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익숙해진 사선에서.

#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자유’가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것이 항시 쪼들리더라도 계속 이 일을 하는 큰 이유 아닌가 한다. 나는 계속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시도하고 싶다. 자유롭기에 행복하므로.

# 올해 다 합쳐봐야 30명 남짓되는 인물들과만 교류하며 일해왔는데, 그것은 이때껏 살며 가장 적은 이들과 교류하며 산 해일 것이다. 그것의 장점은 불필요한 커뮤니케이션 코스트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 그냥 척하면 척, 때론 좀 공격적인 대화가 오가더라도 서로 나쁜 뜻이 없음을 알고 있기에 불필요한 감정들이 쌓일 일이 별로 없었다. 물론 사람을 많이 만나야 여러 기회도 오겠지만 대화의 오해비용을 줄여 생기는 추가적인 생산성이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엊그제 다시 대란이 일어났다고 하여 저렴하게 핸드폰 개통하려는데 서울보증 채무자로 등록되어 있어 개통이 불가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로 돌아온 적잖은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졌다. 물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일들로 금세 갚을 자신은 있다. 그럼에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등록된 채무자’라니, 살면서 몹시 낯선 이름이다. 오늘을 결코 잊지 말자.

# 내 경우 오히려 너무 일찍 만나 인연이 안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이성 얘기가 아니라 도움을 받을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 레벨이 고작해야 2,3밖에 안될때 레벨 50의 선배를 만나 어버버하다 헤어지곤 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훨씬 더 편하게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럼 더 친해졌을테고. 아무래도 너무 어려서부터 승승장구 하는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어느정도 준비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사람 관계 맺는게 특히 그렇다. 요즘 와서야 비로소 만나게 된 인연들은 그런 의미에서 얼마나 다행한지 모른다.

# 이제 미팅 때문에 나가봐야 한다. 현실이 박하지만 그런만큼 전에 없던 것들을 많이 배운다. 사선까지 오갔던 지난 힘든 과정이 없었더라면 과연 나는 지금의 새로운 국면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오늘 독촉장이 날아오고 내일 가압류가 들어와도 계속 새로운 도전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는다. 열가지 도전 중에 너댓가지의 기회가 있고 그 중 한두개가 다시 회사를 살리고 우리를 지금은 모르는 다음 차원으로 데려다 준다. 물론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아무래도 멋진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생존과 부활을 도모하면서. 계속 힘내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의 지속을 위해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나와 우리 팀의 건투를 빈다.

# 마지막으로 부끄러운줄 알면서도 내가 계속 우리의 오늘을 글로 남기는 것은 이 경험을 나누기 위함이다. 경험적으로 나도 우리도 언젠가는 또 올라가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이 금방일 수도 있고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살아있는 한 당연히 올 것이다. 따라서 이런 날도 기록을 해두어야 하고 나중에 잘되었을 때 자중하기 위해서라도 이때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나날을 기록하고 전달한다. 후배들에게 보여지는 창업과 관련된 소식이 모두 항상 잘되고 큰 투자를 받는 것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그들이 실제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왜 안되지’하고 큰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업의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고 연달아 승승장구하는 연쇄창업자가 있는 것처럼 동시에 완전히 망해 경험을 전달할 기회조차 없는 사람, 그리고 나처럼 아직 살아남아 계속 기록할 기회라도 있는 사람도 있다. 용기내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후배들에게 전달해야 공발전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래야 나중에 혹여나 내가 크게 성공했을 때 저 성공이 ‘그저 운이 좋아 쉽게 성공했다’고 믿고 ‘저들과 나는 다르다’며 중도에 포기하는 후배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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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어느덧 익숙해진 사선에서.”

  1. JYR Avatar
    JYR

    사이트를 안 지는 얼마 안되었지만, 참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쉽지 않은 일인데…

    남 일 같지 않아 코멘트 남기고 갑니다.

    앞으로도 응원하겠습니다.

  2. 최민준 Avatar
    최민준

    한 오년전쯤 호민관 모임인가에서 말섞은적이 있었죠.
    그땐 잘몰랐는데 찬찬히 글읽다가 참으로 멋진사람인거같아 글 남겨봅니다. 위기를 대하는 자세가 대단합니다.

    존경스럽습니다. 항상 그렇듯.. 그또한 지나갈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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