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에 조용한 회사에 앉아, 새삼 내가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던 데에 감사하는 마음을 느낀다. 아주 약간이라도 연결되는 순간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는 곳이 있었다. 소식을 접하고 걱정과 위로,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도 있었고 그 와중에 약간의 친분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 보려는 사람도 있었다. 여러모로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그만큼 사람에게 상처 받고 또 상처 줄 수 있는 곳이라는걸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언제나처럼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도 있고 더 이상 전화를 꺼놓을 필요도 없다. 나는 내가 있는 곳을 좋아하고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한다. 이 소중한 경험 덕분에 이제 나는 조금이라도 연결될 일이 있다면 더욱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었다. 모든 경험은 소중하지만 이번 경험만큼은 정말 위태롭고 곤혹스러웠다. 그런 점에서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그들의 믿음 때문이라도 나는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다.

오랫동안 내가 막내 후배였는데 어느새 이제는 한 5-6년 전 내가 겪었던 것들을 지금의 잘나가는 젊은 창업자들이 똑같이 겪으며 성장해 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선배들도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싶다.

그때는 몰랐다. 세상이 방방 띄워주니 혼자 하늘을 날았지. 그 모든 멋진 일들이 그저 나에게 처음이었을뿐인데 세상에서 처음이라 생각했다. 이미 선배들이 다 겪고 지나간 자리였는데 말이다.

아마 또 다시 방방 뜰 일이 생겨도 이제는 좀 더 조용히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업 오래 하신 선배들의 내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요새 스타트업 동네를 보면 인큐베이터, 창업 행사, 지원프로그램 등이 잔뜩 등장해 온통 서로 세 싸움을 하는 듯 보인다. 다들 좋은 취지로 시작했지만 약간 의아하게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개중에는 일부이겠지만 스타트업 주식을 일찍 싸게 취득하려는 몇몇 어른들의 욕심도 보이고, 자기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이 기회를 틈타 영향력을 키워보려는 자칭 ‘전문가’들도 잔뜩 보인다.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예비창업자는 이 어른들의 잔치에 객체가 되어버렸다. 자기 세를 키우려면 그 밑에서 키우는 학생이 필요하다. 학생이 그들을 필요로 한다기 보다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학생을 모으고 있는 형국이다. 함량 미달의 창업자는 부지기수로 쏟아지고, 남의 그룹에서 밀고 있는 학생은 아무리 잘하더라도 내 그룹 자원을 요만큼이라도 할당해 도와주지 않는다.

또 누군가 자기들처럼 스타트업 양성을 하겠다고 나서거나 창업 행사를 기획해 나오면 ‘그럴 자격은 되는가?’, ‘실력은 있는가?’ 하며 검증을 해댄다. 내가 하면 훌륭한 인큐베이션이고, 남이 하면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적하는 부분은 여기다. 지금 인큐베이터 잔뜩 생기는 것은 생태계를 위해 결국 좋은 일이다. 일부 개인이 사리사욕을 위해 열심히 뛰는 것 역시 회사를 위해 나쁠 것은 전혀 없다.

다만 누군가 자신이 스타트업을 인큐베이팅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일을 하겠다는 것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나 역시 그런 점에서 작금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고 이끌어 온 어느 누구도 비난하지 않지만 그들 중 누군가가 다른 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면 그에게 심각하게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는 당신은 자격이 되느냐”고.

‘자칭’ 전문가들은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이 그림의 원문은 이거다. <내가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알았으면 좋았을 연구 노하우>

서울대 연구조교수가 자기 박사과정 시절을 떠올리며 후배들을 위해 만든 자료인듯 한데 쭉 읽다가 저 슬라이드를 보는 순간 연구자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도움되는 말인 것 같아 캡쳐했다.

“아무 생각 없이 출근해서, 자리에 앉은 후부터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침에 자리에 앉는 그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맞다. 참 맞는 말이다. 앞으로 의식적으로 아침에 일어난 순간부터 샤워, 걸어올 때까지 계속 생각 또 생각해야겠다. 뭔가 나태하고 멈춰있는 삶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요새 계속 느낀다.

+ 덧. 자료를 끝까지 읽어보니 뒤로 갈수록 더 좋다. 이건 연구자를 위한 자료를 빙자한 모든 직장인을 위한 자료 같다. 일독을 권한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시그마 루트 제곱 분산 표준편차 탄젠트 알파 베타 이야기를 들으며 평생 가야 쓸 일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교 1학년 수업 시간에 자본론, 플라톤의 국가, 국부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역사란 무엇인가 등등의 책을 읽으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으면서도 역시 그런 따분한거 봐서 무얼하나 싶었다. 지금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한다. 선생님들이나 선배님들이 다 겪어보고 어련히 가르쳐 주고 추천해 주는 것이었으리라. 지금이라도 나의 후배들에게는 인문학과 통계학, 그리고 영어만큼은 반드시 공부를 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나이가 젊어서 창업을 하든 무얼하든 다 좋은데, 그래도 저 세 가지는 평생 가며 쓸 일이 있고 그 때가 아니면 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나를 믿고 반드시 공부해 가기를 바란다. 좀 늦은 나는 이제라도 깨닫고 조금씩 천천히 시작해 보려는 것들이다.

힘들 때가 힘내야 될 때다.

오늘 어느 존경하는 선생님과의 대화

쌤: 학교 나가고 정신없이 보내느라 연락도 못했다. 바쁘지?

나: 예 쌤 저도 요새 회사하랴 대학원가랴 정신이 없네요 ㅠㅠ

쌤: 그래 힘들 때가 힘내야 될 때다.

나: 넵! 화이팅 😀

앞으로 두달이 특히나 바쁘고 험난한 기간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 짧은 한마디에 힘이 불끈 솟았다.

그래. ‘힘들 때가 힘내야 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