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을 이해하며

평소 아끼며 많은 배운 것을 나누고 정을 준 후배가 그의 생에 큰 변화를 맞이할 때 아무런 연락이나 상의가 없으면 더러 서운할 때가 있다.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부터 인문계고에 벤처창업반이라는 서클을 만들어 후배들을 키웠고 대학 때는 동아리를 여섯개나 하며 많은 후배들을 만났다. 사회 나와서도 후배를 끔찍히 아끼며 내 휴일의 대부분을 그들과 어울려왔다.

무언가 바라고 한 것도 아니기에 그들의 삶에 변화가 생겨도 나에게 연락하거나 상의할 하등의 이유는 없지만 그럼에도 특별히 아꼈던 몇몇 후배들에게는 정을 준 선배로서 이따금씩 아쉬움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 상의나 귀뜸 정도는 미리 해줄 수 있었을 터인데 하면서.

아무래도 나에게 가르침을 주신 많은 선배들에게도 나 역시 똑같은 서운함을 드리며 살지 않았나 싶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참 죄송스럽고 부끄러워진다. 그러고 보면 나 스스로도 많은 도움주신 선배들을 종종 그냥 지나치고 다음 단계의 선배나 멘토들을 만났다. 인생은 내 수준에 맞게 매 단계마다 가르침을 주는 새로운 멘토들이 있는데 매번 어느 단계를 뛰어넘으면 감사함은 모르고 또 다음 단계의 멘토를 찾아가 배움을 구해왔던 것 같다.

그것이 성장의 과정이라고 볼 때 나의 후배들도 똑같이 그리 하고 있는 것일테니 내가 서운한 것도 어쩌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이리라. 내가 나의 감사한 선배들에게 똑같은 과오를 저질렀던 것처럼.

새삼 이 혼자만의 분출구를 통해서나마 나를 아끼던, 많은 산 배움을 주었던 선배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제와 일일이 찾아뵙지도, 뜬금없는 연락을 드리지도 못하지만 내가 한 분 한 분 모두 기억하고 있음을, 언젠가 나도 잘되면 그때서야 한 분씩 찾아뵙고 꼭 인사드리고 싶다는 것만 알아주시면 좋겠다.

여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의 후배들도 똑같이 생각하리라 믿으면서 마음이 많이 풀린다. 물론 잘되는 후배들이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을 볼 겨를이 없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나 스스로 후배들을 이해하고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살아야 가장 마음 편하고 행복하지 않겠나 한다. 실제로 지금껏 무언가 바라고 후배를 만나 왔다면 이토록 많은 아끼는 후배들이 생기지도 않았겠지..

나의 후배들이 혹여 나를 동경하거나 존경하거나 부러워하거나 답습하거나 모든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이런 사람이 있었고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경험을 했고 끝내 요런 결론과 배움을 얻었지만 단지 참고만 할뿐 나의 결론은 다를 수 있다.’ 정도로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선배로서의 내 모습은 그저 참고할만한 좋은 레퍼런스 중 하나가 되는 것 딱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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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responses to “선배들을 이해하며”

  1. Aleph Avatar
    Aleph

    멋지세요!

  2. 김재우 Avatar

    저도 후배들에게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순간이 있고 글을 읽으며 돌이켜보면 몇 몇의 멘토를 거쳐서 그 다음 멘토를 만났던 기억이 있네요. 스승의 날에 멘토분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이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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