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을 없애는 것

어릴 때는 참 조급했다. 오늘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뭔가 큰일이 나는줄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무언가 안되면 걱정되고 조바심나고 결국 그래서 더욱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짜증내고 스트레스주고 그랬다. 그러다보면 결국 직원들이 못견디고 나갔다. 내가 자른 적은 거의 없어도 직원들이 스스로 나간 적은 참 많았다. 결국 다 나의 불찰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상당 부분 조급함에서 온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보다 조금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여가며 사실 배경 지식이 더 늘었다던가 실행력이 더 빨라졌다던가 하는 것은 크게 느낄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변화는 이제 조급함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왜 그리 급했는지. 아마 항상 가장 어리고 가장 빠르게 남들보다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계속 그래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일이 잘 안풀릴 때 스트레스의 강도는 남들보다 훨씬 더 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약간은 옆도 보고 때론 뒤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컨트롤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약간은 그리 되었다. 일을 하다보면 확신을 갖고 행한 일이 기대와는 전혀 딴판으로 펼쳐져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어김없이 좌절감이 밀려오는데 그 감정도 조급함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인생을 살다보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이를테면 기분좋게 집을 나섰는데 난데없이 추돌사고를 당했다거나, 갑자기 가족이 아파 병 간호를 해야 한다거나, 예측하지 못한 일로 소송을 당했다거나, 거절할 수 없는 지인들이 어려운 일을 부탁해 왔다거나 등등-이 항상 일어난다. 이들은 또한 바쁜 삶 속에서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시점에 예상할 수 없는 규모로 터진다는 점에서 기대한 일이 안되었을 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고통스럽다. 나 역시 그런 일종의 일상 속 매몰비용이 급작스레 항상 발생하는 것에 대단한 스틀레스와 짜증을 받았는데 이것의 근원은 조바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빨리 성취해야 하는 조바심, 설정한 시간안에 계획한 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어야 하는 조바심들 말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그런 조바심을 안받기 위해 내 인생의 매몰비용 Limit을 정하기 시작했는데 재작년 말에 새해를 맞이하며 설정한 Limit은 1년의 15%다. 15% 안에서는 어떠한 예상할 수 없는 공적, 사적 사건들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머지 85%를 잘 살기위해 당연히 감수하고 거쳐야하는 통과의례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일년중에 계획하며 살 수 있는 날이 365일이 아니라 315일쯤 된다고 애초에 생각을 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일년을 시작하니 어떤 예상치못한 일들이 와도 그냥 대범하게 받아들이고 묵묵히 처리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 Limit 안에서라면 별로 스트레스 받지도 않는다. 나에게 일년 중 50일 정도는 원래 남의 일을 돕고, 내가 예전에 잘못한 일을 바로잡고, 긴 인생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지금은 알 수 없는 버퍼들을 만드는 시간으로 쓰는 날이라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 와도 별로 놀랍지도 조바심이 가중되지도 않는다. 그러고나니 이제 짜증이 좀 줄었고 스트레스도 낮아졌다. 그러다보니 주위 사람들도 덜 괴롭히고 더 오래 함께 걸음을 맞추며 때론 빠르게 또 때론 천천히 느리게 걸으며 대부분 오래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그 모든 것이 조바심을 버린 덕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더라도 상당히 많은 부분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지금이라고 힘이 빠졌다거나 추진력이 낮아졌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어깨에 항상 힘들어가 있고 항상 당장 계획한대로 이루지 못하면 큰일나는 것 같은 불안초조한 마음을 좀 더 컨트롤 할 수 있게 되었다랄까. 그리고 오히려 그것이 항상 힘 들어간채로 사는 것보다 성과면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고-오히려 더 낫고- 삶의 질 차원에서도 훨씬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즈음도 나에게는 여러 예상하지 못한 공적, 사적 이슈들이 항상 터져 나오지만 그래도 15%의 의식적 버퍼를 마련해 두었기에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아직도 나는 부족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급함을 조금씩 더 내려놓을 수 있다면 현재 하고있는 일에 더욱 집중하고 결국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라. 오늘을 더 생생하고 풍부하게 느끼며 살 수 있으리라.


Posted

in

by

Tags:

Comments

One response to “조급함을 없애는 것”

  1. HyeJIn Avatar
    HyeJIn

    지나가는 사람인데 글이 좋네요. 많이 공감하고 갑니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Blog at WordPress.com.

%d bloggers like this: