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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현장에 있는듯 착각이 들 정도의 글. 크립토 산업만큼은 아니지만 돈이 몰리면서 이제 Gen AI 업계도 상당히 화려해져 가는 듯 하다. 크립토와 비슷한 지점들이 포착되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도 일부 보이는데, 내년에 우리가 일하는걸 보면서 조금씩 이해되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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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파티가 밤 9시에 시작해 새벽 4시에 끝난다면, 지금은 밤 10시 반 정도’라는 이야기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무려 월스트리트 베테랑 IT 애널리스트가 중국 금융 컨퍼런스에 줌 콜로 참여해 한 강의를 중국어로 옮겨 적은 원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과정을 거쳐 나에게도 읽혔는데, (그래서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까지 읽히게 되었는데) 내용은 상당히 좋다.
나도 운 좋게 닷컴 버블 때 그 현장에 있었는데, 지금 AI는 버블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다. 역시 현장에 깊숙이 있었던 2017년의 크립토 버블, 2021년의 NFT 버블 때와 비교하면 AI는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버블은 커녕 그냥 아무 것도 아니다. 10시 반 표현, 아주 적절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생성형 AI로 창업하면 투자 받기 쉽지 않다. 예전 닷컴 버블 때는 어땠느냐면 아마 독자 여러분은 안믿으시겠지만 일단 그땐 VC가 거의 없을 때이기도 했지만 그냥 신문에 “우리 OO닷컴이고, 무슨 사업할거고, 언제까지 얼마 모아요” 하면 그냥 비상장사 주식이 막 100억씩(지금 시세로 치면 수백은 될거다) 완판되던 그런 때가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신생 닷컴인데 그냥 그 정도였다.
NFT 때도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게 미술계에서는 진짜 듣도 보도 못한 국내 무명 화가(차마 사기꾼이라고는 못하겠고)가 나무위키에 자기 그림 시세가 원래 ‘100억 정도 한다’고 고쳐 놓고(아무나 고칠 수 있는 위키니까), NFT 하나를 1억씩 한 500개 만들어 팔았다. 그 중 크립토를 전혀 모르는 내 지인 아저씨들도 어딘가에서 듣고 이미 수억씩 사서 나에게 ‘표대표, 이거 좋은거야?’ 물어온 적도 있었다. 이미 사가지고와서는. 딱 그 정도가 되어야 버블이다.
몇주 전 마포구 카페에 앉아 일하다가 어느 할아버지가 하나에 3억원인데 50%나 특별 할인 받으셨다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크립토의 채굴기를 이번에 여러개 구입하신다는 전화 통화가 저 멀리서 들려(당신만 받으셨다는 50% 특별 할인에 너무 신나 카페가 떠나가도록 통화를 하셨다) 크립토판은 ‘Business as usual’ 이구나 생각도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자주 포착되면 버블이다.
아무도 아직 AI 한다고 신문기사 내서 투자 완판되고(내가 사실 중앙일보에서 얼마 전에 99년에나 봤던 ‘세계 최고 AI 회사(라고 주장하는)’ 아무도 모르는 회사의 주식 공모 기사는 봤다. 지금도 약간의 시그널은 있다. 그래서 10시 반), 전국의 어르신들이 AI 비상장사 투자한다고 카페에서 정보 교환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아직은 버블이 아니다.
새벽 3시쯤이 되면 나는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을거 같다. 여러번 겪었기 때문에. (아, 코로나 때 빵 만개했던 어이없는 메타버스 세상도 그 중 하나였다. 물론 그건 버블까진 못갔지만. 맨날 그런 레토릭은 ‘과거엔 아니었지만 이번엔 진짜다. 이제는 기술과 유저가 무르익었다’와 함께 온다. 하지만 대부분은 역시 이번에도 아니다.)
아무튼 아직은 아니다. 회의론자의 목소리가 클 때는 버블이 아닌데, 지금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AI 버블 이야기를 하고 있으므로 아직 버블은 아니다. 어르신들이 카페에서 AI 스타트업 주식 이야기를 나누는 날이 오면 얼럿을 띄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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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가 여러번 이미 버블을 겪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은 어떤 순간이 와도 돈을 버는 회사는 괜찮다는 것이다. 실제 소비자 가치를 제공하고, 버블이 꺼져도 소비자는 여전히 우리 제품을 써야만 하는 경우는 일시적으로 회사 밸류야 주춤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 혁신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품을 멈추지 않고 조금씩 속도 조절하며 혁신을 유지해 갈 수 있으면 또 다시 사이클이 살아날 때 수혜를 입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도 제품도 완전히 끝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진짜 될만한 제품은 숨은 붙여 놓아야 한다. 다시 살릴 수 있게).
다만 이제 안될걸 붙들고 있는건지, 될건데 지금 잠시 태풍을 만났는지를 잘 판단하는 것이 베테랑 선장의 판단력일 것이다. 이건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역설적으로 죽어라 바다에 배를 쳐박은 뒤에나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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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때문에 나라 망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우리나라는 망할까? 반도체, 조선 일부 돈 버는 회사들 있으니 괜찮은데 중소기업들은 구조적으로 중국에 다 뺐기고 별로 할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인구가 작으니 내수도 작고, 결국 뭐든 수출해야 하는데 가성비로 중국이 기술까지 다 따라잡으니 이제 한국은 뭘 해야하나?
우리가 아주 작지만 앞으로 모든 기업이 AI 다 쓰게 된다는건 자명한 사실이니,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수출에 기여할 수 있는 회사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다행히 모델은 최정상급 두뇌에 즉시 접근 가능하니 계급장 떼고 해볼 수 있는게 많다.
요컨대 기술(두뇌) 걱정은 AI에서는 이제 할 필요가 전혀 없고, 그냥 누가 좋은 제작팀 모아서 큰 시장 니즈에 맞는 PMF를 빨리 잘 같다 대느냐가 전부일 것 같다. 파운더가 미국이나 중국, 인도가 아닌 제3국 사람(ex. 카자흐스탄)인데 ARR $100M씩 하는 AI 제품이 너무 많다.
내가 블록체인에 꽂혔던 이유, 계급장 떼고 Day 1부터 글로벌 비즈니스 해볼 기회가 있는 영역인거 같다. 아직 10시 반이니 할만한 제품도 많다. 물론 글로벌에서는 한국보다 더 날카로워야 승산이 있겠지만.
매일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는 점, 글로벌 경쟁이라는 점, 배울게 항상 나온다는 점, 화려함, 돈이 몰린다는 점, fat protocol 등 블록체인과 Gen AI가 비슷한 지점이 상당히 많다. 그래서 뭔가 같은 게임을 한번 더 플레이하는 느낌이다. 그때 오판했던 것들을 이번에는 잘해야지, 항상 조심해야지 그렇게 생각한다.

Fat protocol thesis 등장 8년 반이 지난 지금 보면 결국 전통적인 인터넷처럼 App이 Protocol을 이겼다. Gen AI에서도 나는 앱이 모델을 이길거라고 본다. (물론 모델 덕에 기존엔 불가능했던 앱이 가능해지는 것도 분명하다. 따라서 상보적이다.) 사람들이 일단 앱을 통해 모델을 만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에서도 사람들은 앱을 통해 프로토콜을 만났다. 좋은 앱이 있으면 그 앱이 선택한 프로토콜을 유저가 사용하게 된다.
AI도 좋은 앱이 등장하고, 알려지고, 널리 소비되고 하다 보면 ‘그 앱이 사실은 어떤 모델을 쓰더라’ 이런식으로 전개되어 갈 것이다. 처음에는 모델간에 차이가 크기 때문에 Model driven인데, 나중에는 모델간 성능이 비슷해지며 점차 App driven하게 될 것이다. 블록체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래서 App layer를 같이 만들어 갈 좋은 분들 pyo@ai3.kr 로 연락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