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토 7년 회고를 시작하며

나는 요새 사람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부끄러움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글도 매우 뜸해졌다. 나를 돌아보면 요즘은 거의 아무에게도, 어떠한 마음 속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 같다.

한 두 해쯤 전부터 크립토 또는 웹3 산업에서 겪었던 일들을 글로 적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 글이 책으로라도 엮이게 되면 나도 한번 정리하고 가고, 앞으로 이 업계에 들어올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 시작을 못하다 또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리고는 우리 회사가 올해 이름을 바꾸고, 웹3만 하다 이제 AI를 하게 되면서 점차 하루에 논의하는 일의 상당분이 AI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6-7년 전에 겪었던, 또는 가깝게는 2-3년 전에 겪었던 웹3에서의 소중한 경험들이 점차 잊혀짐을 느낀다. 그것을 복기할 필요는 나에게도 필요하고, 분명 도움될 다른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세상이 나에게 적지 않은 자원을 모아 주고 이 업계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한번 해보라고 했던 사회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내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거의 하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 내가 이 업계에서 겪은 일들을 글로 연재해 보려고 한다. 물론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지만 그래도 그런 이유는 항상 있었기에, 더 늦어지면 기억이 사라지거나 미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일들을 최대한 솔직하게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엮을 고려를 하고 시작한다면 아무래도 더 정제된 글을 적으려 노력할 것이고, 아마 연대기 순이 아니라 더 재미있는 소재들 중심으로 작성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목적이 좀 바뀌어서 책은 수요가 생기면 누군가 나서서 엮을 일이고, 우선은 나는 날 것 그대로의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크립토가 주류 사회에서 거부되다 점차 받아들여지는 과정의 6-7년이었으므로, 그 안에 별 일이 다 있었고 그것을 현장의 비교적 중심에 있던 사람의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은 책 판매보다 미래를 위한 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최대한 기억나는대로 가감없이 적어보려 한다.

그것은 아마 매우 긴 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재미보다는 기록으로서 남겨 놓으려는 목적이 크기에 별로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투박한 글이 될 것이다. 그 점을 미리 고려해 주시기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블로그를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혼자 쓰는 글은 시간이 지나면 동력과 목적 의식을 잃을 것을 우려해서다. 적게나마 누군가 읽고 있음을 알면 다음 글을 쓰는데 더 용기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내가 이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을 때부터 현재까지의 과정을 앞으로 이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써보고자 한다. 최대한 많은 것을 남기고자 한다면 아마 올해 내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한가지 걱정은 현존하는 회사들과 사람들과의 일들도 언급될텐데, 그럴 때는 최대한 완곡히 작성해 보려고 한다. 사실 그런 걱정들 때문에 그동안 생각만 하고 못썼는데 내가 점차 많은 일들을 잊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잊는 것보다는 최대한 완곡히 정제해서라도 기록해 두는게 필요하다 생각한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내가 올해 마흔이 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남을 질투하고 뒷담화나(때론 앞담화도 서슴치 않고) 하는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이 잘되면 배가 많이 아픈 사람이었다. 하지만 올 들어 겪은 일련의 일들로 인해, 그리고 어쩌면 그 전부터 시작된 변화들로 인해 이제는 가까운 사람들이 잘되는 것이 곧 나에게 진정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좋은 마음 위에 좋은 사람과 좋은 삶이 깃든다는 것을 안다.

그런 이유로 올 들어 변한 것은 기쁜 마음만 이야기하고, 좋은 일만 생각하고, 항상 감사함을 표현하며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내면의 불안으로부터 촉발된 타인에 대한 미운 감정은 정말 많이 누그러졌고(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 미생이라), 이제 내 마음의 평온에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를 들어도 스스로의 삶에 대한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다.

아마 그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변했기에 과거를 돌아볼 때 내 시선은 아마 대체로 차갑거나 냉정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잘못의 화살도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돌아보기에 여간 괜찮은 때가 아닌가 한다. 다음 글부터는 그리 멀지 않지만 크립토의 시간으로는 어느새 까마득한 2016년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크립토 바다를 항해하며 기본적으로 모든 일들에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하겠다는 이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서 제목을 <크립토 7년 회고를 시작하며>로 달고 나니 또 다시 매우 낯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 나보다 이 업계에 더 오래 계셨던 선배님들이 떠올랐다. 블로코 김종환 대표님부터 고팍스 이준행 대표님, 코인플러그 어준선 대표님, 코빗의 창업자들 등. 그 분들이 회고를 한다면 당연히 나보다 더 많은 컨텐츠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이 커져서 이제 각자 회고할 수 있는 일들도, 관점도 저마다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으리라. 이 산업은 돈이 끼어있고, 그러다보니 이해관계가 첨예해 공개적으로 회고하기에 불편한 분야다. 그래서 누군가 먼저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한다.

각자 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그 일들을 공유할 수 없는 사정들도 있고, 그 사이 극심한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해 안타깝게 먼저 운명을 달리한 동료들도 꽤 있다. 그 정도의 스트레스와 불안증을 주는 분야이기에 무슨 일들이 어떤 이유들로 인해 사람을 그렇게 힘들게 만드는지도 조금이나마 남겨 놓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당연히 그런 스트레스와 불안감, 책임감으로부터 여전히 조금도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그냥 용기라 적고 싶다. 또는 공개적 참회가 될지도 모르고.

유튜브를 넘어선 숏폼 시대에 글이라는 전통 매체를 택한 것은 다시금 소비보다는 기록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쭉 흘러온 일들을 회고하다 보면 어쩌면 어디로 가야할지도 더 잘 보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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