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됐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안된 날의 기록

모두가 약간의 자신감과 약간의 오만함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간다. 사업비가 비정상적일 정도로 큰 프로젝트가 떠서 수요처와의 사전 조율이 전혀 없던 입찰에 처음으로 참여해 보았다. 나름 공을 많이 들여 준비하고 발표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지난 20년간 발표 마치고 나와서 ‘됐다’는 느낌이 들면 한번도 안된 적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안됐다. 정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바로 전날 우리 고객 행사에 너무 많은 고객들이 오셔서 2-3시간이나 서서 우리 차세대 제품 이야기를 열심히 경청했던 터라 더욱 충격이었다. 삶은 잠시 오만해질 수 있는 딱 그 순간에 경종을 울린다. 까딱 방심하면 제품과 사업은 언제든 바로 나락으로 갈 수 있다.

B2B하는 집들이 많이들 그러하겠지만, 고객이 많아지다보니 요구사항이 많고 제각각이어서 빌드가 분리되었다. 그러다보니 팀이 여기 갔다 저기 갔다 정신이 없어졌다. 따라서 오히려 고객이 없는 집들보다 제품 업데이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스타트업이 빠른 이유가 어쩌면 고객이 전혀 없기 때문이겠다는 생각까지도 든다 특히 B2B에서는.

아무튼 앞으로는 우리가 적은 리소스로 시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사전 조율 없는 나라장터 입찰은 이제 사업비가 커도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반드시 수의계약을 해서라도 쓰고 싶은 제품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애초에 우리가 그런 전형적인 B2B DNA도 아니고.

또한 더 이상 온프렘 프로젝트를 안하는 의사결정을 과감히 내려야 하는 시점이라고 느낀다. SaaS에 월 500만원 낼거 온프렘에는 1-20억 내지만, 그래도 길게 보면 온프렘은 그냥 생성형 AI SI 업체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렇게 해서 매출 내년에 100-200억 낸다 한들, 그것이 그래서 무슨 회사란 말인가? 그냥 작은 SI 중소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해외로 갈 수 있고, 하나의 빌드만 계속 발전시켜 갈 수 있고, 그래서 개발자들이 여러 환경을 오갈 필요 없이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업이 잘됐다면 계속 입찰해야지 생각했을테니 그런 점에서는 패자의 포기인듯도 싶어 부끄럽다. 오늘은 너무 충격적이지만 주말에 툭 털어내고 다시 다음주부터는 또 열심히 우리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모두가 약간의 자신감과 약간의 오만함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부끄러움을 안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치열한 분투를 하며 비슷하게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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