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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를 떠나 Gemini로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AI 업계에 과연 해자가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밖에 없음을 느낀다. 아니 OpenAI도 Code Red를 던지는 마당에 누구 하나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있으려나?
Google Translate에 통합된 Gemini 성능이 너무 좋아서 오늘 DeepL 구독을 해지하려고 들어갔더니 고작 3주쯤 전인 11월 26일에 ‘내가 DeepL을 안쓸리 없다’ 확신하고 1년 결제를 한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환불해 달라고 고객센터에 메일을 썼다. 과연 이곳에 지속가능한 해자라는게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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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뜻한 바대로 언제나 항상 너무 잘되기만 하면 굉장히 오만해지기 일쑤인 업계일텐데, 그만큼 돈도 모이고 모두가 여기만 바라보고. 그런데 항상 오만해지지 않도록 세상은 적절한 시점에 당연히 되어야 할 일이 안되게 만들고, 당연히 내 것인 것으로 확정적인 것이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렇지 않게 만든다.
참으로 어쩌면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만가지 일을 겪었대도 다시 또 오만해 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매우 나약한 존재라서. 그런 점에서 무언가 안되는 일은 오히려 좋다. 씁쓸하지만 지나고 보면 오히려 좋다. 잘되면 잘되서 좋고, 안되면 안되서 좋다. 무리해서 안될걸 되게 할 필요가 없다. 결국 다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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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요새 Eval이 전부라고 하는데 글쎄.. 과연 엔드 유저들이 에이전트간 성능을 비교할 수 있을까? 중요한건 내가 이미 쓰고 있는 제품이 그다지 느리지 않은 적절한 시점의 업데이트를 통해 꾸준히 시장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가이지 Eval 벤치마크 결과 12.6% 높은게 아니다.
설사 Eval 결과 50%가 높다 해도 특정 제품을 쓰기로 결정해 이미 매일 쓰고 있는 회사가 다른 제품으로 건너가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건 조금 더 좋은 에이전트가 아니라 ‘적절히’ 유용한 에이전트를 얼마나 빨리 많이 딜리버리 하는가이다.
General AI는 특정 업무 영역에서 절대 Vertical AI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한 80% 유저까지를 커버하고 나머지 20%는 포기하고 Vertial AI로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다 많은 고객에 Reach out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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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뭔가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나 회사가 뜨뜻미지근 하면 화가 났는데(왜 나를 몰라봐줘!) 이제는 그냥 때가 안맞나보다 한다. 그러고보면 과거엔 더 자존감이 낮아서 그냥 다 나를 무시한다고 귀결시켰던거 같기도 하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제 서로 때가 맞을 때 폭발하는 시너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게 아닐 때의 상황과 심정도 충분히 입장 바꿔 이해한다. 지금 아닌 사람도 나중에 때가 되어 만나기도 하고, 지금 맞는 사람도 또 상황이 바뀌면 못만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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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과 9월 두달간 쓰던 토큰을 이제는 하루에 쓴다. 문득 과거 데이터를 봤는데 정말 처참했다. 하루 1백만 토큰 이럴 때도 있었고, 1천만 토큰 이럴 때도 있었다. 그렇게 3년을 버틴 결과 유의미한 시장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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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을 해보면 절대 모든 사용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직접 CS를 하고 있는데 방금도 어떤 사용자는 RAG 성능이 안나온다(OpenAI가 처리하는 부분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음), Gemini 3.0 Pro 대답이 Gemini에서 쓰는 것보다 현저히 느리게 나온다(API가 더 붐벼서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님) 등등 하루에도 비슷한 불만족이 계속 들어온다. 물론 컴플레인 하시는 분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용자는 너무나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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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결정의 연속이다. 작은 결정들이 모여서 더 좋은 미래로 나아간다. 작은 결정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데 그러려면 계속 인생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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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객이 웍스AI를 쓰는데 이따금 굉장히 재미있는 유즈 케이스가 있다. 이 대형 해운사는 내년 1월 1일부터 전세계 선박에서 스타링크를 통해 웍스AI를 사용하기로 하고 같이 준비중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재미있고 신기하고 나중에 우리 홍보 영상 같은데에서 육해공으로 웍스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어도 참으로 재미있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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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우리를 베끼고 있다. 베끼는 몇몇 회사들이 테스트 계정을 정말 계속 만든다. 나는 정말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베낄 동안 우리가 놀고 있나? 그들이 아는데 우리가 모르는게 있을리가 있나? 우리가 고객이 더 많고 고객 니즈와 시장 변화를 더 빨리 아는데?
아예 다른걸 만들지 않으면 AI에서는 절대 먼저 해서 고객을 먼저 얻은 회사를 이길 수 없다. 거꾸로 우리도 남이 먼저 한걸 따라해서 이길 수 없다. 정확히 그 사실을 인정하고 타사와 빠르게 과감히 손잡고 같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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웍스를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모델 가격에는 거의 전혀 신경 쓰지 않는걸 본다. 그냥 지나치게 비싸지만 않은 정도면 그 다음은 무조건 성능이다. 빅테크들이 프론티어 모델에 집중할 수 밖에 없겠다 싶다.
가성비 모델은 인기가 없다. 모델 개발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경쟁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하나? 성능만으로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을 이길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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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우리 제휴사인 가드레인 aprism의 이번주 업데이트 내역이다. 내가 이런걸 보면 드는 생각이 AI가 블록체인 때처럼 금방 엄청 촘촘해지고 버티컬해질거라는 점이다. 모두가 엉성한 타임 윈도우는 딱 1-2년 뿐이다. 웍스를 베낄 시간은 2023년에는 충분히 많았는데 지금은 불가능하다.
이 가드레일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기능을 듣고 그 방향으로 꾸준히 계속 업데이트를 해나가고 있으므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아무도 쉽게 베끼지 못할 존재가 될 것이다. 베낄 엄두를 내기에도 이미 세세하게 베낄 기능이 너무 많아지는. 웍스도 지난 3년간 정말 말도 안되게 세세한 기능이 많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모든 AI 제품이 먼저 나와서 계속 업데이트 하는 애가 무조건 전문적이 된다. 따라서 아직 없는걸 해야 그나마 생존률이 올라간다. 솔직히 누가 기능 별로 없는 후발 주자 것을 쓸 것인가? 가격이 20% 싸다 해도 나는 더 기능 많고 알려진 것을 쓸 것이다.




아직 아무도 안하고 있는 영역을 빨리 들어가서 허접한 제품이라도 내고 계속 고객 요구사항 들으며 업데이트 해가야 한다. 한 1년 지나면 해자가 만들어진다. 이 바닥에서의 해자는 고객 목소리를 누가 더 많이 빨리 듣고 제품에 왕창 이미 넣었느냐다. 딱 그 정도다. 가격도 아니고 지능도 아니고(모델은 이미 공공재), 에이전트도 워크플로도 아니다. (이런건 사실 그냥 marketing term에 지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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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강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참으로 나약하다는 생각을 한다. 곧 우리 노동과 사고를 대신 맡길 머신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인간은 앞으로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나?
인류는 끝없는 편의와 영생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을 계속 추구하겠으나 그 끝은 무엇일까? 자원 고갈과 다른 행성으로의 (자원을 찾는) 탐험, 이런 것들은 AI 덕에 가속화되고 AI 덕에 악화돼 갈 것이다. 이미 우리는 양날의 검을 손에 쥐고 당연한 미래를 향해 전속력으로 뛰어가고 있다.
이 글도, 이 글도, 이 글도, 이 글도 다 좋았다. 결국 걷잡을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우리는 이미 쏘아졌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투자자가 아닌 종사자다. 종사자는 좋든 싫든 이미 쏘아진 화살 안에서 AI를 유저에게 딜리버리 할 수 밖에 없다. 더 빨리 더 유용하게. 여기서 계속 일을 할거라면 선택의 여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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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좁아 원전과 SMR을 마구 지을 수 없는 우리는 미래 전력 경쟁에서 지고 있다. 용인에 건설중인 반도체 클러스터만을 위해 원전 6기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전력 생산 비용은 그리 저렴하지도 않다.
고객들은 계속 더 좋은 최신 AI를 원할거기 때문에 전기가 저렴한 해외에서 추론/생성한 토큰을 그냥 네트워크를 타고 딜리버리 받는 것이 더 저렴할 것이다. 소버린 모델들은 상대적으로 외산보다 적은 파라미터의 모델을 충분히 가성비 좋게 개발해 국내에서 서빙한다면 data residency, 안보 등등의 요인으로 어느정도 경쟁이 가능할거 같다.
그런데 모델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름 아닌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비스를 해보면 소비자는 GPT-5.2 성능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는다. 무조건 5.2만 찾는다. 5.3이 나오든 5.4가 나오든, Gemini 3.5, 4 계속 그런 대표 브랜드의 최신 플래그십 모델만 찾을 것이다. Grok 4.1 Fast 가성비가 끝내주지만, 소비자는 아무도 Grok을 찾지 않는다.
따라서 소버린 AI도 브랜드가 되지 않으면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 선택을 받지 못하면 보다 나은 성능을 내기 위한 피드백을 얻을 기회도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일단 무조건 유명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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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에서는 우리 목표가 무엇이고,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누구를 위한 제품인가? 이 두가지 명제만 가지고 있다면 풀이 방법은 상당히 유연하게 만드는 사람의 자율에 맡기는게 좋은 회사를 만드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개발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정도도 제 각각이고, 선호하는 툴이나 사용하는 모델의 성격도 다 다르고, AI 도입으로 전에는 ‘5년은 해야 이 정도 한다’ 하는 도제식 접근법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의 연차나 경험도 서로 굉장히 다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큰 목표와 타겟, 방향성만 공유하고 어느정도 영역을 나눠 자율성을 부여하는게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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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게 이 짧은 글조차 다시 읽어보니 모순 덩어리다. 여기에 해자가 없는 것 같다고 시작했다가 먼저 시작한 것이 곧 해자란다. 글쎄.. AI는 아무도 모른다. 그냥 주어진 상황에 하루하루 전력을 다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