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이 익숙한 일이 되는 것에 대하여.

잘 되지도 않을 것 같고 설사 잘 된다 해도 별로 먹을 것도 없을거 같은데 무지하게 열심히 하는 사장들이 있다. 가만 보면 나도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도 같고.

Appannie 같은데서 지표를 봐도 대충 잘 안된다는 감이 오고 아마 본인들도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이미 빼도 박도 못하기 때문에 그냥 주구장창 열심히들 한다.

근데 그러다가도 또 계속 퇴로가 없어 미친듯 하다보면 어떻게든 새 모멘텀이 한두개 생기고, 그 모멘텀으로 다시 제품의, 회사의 생명 연장을 해가며 다시 더 살아갈 기회를 얻곤 하는 조직도 있는 것 같다. 남의 얘긴데 어찌 보면 역시 나와 우리 회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무튼 퇴로 없이 미친듯이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모멘텀은 반드시 생긴다. 다만 그렇게 해서 생명 연장을 하는 것이 곧 사장 자신과 조직에 도움이 되는가는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경우 그냥 항상 그 밑천 떨어짐과 무조건적 극복 노력, 모멘텀 발견과 생명 연장의 사이클을 체득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여기까지 살아는 왔는데 이것이 정말로 나와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는가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는 항상 넘어짐 속에서도 오뚝이처럼 살아 남았다고 안도해 왔는데 오늘 역설적으로 내가 아직 한번도 제대로 넘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생명 연장의 매커니즘에 스스로 길들여져 왔다는 평가를 들었다.

상당히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나도 변화를 매우 두려워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볼땐 다르고 특이하게 사는거지만 나에겐 이게 편하고 익숙한 일상이라 이 삶의 일정한 진폭과 풍경을 잃고 싶지 않아서 생존을 몸에 익혀온 것 같다.

결과적으로 조직과 나는 살았지만 어찌보면 더 큰 성장과 배움의 기회는 계속 잃어 왔는지도 모른다.

고만고만한 레벨의 배움을 불필요할만큼 세세하고 깊게 배웠을뿐, 나는 50명 이상의 조직을 해본 적도 없고 50억 이상의 매출을 만져본 적도 없다.

앞으론 훨씬 더 스스로 가둔 테두리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 이미 구멍가게 창업을 십년 넘게 하면서 나의 모든 일상이 지극히 익숙한 일이 됐다. 미팅, 회의, 출장, 강의, 면접, 인터뷰 등 똑같은 일들을 최소 수백번씩은 반복하면서 설레임이나 긴장감은 거의 만나기 힘든 감정이 됐다.

다른 패턴, 다른 일상이 필요하다. 한번도 안해본 일을 한번도 안해본 방식으로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익숙하지 않아 나에게 두려운 순간들을 일상 속에 일부러라도 끼어넣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구멍가게의 생존 패턴에 정형화된 나를 더 늦기 전에 벗어나게 할 처방이 아닐까 싶다.

어릴때는 다 새로워서 주어진 모든 일을 너무나 행복하고 열심히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는 불필요한 곳에 과도하게 힘을 빼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완급 조절’이자 ‘경험이 주는 배움’이라 합리화해 왔다.

하지만 그건 그냥 최소한의 노력으로 현장유지를 하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었음을 깨닫는다.

구멍가게 벤처를 하는 사람이 일상에 익숙해지고 하루하루가 점점 편해지면 큰 물에는 십년 아니라 평생을 한다 해도 결코 가볼 수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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