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NFT에 대한 생각

지난 글에서 ‘지금 있는 대부분의 NFT는 물릴 것’이라 밝힌 견해의 배경에는 언제나 그렇듯 의미를 찾은 일부 프로젝트는 살아남을 것이라는 내용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나는 NFT를 일찍부터 관심있게 보고 구매해 왔을만큼 NFT 부정론자가 아니다. 하지만 행간을 오해한 분들이 계셨는지 ‘NFT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시던데요?’라는 말을 해오시는 분들이 있었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해두고 싶다. 급조된 많은 NFT들이 망하고 일부 존재의 이유를 찾은 NFT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나 지금이나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NFT가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것인가?

답을 정확히 알기에는 아직 인류는 NFT를 잘 모른다. 크립토도 지난 십수년간 매일같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중이기에, 이제 비로소 국제적인 관심을 처음 받기 시작한 NFT 역시 정반합의 많은 시도와 실패를 거쳐야 조금씩 적합한 사용처와 용법을 알게 될 것이다.

같이 그 힌트를 찾기 위해 조금 다가서보자.

우선 이런 글을 읽었다. 줄줄 내용이 긴데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은 아래 문장이었다.

“팬들에게 수익의 기회는 크리에이터를 지원하려는 동기를 증폭시킵니다. 흥미롭게도 크리에이터의 삶에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참여자인 투기자들(Speculators)이 추가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사용자는 크리에이터의 성공과 직결된 자산의 소유자가 됨으로써, 크리에이터의 작업을 적극 알려야 하는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NFT는 기존에 단순 소비자로만 머물던 팬이 크리에이터의 성장으로 돈까지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충분히 공감한다.

Wired의 편집장이었던 Kevin Kelly은 지난 2008년 “성공하는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수백만명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1천명의 확실한 찐팬만 있으면 된다“는 글을 자기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2021년 a16z의 파트너인 Chris Dixon은 그 글을 인용해 NFT 덕에 1천명의 찐팬 공식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1천명의 찐팬이 크리에이터를 도우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동기부여는 더욱 커진다. 과거 단순히 아프리카에서 좋아하는 BJ에게 별풍선을 쏴주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후원하는 기분’ 정도를 느껴온 데에서 더 나아가, 내가 좋아하는 BJ가 성공하면 내가 지금 쏜 별풍선이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오는 구조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과거보다 충분히 더 재미있는 양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에이터를 돕는 행위로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아예 직업이 ‘팬’이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

처음으로 OpenSea의 24시간 거래액 1위를 한 한국의 아티스트인 Zipcy를 보면 그런 양상을 더욱 뚜렷이 느낄 수 있다. 그녀의 NFT 컬랙션인 Supernormal이 발행(Minting)되기 며칠전 우연히 Zipcy 이야기를 듣고 Discord를 보게 되었는데 무려 7만명이 넘는 가입자가 있어 크게 놀랐다. (지금은 10만이 넘었다고.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수치냐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블록체인 프로젝트 중 하나인 Uniswap의 Discord 회원수가 8만 7천명이다.)

또 아래 사례처럼 해외 팬들이 Supernormal 시리즈를 벽화로 그리기도 하고, 알아서 트윗으로 알리고 각자 나라에서 전시도 열고 있다.

Zipcy는 이번 NFT를 발행하기 전부터 인스타그램에 이미 수십만 팔로워를 가진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였고, 특히 해외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인물은 앞으로 NFT와 Discord 덕에 더 유명해질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NFT와 1천명의 찐팬들이 만드는 선순환의 바람직한 사례로 보인다.

원래부터 팬덤이 존재했던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에게는 이런 공식이 잘 작동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팬덤이 애초에 없던 사람이나 제품이 NFT와 그 홀더들의 노력 덕에 유명해질 수도 있을까? 아직 자료가 많지 않아 성급한 일반화가 될 수 있겠으나, 최소한 BAYC를 보면 그런 일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BAYC는 NFT를 가진 사람만 공식 사이트 내 [화장실] 메뉴에 낙서를 그릴 수 있게 했고, 그게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 ‘나도 BAYC 화장실에 낙서하고 싶다’는 욕망을 만들며 가격이 올랐다. 가격이 오르고 유명세가 점점 높이지자 NBA 농구선수 스테판 커리, 래퍼 에미넴, 가수 저스틴 비버 등 글로벌 스타들이 하나씩 구입해 소장하거나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그러자 ‘나도 그 클럽의 일원이 되고 싶다, 나도 프로필에 그 유인원을 올리고 싶다’는 욕망이 발생하며 일반인들이 추가 구매해 가격이 점점 더 오르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가 도지코인을 사서 연일 트위터에서 도지 이야기를 하자 일반인들이 따라 사며 결국 일론 머스크와 그의 가장 초기 추종자들이 많은 돈을 번 것과 마찬가지로, NFT도 비슷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다만 보통의 크립토(Fungible Tokens)와 다른 점이 있다면, 5천개나 1만개 정도로 극단적으로 적은(그래서 회원들간의 담합이나 가격 통제 시도도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수량 덕에 특정 모임의 희소한 입장권 내지는 회원권으로서 어느정도 기초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즉 ‘NFT 그거 어디에 써?’라는 흔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냥 희소 가치 자체가 곧 기초 자산(Underlying asset)이 되는 현상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가 전세계 1만개 밖에 없는 BAYC 중 하나를 하나 가졌고, 그걸 프로필로 설정해 두었어’라는 만족감이 중요한 것이지, 그림 수준이 낮다거나 화장실에 낙서하는 것 외에 딱히 기능이 없어서 지금 가격(개당 약 3억원)이 심각하게 고평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하나의 주관적인 관점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NFT의 가치는 실용성을 넘어 욕망으로 바라봐야 하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점퍼라고 다 같은 점퍼지만 우리가 굳이 몽클레어를 입고 싶은 욕망과 학생들은 다같이 노스페이스를 입고 싶은 욕망, 백이라고 다 같은 백이지만 샤넬을 매고 싶은 욕망, 단순히 시간을 알기 위해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IWC를 사는게 아니듯이 디지털 세계에서 NFT가 자신을 은근히 드러내기 위한 사치재이자 아이덴티티 그 자체로 기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NFT 사업을 위해 현실 세계에서 갖고 싶어도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들의 속성을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명품은 돈만 있으면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돈만 있으면 ‘내가 이 정도는 돼’라는걸 남에게 은근슬쩍 보여줄 수 있는 액세서리다. NFT 세계에서는 이제 BAYCCryptoPunks 정도가 그런 명품 반열에 들었으리라.

현실 세계에서 돈이 있다고 살 수 없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명성, 존경, 인맥(물론 어느정도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사랑, 가족 등의 키워드가 떠오른다. 그런 것들이 결부되어 단순히 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NFT가 나온다면 1) 크리에이터와 팬이 선순환 할 수 있는 기회 2) 디지털 세대의 명품 액세서리를 만들 수 있는 기회 3) (너무 일반적인 얘기라 여기선 다루지 않았으나) 미술품, 스니커즈, 부동산 등 여러 온오프라인 수집품을 쪼개 거래하는 조각 판매 이 세가지 길과 더불어 NFT 또 하나의 기능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네번째 기능에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좋은 글을 발견했다. 다음은 요점을 강조하기 위한 적절한 의역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모기지 거품은 주택 소유를 보다 쉽게 만들었습니다. 건설업자들은 개인의 이익과 훌륭한 커뮤니티를 조성할 희망을 가지고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도시를 지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일부는 그곳에 살고 있고 일부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지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그것들 중 무엇도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략)

오늘날 대부분의 NFT 가상 이웃은 현실 세계의 위와 같은 역사를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를 바라며 아무 것도 없는 곳에 1만채의 집을 짓는 것. 그저 땅을 찾고, 집을 짓고, 커뮤니티가 커지길 바라는 대신 개발자는 NFT 홀더가 구매와 이용 경험에서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NFT 가상 이웃이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공간과 토지의 소유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함께하는 커뮤니티 안의 강력한 서비스 개발로 옮겨가야 합니다. NFT가 당신을 (홀더들만의) 클럽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면, 당신은 그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관심사에 컬렉션 커뮤니티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가치를 공유할 때, 가치있다고 느낄 (NFT의) 혜택을 결정하고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쉬워집니다.”

지금은 대다수 커뮤니티의 공통 관심사가 돈이지만, 그래서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시절 경쟁적으로 건설된 깡통 동네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구성원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돈 이외의 다른 관심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 역시 아직 제대로 제시되지 못한 NFT 제4의 기능과 기회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방향으로 계속 힌트를 찾다가 발견한 또 하나의 좋은 글 소개한다. 역시 요약과 의역.

소속감은 콘텐츠나 제품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넘어선 고유한 형태의 가치입니다. (NFT로) 한층 강화된 토큰의 희소성은 전보다 더 다양한 형태의 소속을 가능하게 하고, 그 소속을 표시하는 것도 쉬워집니다.

하지만 그 소속감은 마치 잡지처럼 매력적인 콘텐츠와 브랜딩으로 마무리되어야 합니다. 커뮤니티는 스스로를 알리고 생각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력적인 글쓰기나 예술 또는 새롭고 흥미로운 아이디어의 제안 형태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소속감,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공통의 관심사, 콘텐츠, 브랜딩 이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지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NFT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 선명하지는 않지만 머릿속에 희미한 형태는 분명 그려진다.

계속되는 탐구를 위해 우선 좋은 글들을 함께 나누며 NFT와 DeFi, DAO 등 이른바 Web3 서비스들을 공부하고 토론할 Discord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어 보려고 한다. 5년 전 이 업계에 뛰어들기 전에도 우선 공부모임부터 만들어 시작했었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배움을 얻었다. 크립토는 범위가 워낙 넓고 전세계에서 매일 새 소식이 쏟아지기에, 혼자 공부해서 모든 것을 알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도 다시 5년만에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기 위함이다.

5년 전에는 ‘한국블록체인비즈니스연구회’라는 무척 진지한 이름을 썼었다. 그래도 그때 그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함께 작성하던 블로그는 지금 읽어봐도 훌륭한 내용이 많았다. 2022년 버전의 이런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모임이라면, 분명 참여하는 모두에게 큰 공부가 되리라 믿는다.

과거 모임에서 만든 페이스북 그룹이 아직 남아있고, 이제는 무려 8천명이나 되는 이들이 가입되어 있지만, 새로 Discord 모임을 만드는 이유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2022년에는 딱 지금 Web3 공부에 꽂힌 사람들을 다시 모아 작더라도 활발하게 논의하는 편이 참가자 모두에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모임마다 뚜렷한 색깔이 있어야 하므로 우리 모임은 투자보다는 철저히 서비스를 만드는 기획/개발의 관점에서 토론해 갈 것이다. 토큰 가격도 물론 모든 Web3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므로 매우 중요하지만, 가격 자체가 아니라 가격을 긍정적으로 만드는 원리나 구조에 대해 토론해 가고자 한다.

이 업계에 있으며 늘 느껴온 것이 좋은 서비스 제작자가 너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웹/모바일 서비스 기획/개발 경험을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폭넓게 보유한 나라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Web3 서비스는 거의 항상 외국 서비스를 이용만 해왔다.

그런 점에서 좋은 서비스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만나 다른 잘 만들어진 서비스들을 놓고 대화하며, 머지 않은 미래에는 직접 좋은 서비스를 구상하는 요람으로 쓰인다면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이다.

2022년 버전의 공부모임 이름은 ‘Web3 Party‘라고 지었다. 이제는 별로 심각하고 싶지 않고 그런 시대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명을 밝혀도 되고 익명으로 활동해도 상관없다. 그저 서로 도우며 각자 공부하고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나누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국인들이 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이니 Discord가 바람직한 채널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그래도 Web3 프로젝트들이 거의 표준처럼 Discord를 사용하고 있기에 Web3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허들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커뮤니티 참여이 링크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할 수 있다. 과거 모임에서도 보면 대부분은 눈팅족이고 활발히 글을 쓰는 사람은 소수였다. 작년에 내가 주최한 DeFi 공부모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모임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번에도 그래서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진짜 제대로 할 사람(과거로치면 8천명 중 블로그를 작성한 30여명의 핵심 멤버들)은 별도로 연구 결과물을 블로그나 컨퍼런스/세미나 형태로 대중과 나누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Web3 공부모임 링크(https://discord.gg/ntnZJgqGs2)를 남기며 이 글을 마친다. 원래는 NFT를 발행하고 그걸 사와야 지갑을 인증해서 입장 가능하게 할까 했는데 그러면 허들이 높아질거 같아서 참았다.

공부모임의 난이도는 Web3가 아닌 Web2(일반적인 인터넷/모바일) 서비스를 만들어 온 사람들이 모여 Web3 서비스를 이해하는 수준으로 할 것이다. 따라서 Web3 서비스를 당장 너무 잘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지금도 혼자 Web3의 바다를 잘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분들을 새로 만나 재미난 공부들을 함께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5년 전엔 그저 상상만 하던 Interoperability(Cross-chain Bridge)나 DeFi 같은 것들이 현실이 된 것처럼, 5년 후엔 이 모임에서 어떤 혁신이 태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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