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 제작의 8할은 센스다. 센스는 견문에서 나온다. 직접 많이 보고, 느끼고, 써보고, 겪어봐야 는다. 맨날 자기 제품만 보지 말고 끊임없이 남의 제품을 직접 써보고 캡처하고 메모해야 한다.
잘된 제품이 쓴 표현, 색감, 마케팅, 아키텍처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따라해보며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카카오톡의 공지를 똑같이 써보고, BAND나 아프리카TV의 푸시 팝업 문구를 그대로 카피해보고 게임들의 재방문 유도 장치들을 분석해봐야 느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 쓰고 있는 표현, 단어, 맞춤법, 이모티콘, 그들이 하고 있는 운영 방식, 유통 채널, 사용하는 통계 툴까지도. 바로 그것들이 사용자에게 낯선 제품이나 기능을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언어와 방법으로 떠먹여 줄 수 있는 좋은 센스인 것이다.
센스는 또한 융통성이기도 하다. 좋은 사례들로 만든 기준 위에 상황에 따라 적절한 variation을 주는 것이다. 제품을 쓰는 사람이 더 편안함과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그런 융통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이 없으면 자꾸 매뉴얼만 고수하게 된다. 자신감은 타인이 아닌 내 경험에서 나오고 그 경험은 시도와 실패, 반복과 개선에서 나온다. 시도가 없으면 실패도 없고 개선도 없다. 따라서 모든 센스의 시작은 나만의 시도와 철저한 실패다.
제작하겠다는 사람이 자기 실패와 책임을 두려워하면 발전의 여지는 없다. 자기가 하는 행동, 업무 방식과 패턴, 일의 순서, 의사결정, 이렇게 설계한 이유, 글을 이렇게 쓴 이유, 도표를 저렇게 만든 이유까지도 모든 것에는 개선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왜냐면 우리 모두는 부족한 바보이고 절대로 영원히 완벽해질 수 없으니까.
그런데 자기 실패를 100% 빠르게 인정하고 개선하려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더 나은 센스는 얻을 수 없다. 센스는 제작자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더욱 더 중요해지는 덕목이다. 언제까지고 ppt 만들고 mock-up 그리고 이벤트 배너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제작자가 나이들어 갈수록 실무 빠르고 감각 있는 후배들에게 자리 넘기고 더 큰 일을 해야 한다. ppt가 아니라 사업을 짜고 일주일짜리 이벤트가 아니라 영속할만한 BM을 봐야 한다.
트렌드는 맨날 바뀐다. 우리는 COC 하며 개이득 외치는 고딩 친구들에게 앱이나 게임을 사라고 설득해야 한다. 내년엔 허니버터칩이 아니라 무엇이 히트할지, 이케아가 아니라 또 어디가 우리를 이끌지 모른다.
30대가 된 제작자들, 그리고 곧 더 뒷방 신세가 될 이른바 PC 시대 제작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은 매년 바뀌는 히트상품이나 유행어를 그저 아는게 아니라 앞으로 어떤 상품이나 유행이 오더라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센스를 기르는 것이다. 센스란 나에게 최신 고딩 유행어를 알려줄 정보원이 있어서 그저 아는 척, 젊은 척 어울릴 수 있는 단순한 처세나 스킬 같은 것이 아니다.
센스는 ‘경향을 볼 줄 아는 눈’이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패턴을 꾸준히 느끼고 있다면 미래를 예측까진 못해도 새로 만난 무엇가에 소스라치게 놀랄 일은 없을 것이다. 인류의 발전은 기울기의 차이가 있으되 지극히 선형적이어서 계속 관찰해 왔다면 무엇이든 이해 가능하고 다음 스텝 또한 어느정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패턴에 대한 센스만 있다면 5년, 10년이 아니라 평생 죽을 때까지 훌륭한 제작자 노릇을 계속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IT인의 직업적 생명이 짧다고 하지만 나는 이것이 작은 일만 똑같이 반복하다 그 센스를 기르지 못하고 어느새 실행력 넘치는 20대 후배들한테 밀려 점점 퇴물이 되어가기 때문이라고 본다.
실행력이 아니라 경륜을 살려 선배들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오래 해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더 큰 것들이 있다. 사람이 경륜에 맞는 일을 해야 더 오래 스스로 가치있다 느끼며 일할 수 있다.
패턴을 바탕으로 과거엔 이런 일이 있었고 다른 제작자들은 이런 이유로 이렇게 해왔고 그게 요즘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 같다 하는 자신만의 DB와 관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이냐? 시작은 최전선 실무자로서의 과감한 시도와 명백한 실패다. 경륜이 경력과 같다고 요만큼도 오해하지 말기를 바란다. 둘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IT 기업에서 오래 일했다고 경력은 쌓일지 몰라도 경륜까지 절로 쌓이진 않는다. 경륜은 자기가 100% 책임지고 의사결정한 시도와 그렇게 받아든 처절한 성적표들의 총합이다. 20대도 경륜을 잔뜩 쌓을 수 있고 40대가 되도 경력만 수두룩할 수 있다.
더 오래가는 사람은 당연히 경륜을 바탕으로 패턴을 이해한 사람이고 자기 사례를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가이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 모두가 센스 넘치는 제작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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