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2014년에 작성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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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2006-2010), tumblr(2012)를 거쳐 2012년 7월부터 WordPress로 이전하였습니다. 거의 뭐 초기부터 보시면 아주 멍청한 생각들이 이어집니다. 멍청함은 지금의 글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제쯤이면 안 멍청할 수 있을까요? 아마 영원히 멍청하다 죽을 것 같지만 그 멍청함이 또 인간을 노력하고 배우고 성장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부디 저희 멍청함을 양해해 주시고 그냥 한 청년이 그나마 쓸만해지기 위한 성장기(記)이자 분투기로 이해해 주십시오. 더군다나 저는 머리가 몹시 나빠서 불과 며칠전 기억도 잘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이 블로그는 저를 위한 공간입니다. 똑같은 실수를 하도 자주 반복하기에, 좀 적어 놓아야 나중에 같은 실수를 안할 것 같아 짬을 내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때로는 투박하고 때로는 편협한 글입니다. 불과 일 년 전에 쓴 내용과 이듬해 쓴 내용의 관점이 정반대로 바뀌기도 합니다. 여전히 제가 배우고 느끼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블로그는 스냅샷입니다. 2006년의 제가, 2010년의 제가, 그리고 2014년의 제가 다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예전에 왜 더 많은 글을 남기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위에서 적은대로 기억이 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도 많았고, 끔찍하고 무서운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대부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분명 교훈들도, 배움들도 많았을텐데 일부 체득된 것을 빼면 그냥 경험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하여 나중에 현재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는 글을 가급적 남겨 놓고자 합니다. 많은 선배들이 글 쓸 시간에 일하라고 충고하지만 일해도 배우는게 있어야 장기적인 성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배움을 위해 머리가 나쁜 저는 글을 남겨 놓습니다.
제 투박한 글이 완성본이 아닌 스냅샷이고 순간순간의 느낌이기 때문에 읽는 분들께 간혹 불편함을 드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용서를 구합니다. 앞으로도 완전무결하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항상 생각하며 주의해서 글을 쓰겠습니다.
이로써 저로서는 더 어려운 여건에 처해졌습니다. 가뜩이나 글을 못쓰는데 읽는 이들을 생각하며 글을 써야 한다니요. 아마도 점점 더 이 블로그에는 저만 보는 비밀글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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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철 민 (表澈旻, 1985.11.09 서울 생)
만드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아직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사람,
무지 느리지만 조금씩 배워가는 사람,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아 마음만은 부자.
찾는 사람이 많은 사람, 하나도 이룬 것이 없는데 왜 찾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
대부분 선배들이 가르쳐주고 좋은 동료들 잘 만나 헌신적인 도움을 받은 사람,
그래도 그 덕에 하나 둘 어깨 너머로 배우다 보니 뭘 해야할지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뭘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진 사람.
1. 시시콜콜 정리해 본 경력
주식회사 위자드웍스 대표이사 (2006~2015)
사단법인 벤처기업협회 이사 (2013~2015)
서울중앙지방법원 시민사법위원회 위원 (2013~2015)
미래부 정보통신융합 전문위원회 위원 (2014~2015)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과 석박사통합과정 (2012~)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경영학과 졸업 (2004~2012)
CyberKAIST e-벤처경영자 과정 수료 (2003)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2001~2004)
윤중중학교 졸업 (1998~2001)
신길초등학교 졸업 (1992~1998)
前,
채널IT <생방송 스마트쇼> MC (2013)
KBS 심야토론/국민대토론 패널 (2013)
(주)루비콘게임즈 대표이사 (2011~2012)
중소기업청 정책자문위원 (2010~2011)
(사)한국블로그산업협회 부회장 (2009~2010)
Marketing Intern at Accenture Ltd. (2006)
(주)다드림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2000~2003)
한국청소년벤처포럼 회장 (2002~2005)
한국청소년인터넷비지니스리그 부회장 (2001~2002)
2. 끌어모은 수상과 선정
Forbes Korea <한국의 젊은 파워 리더 30인> 선정 (2014)
서울벤처인큐베이터 SVI <창업자가 뽑은 롤모델 CEO 20인> 선정 (2013)
제12회 대한민국디지털경영혁신대상 경영자부문 특별상 수상 (2012)
동아일보 <10년 뒤 대한민국을 이끌 100인> 선정 (2012)
대한민국벤처창업대전 <지식경제부 장관상> 수상 (2011)
서울경제신문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50인> 선정 (2010)
美 BusinessWeek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 25인> 선정 (2009)
헤럴드경제 <미래를 여는 인물> 자랑스러운 경영자부문상 수상 (2008)
이데일리 전국 대학(원)생 선물시장 모의투자대회 전국 6위 수상 (2006)
특허청 발명장학생 선정 (2004/2005, 2회)
3. 만들어온 제품
안드로이드향 테마키보드 애플리케이션 (위자드웍스 2015년 作)
안드로이드/iOS향 솜노트/솜투두 2.0 (위자드웍스 2014년 作)
솜노트 연동 스마트펜 솔루션 솜펜 패키지 SomPen Package (위자드웍스 2013년 作)
국내 첫 클라우드 노트/할일관리 서비스 솜클라우드 somcloud.com (위자드웍스 2013년 作)
안드로이드향 여성용 생리 알리미 앱 매직데이 MagicDay (위자드웍스 2010년 作)
유무선 연동 웹 위젯 개발 API wzdapi.com (위자드웍스 2009년 作)
원클릭 위젯 유통 플랫폼 위자드팩토리 wzdfactory.com (위자드웍스 2008년 作)
네이트 앱스토어향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나어때? (위자드웍스 2009년 作)
네이트 앱스토어향 소셜 애플리케이션 펀페이퍼 (위자드웍스 2009년 作)
블로그 설치형 마케팅 위젯 W위젯 (위자드웍스 2008년 作)
위젯 기반 개인 맞춤형 포털사이트 위자드닷컴 wzd.com (위자드웍스 2006년 作)
특기자 전문 교육 서비스 스페셜인 SpecialIN.com (스페셜인 2004년 作)
MSN 메신저용 이모티콘 원클릭 자동 등록 프로그램 Click&Use (다드림커뮤니케이션 2003년 作)
무료도메인 포워딩 사이트 이지로 ez.ro (다드림커뮤니케이션 2000년 作)
회원제 기반 낙장도메인 등록 사이트 Nakjang.com (다드림커뮤니케이션 2000년 作)
도메인 등록대행 및 종합정보사이트 GoodDNS.com (다드림커뮤니케이션 1999년 作)
4. 만든 게임
슈팅 장르 SNG – 뽀잉뽀잉 (네이트 앱스토어, 日 Mixi 서비스, 루비콘게임즈 2010년 作)
퍼즐 장르 SNG – 슈팅스타 (네이트, 네이버 앱스토어, 루비콘게임즈 2010년 作)
전략시뮬 장르 SNG – 스타시티 (네이트 앱스토어, 루비콘게임즈 2011년 作)
육성시뮬 장르 SNG – 드림밴드 (네이트 앱스토어, 루비콘게임즈 2011년 作)
5. 특허와 출판
키보드 어플리케이션 및 그것을 이용한 키보드 선택 방법 (출원번호: 10-2015-0022446)
키보드 어플리케이션 및 툴바를 이용한 검색어 추천 방법 (출원번호: 10-2015-0022445)
키보드 어플리케이션 및 그것을 이용한 툴바 표시 방법 (출원번호: 10-2015-0022444)
키워드 기반의 광고 콘텐츠 제공 시스템 및 그 방법 (출원번호: 10-2015-0018633)
키워드 기반의 광고 콘텐츠 서버 및 광고 콘텐츠 제공 방법 (출원번호: 10-2014-0131618)
검색어를 이용한 광고 콘텐츠 오버레이 방법 (출원번호: 10-2014-0086963)
생체 주기 제공 장치 및 방법 (출원번호: 10-2014-0002762)
웹위젯의 IPTV 구동 시스템, 장치 및 방법 (출원번호: 10-2012-0032378, 등록결정)
웹위젯의 스마트폰 구동시스템 (등록번호: 10-1088842)
카메라가 장착된 이동통신 단말기 간의 정보 전송 및 저장 방법 (등록번호: 10-0628678)
이동단말기를 이용한 전자결제 방법 및 시스템 (출원번호: 10-2003-0053519)
이동통신 단말기 사용자 정보의 자동 저장 방법 (출원번호: 10-2002-0068497)
<제발 그대로 살아도 괜찮아, 2010년, 링거스그룹>
<소셜 게임의 거의 모든 것, 2010년>
<Social Applications, Go Viral!, 2009년>
<위젯 마케팅의 모든 것, 2009년>
<위젯을 이용한 비즈니스 모델과 활용 전략, 2008년>
<위젯 업계의 최근 동향과 문제들, 2008년>
<국내외 위젯 시장 총정리, 2008년>
6. 생각이 담긴 영상
부산대 경영대 강연 (2014년, 부산대학교)
<김미경쇼> 출연 (2013년, tvN)
<나의 성공비결> 인터뷰 (2013년, EBS)
<스마트쇼Q> 인터뷰 (2012년, 채널IT)
강연 (2010년, 연세대학교)
7. 믿는 바
아무리 어려워도 정신차리고 하나씩 열심히, 해결하면 된다.
인생엔 항상 업 앤 다운이 있으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자.
사람만이 전부다. 뜻한 바 이루지 못해도 사람을 성장시켰으면 다음 기회가 있다.
8. 기억에 남는 인생의 사건들 [너무 길어져 6)번부터는 간단 요약. 2014년 마지막 업데이트.]
1) 고등학교 때 운영하던 무료도메인 이지로의 악성사용자들로 인해 경찰 조사를 받았던 일. – 조사 받고 나와서 너무 화가 나 멀쩡히 월 3천만원씩 광고 매출 나오던 서비스를 접어버렸다.
2) 고3 때 학교 서클(벤처창업반)에서 처음으로 치킨집에서 맥주 시켜먹다 걸려서 냅다 줄행랑을 치는데 신고자가 만취해서 내 친구를 붙들고 칼부림을 벌임. 마침 경찰이 와서 마무리 되었지만 이 일로 고3 때 받기로 한 상이 모두 취소되면서 대학을 못갈뻔함. 다행히 대학은 상 없이도 잘 들어가 새옹지마를 처음 배움.
3) 대학교 2학년 마치고 개발 잘하는 친구들과 만든 서비스 위자드닷컴. 나오자마자 대표적인 한국의 웹2.0 기술 사용 사이트로 관심을 받았으나 출시 한달만에 군대로, 네이버 인턴으로 창업 멤버들이 회사를 다 떠나버림. 술마시고 엉엉 울며 말렸지만 결국 디자이너랑 둘이 남아 멤버를 다시 뽑아서 일굼.
4) 해외 사례(유니클락)를 보고 한국에서 월스트리트 인스티튜트랑 함께 만든 W위젯이 출시 100일만에 1억 3천만 페이지뷰를 기록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함. 이로 인해 위젯을 활용한 마케팅 시장이 열리고 처음으로 회사가 돈을 벌기 시작함.
5) 다들 안된다고 했던 위젯 사업, 우리가 계속 하여 위자드팩토리가 2009년 네이버랑 계약하며 월 1천만명 이상 쓰는 서비스가 되자 예전에 안된다고 하던 사람이 찾아와 악수를 청하며 “난 표사장이 원래 될 줄 알았어”라고들 말함. 처음으로 맨날 찾아가고 술마시고 관계 관리하는 것보다 그냥 사람 안만나도 내 할 일 잘되서 성공하는 것이 가장 좋은 관계 관리법이라는 것을 배움.
6) 기타 갑작스레 소프트웨어 단속을 맞아 합의도 안해주는 변호사에게 걸린 액수의 2배가 넘는 6천만원을 물어준 일, 이 사건의 공판 관계로 출장을 못갈뻔 했는데 출장 당일 외교부 긴급여권 승인을 받아 급하게 나가게 된 일, 모바일에 폰트 저작권이 생기기도 전에 정당히 구매해 앱에 적용한 폰트가 후일 저작권 소급적용되는 바람에 큰 돈을 지불한 일,
마찰이 생긴 직원이 새벽에 회사에 들어와 서류를 복사하다가 마주친 일, 내가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개발자 전원이 퇴사해 새로운 회사가 만들어진 일, 3년간 믿은 재무담당자가 5천만원을 횡령한 사실을 퇴사 후 알게 되어 6개월간 쫓아다녀 다 받아낸 일, 일을 다 해주고도 잔금을 5천만원이나 떼인 일, 위젯 1등 할 때 벌인 신규사업이 꼴등한 일, 그래도 다시 백의종군하고 차린 게임회사가 2년간 네개 게임을 내고 카카오게임이 터지기 직전에 망한 일, 게임회사 직원들은 이직을 대부분 잘 했으나 나는 빚을 지고 돌아와 다시 열심히 외주를 뛴 일, 게임회사 망하고 빚지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그때부터 비로소 제품과 조직구성원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일,
그러다 20대가 다 지나 마지막으로 한번 서비스 해보기로 마음 먹고 솜노트를 만든 일, 솜노트 출시 직전에 30년 대선배의 부탁으로 정당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가 온갖 오해와 억측에 놀라 하루만에 사퇴했던 일, 그리고 그 난리통에서 나를 겉으로만 좋아하는 사람과 진실로 위하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었던 일, 솜노트 제작을 위해 백방으로 돈 구하러 뛰어다녀야 했던 일들, 새로 회사를 만들면 편했을 것을 주주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오래된 회사를 끝까지 끌고갈 수 밖에 없었던 일,
그 와중에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이듬해 다시 혈액암이, 그 다음 해에는 어머니가 자궁 문제로 수술해야 했을 때, 내가 이렇다할 빽 하나 없어 어머니가 급한데도 병실을 한달이나 기다려 수술해야 했을 때 매일 밤 고통 받으시던 그 느낌, 보탤 돈이 없어 아버지를 검증도 안된 항암제 임상시험에 참여하게 해야 했을 때 그때 그 말도 안되는 비참한 마음,
그 상황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버티고 넘기니 가까운 선배나 대표들이 십시일반으로 투자해주던 일, 과거 오해와 갈등을 빚었던 직원들과 오랜 시간 지나 웃으며 소주 한잔 기울이던 일, 솜노트 만들다 다시 돈 떨어져 강의고 방송이고 닥치는 대로 하며 한달에 천만원씩 꼬박꼬박 회사에 갖다준 일, 그런 사정도 모르고 사람들은 밖으로만 돈다고 욕을 해대던 일, 월급이 밀려도 직원들이 똘똘뭉쳐 제품 하나만에 집중해준 일, 모두의 눈물섞인 노력 끝에 나온 솜노트가 좋은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한국과 일본에서 1등을 한 일,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지금의 현실까지도.
사건은 지난 14년간 차마 다 샐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업계에 좋은 사람으로 알려진 이들이 실제로는 속물적 욕심을 부리기도 하고, 나쁜 사람으로 알려진 이들이 많은 부분 오해에서 기인했다는 것도 깨달으며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워졌다. 세상에는 오로지 관점과 믿음만이 존재하고 사람과 사람의 일은 각자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하여 세상의 모든 일을 남의 말이 아니라 최대한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들으며 내 손으로 만져 판단하기로 했다. 그 스스로의 관점을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하루하루 조금씩 키우며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겪어온 일 보다는 앞으로 겪을 일들이 훨씬 더 많겠지만 앞으로는 더 의미있는, 그래서 이 사회 발전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는 경험들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지금까지 겪어온 이 말도 안되는 일들이 그 의미있는 일들의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분명한건 그동안의 풍파 속에서 주위에 남은 견고한 사람들만큼은 든든함을 넘어 절대적인 버팀목으로 함께하리라는 사실이다.
쓰다보니 신파가 되었지만 모든 일이 생생하게 실존한 시간이었다. 나이 서른도 안된 젊은이가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찬 면이 있었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아야만 나와 함께한 이들의 치열했던 ‘우리의 시간’을 사회에 전할 수 있다. 개인이 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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