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수 밖에 없는 제품

요즘 우리 고객이 늘면서 한가지 정말 좋은 부수적인 일이 있는데, 주위에 정말 좋은 파트너사들과 일할 기회가 그만큼 늘었다는 점이다. 같이 일해 보면 좋은 파트너사는 좋은 질문을 한다. 하는 질문만 봐도 이 회사 사람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런 좋은 질문을 하는 회사들과 함께 일하면 일이 많아도 즐겁다. 뭔가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좋은 질문을 받아 적절한 답을 주고 거기에 대해 파트너들이 각자 맡기로 한 분야의 문제를 풀어올 때가 정말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을 계속 만나고 함께 일할 기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좋은 제품으로 계속 가꾸고 키워 나가야 한다. 요컨대 나도 그들에게 좋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지난 이십여년간 항상 경쟁만을 생각해 왔다. 그러나 요즘은 정말이지 고객만을 생각한다. 오직 우리 제품을 누가 쓰지? 왜 쓰지? 이것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면 이제 우리를 의식하는 많은 후발주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리고, 또 이따금 뒷말도 흘러 전해 듣게 되는데 그런 것도 그냥 별로 옛날만큼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게 된다. 가끔 술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언짢지만, 다음날이 되면 요새는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곤 금방 잊게 된다.

어디 갔다가 어느 유명인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타인이 오해한, 굉장히 잘못 오인된 상황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억울하시지 않나’, ‘사실이 아닌데 풀어야 하지 않나’ 물었더니 ‘남들의 오해는 그냥 남들의 오해로 두어도 된다’고 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도 어릴 때는 그런 억울한 오해 상황이 생기면 밤잠을 못자고 너무 억울해했던 경험이 많았다. 그러나 남들의 오해는 남들의 오해로 ‘그냥 두기’로 마음 먹으면 사실 편해지는게 굉장히 많다. 그렇다고 모두의 오해를 사지 않는 천사로 산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또 무엇인가? 어차피 가족도 나를 100% 이해하지 못한다.

중요한건 그냥 내가 남들의 오해를 풀어줄 시간에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해 좋은 가치를 만들고 나를 오해하지 않는 다른 누군가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명분과 이유를 갖고 각자의 위치에서 매일 방황하고 고민하며 계속 눈에 보이지 않는 진일보를 계속 하고 있다. 그런 모두가 비슷한 삶의 환경에서 그냥 잠깐의 성공과 잠깐의 어려움과 잠깐의 오만함과 잠깐의 반성과 잠깐의 운과 잠깐의 좌절을 겪는 것이다. 삶은 거의 다 비슷하다.

중요한건 그냥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고, 알고, 그것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 그것 뿐이다. 그러다 운이 좋으면 잘되는거고 운이 나쁘면 안되는거다. 또 그렇다고 그걸로 영원히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반대의 경우도 영원히 잘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다보면 이따끔 정말 희귀하게 맞이하는 상태, 어떤 영역을 찍어서 하는데 그것의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늘고, 그래서 주위에 전보다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더 지혜와 노력을 보태주는 그런 상태. 그러한 상태가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길게 유지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마음이 오늘의 내 마음인듯 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있고.

지난주 혹자는 대체 글은 언제 쓰냐고 물었는데 어디 지방 영업 갔다 올라가는 기차에서, 모두가 자는 새벽에 가끔 틈도 나고 정신도 글을 먹여주어야 할 때 쓴다. 쓰면서 정리되는 것이 항상 있어서.

나는 블록체인 사업을 너무 오래함으로 인하여 투자 받기 쉽지 않은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지금 하는 사업에 있어서 나는 우리가 너무 잘할거 같다. 제품의 겉모습이야 누구나 보고 따라할 수 있지만 ‘우리가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한 문제를 풀어온 맥락을 이해해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이 켜켜이 쌓여 있기에 우리는 이 변화무쌍한 AI 판에서 그래도 6개월 뒤 정도는 어느정도 보이고, 그 적중율도 우리 고객 수와 고민의 기간에 비례해 점점 더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누구나 비슷한 시간이 필요한 꽤 정직한 영역이다.

심지어 우리가 미래를 점점 더 잘 볼 수도 있다. 스노우볼이 한번 제대로 구르기 시작하면 점점 더 좋은 파트너가 함께하게 되고, 그런 것들이 해자로 조금씩 더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파트너를 선택하고 협력하는 기준, 관점도 파트너의 유명세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객이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더 기가 막히게 풀어주기 위해 우리 혼자 할 수 없으면 파트너와 함께 해 더 빨리 잘 풀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고객은 우리 제품을 더 좋아하고 떠나지 못하게 된다. 무슨 억지 약정으로 걸어 놓는 것이 아니다. 쓸 수 밖에 없는 제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는 도구일 뿐, 고객이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를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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