍이다. 타이밍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 나는 아무리 로켓 쏘는 속도로 성장하는 산업에서 일하더라도 비용을 통제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 사이클 플레이

투자사가 아닌 제작사는 제품을 직접 만들어 알리고 파는 것까지 해야하니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 마케터 등등 멤버가 서너배는 더 필요하다. 따라서 베어 마켓을 버티기 제작사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베어 마켓을 뚫고 올라가는 과정에서 사이클에 극단적으로 좌우되는 블록체인 산업만큼 아웃소싱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곳도 없다는걸 깨달았다. 우리는 지금 분야별 협력사가 많은 점이 나름의 경쟁력이라 생각한다. 일부러 그리된게 아니라 적은 인원으로 뭔가 다시 만들기 위해서는 아웃소싱이 생존의 도구였다. 지금은 오히려 그 점이 본사 규모를 제작사임에도 다른 사업을 할 때에 비해 현저히 적게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앞으로 큰 자본 조달을 하든 수익을 내든 그 점은 유지할 것이다. 블록체인 산업이 정말 겸손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잘해서 뭔가 남들보다 잘되고, 뭘 특별히 잘 못해서 안되는 것은 실상 거의 없다는 점이다. 오직 사이클만 있는 산업이고, 그 사이클 플레이를 얼마나 잘하느냐(떨어졌을 때 준비하며 사모아 두고, 올랐을 때는 나중에 다시 떨어질 때 사모을 총알을 장전하는) 하는 스스로와의 싸움이지 다른 이들과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혼자 뗏목 하나 띄우고 파도 올 때마다 파도 타기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파도를 내가 만들었다거나 내가 예상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주의해야 할 오만함이다. 그런건 없고 그냥 운이다. 운도 물론 실력이지만 운이 나빴다고 해서 특별히 실력이 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요즘은 생각한다. 계속 하다보면 파도를 만나는 날도 있는 것일텐데 실력없다고 파도타기를 안해버리면 영영 다음 파도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크립토와 블록체인은 이제 시작이라 앞으로도 파도가 계속 올 것은 확실하니, 우리는 계속 작고 도전하는 기민한 제작사로서 다음 파도를 잘 준비하고 있으면 될 것이다. 우리가 타던 뗏목을 이어받아 엉뚱한 팀들이 바다로 나갔듯, 앞으로도 그런 파도는 계속 올 것이니 슬프고 한스러워도 훌훌 털고 과거의 일들은 그만 다 잊고 다시 홀연히 다음 파도를 탈 준비나 계속 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탈 준비를 하고 있으면 분명히 그날이 온다. 도전자들 우리 모두 절대 포기하지 말자.

# 코인덕

2017-2018년 당시 우리는 코인덕이라는 코인 결제 사업을 한국에서는 또 아주 일찌감치 진행했다. 우리회사에서 가장 어렸던 20대 열기넘치는 팀이 직접 발품을 팔며 서울과 수도권의 가맹점을 1천개 모았다. 9시 뉴스에도 나오고 평창 올림픽 근처 가맹점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가맹점을 유치해 Forbes에도 소개됐다. 삼성 C-lab Outside에 선정돼 삼성 블록체인 월렛의 첫 파트너사 중 하나가 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제 결제액이 제로에 가까워 사업을 접어야 했다. 당시 팀과 나는 여러가지를 배웠지만 결제사업은 그런 식으로(직접 가맹점을 모으며) 하는게 아니라는 배움이 가장 컸다. 앞으로 다시 한다면(이미 우리는 체인저로 추후 규제 환경이 좋아지면 크립토 결제 사업도 한다고 백서에서 밝힌 바 있다) 이미 가맹점을 잔뜩 모아 놓은 PG사나 VAN사와의 제휴로 풀 것이다. 그런 점에선 그 팀도 나도 참으로 어리고 몰랐고 용감했다. 코인 결제는 수요도 전혀 없었다. 면세점, 카지노, 백화점, 성형외과 등 외국인 관광객이 크립토를 가지고 들어와 결제할 수 있다고들 보통 크립토 결제를 하겠다는 업체들은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실제 2년간 현장에서 해본 데이터는 처참했다. 이론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 결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따금씩 크립토로 한국 중고차 등에서 깡을 하려는 외국인들이 있는데, 대체로 KYC를 못해 위험한 거래자들 뿐이다. 앞으로 코인 결제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가격 변동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 코인을 가지고 실제 리테일 결제에 써서 커피 한잔을 사먹는 사람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스테이블코인과 이미 대중화된 범용 포인트(OK캐시백, L포인트, 문화상품권, 네이버 포인트 등 전국민이 아는 것) 사이의 환전 정도를 고민하는게 좋을 것이다. 앞서 배움대로 우리가 가맹점을 모으는게 아니라 이미 대중적으로 쓰이는 포인트와의 환전만 열려도 크립토 결제 가맹점이 확 열리는 셈이니 크립토의 환금성이라는 원래 의도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이것도 체인저 백서의 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코인덕은 못했지만 그 배움으로 우리는 몇년이 지나 다시 제대로 도전할 것이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지금의 USDT 같은게 아니라 원화 기반의 앞으로 나올, 아직은 시장에 없는 무언가)과 범용 포인트 간의 환전 정도의 접근 외에 BTC, ETH 같은 크립토로 커피를 먹는 시대는 가능은 하더라도 그냥 딱 그 정도(‘가능하다’)일 뿐, 진짜 생활 속에서 대중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은 그런게 아니므로.

# 노바월렛

노바월렛은 우리가 EOS 기반으로 개발했던 모바일 지갑이다. 나중에 이더리움과 클레이튼도 지원하며 한때 노바를 통해 관리되는 자산이 2019년 당시 3천억 정도 되었다. 이 지갑을 만들기 전 우리가 회의할 때 Custody형으로 할까 Non-custody형으로 할까 고민하다 Dapp 이용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해 Non-custody형으로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글로벌 사업을 계속 지향해 왔기에, 계정이 필요없는 Non-custody 지갑이 해외로 나가기 더 용이하다고 생각했다. Dapp 이용이 가능한 점은 큰 장점이었지만 그때는 지금처럼 DeFi가 커지기 전이라 쓸만한 Dapp이 없었다. Private key를 기록해 두는 첫 설치 과정이 초보자에게는 아무래도 진입장벽도 되었다. 좋은 제품이었지만 결국 이 사업도 2019년 말에 회사가 어려워지며 접어야 했다. 모든 사업이 아쉽지만 이 제품 역시 참으로 아쉬운 점은, 2020년에 DeFi 열풍이 불며 이들 Non-custody형 모바일 지갑들이 사용자로서나 매출로서나 폭풍 성장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1-2년도 아니고, 서비스를 접고 딱 6개월만에 시장이 살아나며 마지막 불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가슴 속에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단단히 응어리져 박혀서, 모두 다시 돌아온 불 마켓에 환희를 부르던 작년 나는 회사의 회생에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일년 내내 화가 나있었다. (지금까지도 그렇다. 아마 이 분은 평생 못잊을듯 하다.) 우리가 사업을 제대로 못찍은게 아니라, 제품을 잘 못만든 것도 아니라 오직 타이밍이었다. 타이밍도 실력이라 하면 눈물 나지만 할 말은 없다. 어쨌든 아직 그대로 가슴 속에 남아있는 이 응어리와 억울함을 원동력으로 삼아 얼른 과거의 노력들을 깨끗이 잊고, 다시 다음에 올 파도를 훌륭히 타기 위한 오늘의 준비를 다시 이어가야만 한다.

# 했던 노력을 반복하는 것

2017년 하루 평균 미팅이 10개씩 있었다. 아침에 시작해 밤 10시, 11시에 시작하는 미팅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키운 회사이고 모은 팀이었고 만든 제품인데 이제 다 사라지고 다시 또해야 한다는 점이 참으로 황망하다. 물론 우리가 정말 과거를 과감히 잊고 오직 오늘만 생각해서 작년 한해 다시 팀을 밑바닥에서부터 한명 한명 모아 체인저라는 제품을 시장에 잘 냈다. 이제 새해는 이걸 잘 추수하고, 더 디벨롭해서 정말 훌륭한 제품이자 사업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2022년의 명확한 목표다. 나는 새해 서른여덟로 여전히 젊고, 아직 가진게 없기 때문에 굉장히 헝그리하다. 성공에 대한 열망도 크고, 도와주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안팎으로 많아서 감사함에 더 일할 용기도, 동기도 가득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과거를 생각하면 아득하다. 우리가 4년 전에는 일을 열심히 안했나, 2년 전에는 나태했나, 작년에는 일을 덜했나. 어떠한 순간에도 계속 도전하고 일을 소홀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특히 작년에는 정말 부활을 위해 적은 인원이 사업 첫 해처럼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달렸던 것 같다. 그 결과 좋은 제품이 나오고 이제 밝은 새해를 맞이했지만, 어쨌든 도전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일은 정말로 고통이 수반되는 일이다. 타이밍이든 뭐든 어떤 이유로운 간에 실패하게 되면 어제까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던 사업은 오늘부터는 싹 잊고 바로 다음 비전을 열심히 찾아 또 죽어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했던 노력을 똑같이 다시 하는 것. 참으로 말도 말되는 일이다. 그래도 그걸 계속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회사가 살아남아야 겨우 뭍에서 이를 갈며 다음 파도를 타볼 기회라도 다시 얻을 수 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암흑 터널을 뚫고 나와 수천억짜리가 될 사업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나는 새해부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적은 수의 사업만 유지하면서 중간에 타의에 의해 접어야 하는 일 없이 오래 운영해 개별 사업이 파도를 만날 확률을 높여보려 한다. 여러 배를 참 잘 만들었어도 바다에 띄워 놓은 기간 자체가 길지 않다 보니, 좋은 파도를 만날 확률이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그래서 자꾸 새로운 배만 만드느라 온몸 축내며 고생하는 일은 확실히 줄이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

이제는 20대처럼 밤새 신나게 제작하고, 그런 제작자로 사는 내 모습이 즐거운 그런 사람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마흔 전에는 좀 더 진중한 선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본의 아니게 하게 되며 내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끔찍한 기억이지만 다 지나고 돌아보면 배운 점도 많았던 데이빗 거래소 이야기와 같이 아직 다루지 않은 주제도 많지만, 이런 것들은 언젠가 더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또 기억할 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과거를 깨끗이 잊어야 오늘에만 집중해 회사를 살릴 수 있는 까닭에, 그 좋은 경험과 노력들을 모두 사장시켰다. 참으로 업계 전체에 도움이 안되는 일이라 일부러라도 시간을 쪼개 날 것 같은 이런 글이라도 남겨 놓는다. 업계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